봄은 또 오겠지만 올해의 봄은 돌아오지 않기에
올해는 봄이 쉽게, 봄비와 함께 가버린 것 같다.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이,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봄 꽃들은 짙은 아쉬움들로 푸른 잎들을 남기고 떨어진다. 마냥 짧은 봄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더해 온다. 다음 해에 다시 올 봄이라지만 올해의 봄은 한번뿐이기에 더 그런가 보다.
업무 때문이지만 오랜만에 학교 교정을 걷는다. 뭐라도 하나 팔아 보겠다고 들어왔지만…
터벅터벅 돌아나오는 길에 여전히 푸른 하늘과 잘 어울리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조급 해지는 마음 같지 않게 하루하루는 여유롭게 지나가고 있다. 1년 전, 2년 전보다는 확실히 봄기운을 알아본다. 벌써 이런 말하면 쑥스럽긴 하지만 나이 들어감을 느낀다. ‘철든다’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자연처럼 그렇게 사람도 변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있어야 할 곳에, 그리고 있어야 할 시기에 있는 것이 바로 철든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봄 하늘 아래 세상은 조금 더 진지하게 다가왔다.
오늘처럼 맑은 날엔 나무벤치가 잘 어울린다. 거기에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 한잔이라면 더 좋다.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도 좋지만 뜨거움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 또한 묘한 운취가 있다. 너무도 정직하게 잠깐 사이에 차갑게 식어버리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 어느새 그렇게 재촉하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 딱 맞는 상품이다. 잠깐에 한가로움 뒤에 다가오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정직함이 있다.
오늘은 이렇게 맑은 바람을 맛볼 수 있는 나무 벤치가 좋은 날이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오는 학생들을 바라본다.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땅을 보며 걷는 이도 있고, 누군가와 재잘거리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웃음소리. 그리고 묵직한 한숨 소리도 들려온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전략적 불균형
과연?
쉽게 쉽게들 말하는 내일을 위한 희생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오는 것이 내일이니까.
아직도 철이 덜 들어 나무 벤치에 죽치고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커피도 식었으니 다시 일어서서 뭐라도 팔아야 하겠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인생의 계절 중에 또 이렇게 하나의 봄이 가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덕분에 가는 봄을 학교에서 손 흔들며 보내게 될 것 같다.
偶吟 / 宋翰弼 (우음 / 송한필)
花開昨夜雨 화개작야우
花落今朝風 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 가련일춘사
往來風雨中 왕래풍우중
꽃 피네. 어젯밤 비에
꽃 지네. 오늘 아침 바람에
가련하여라. 한 봄의 일이
오고 가네. 비바람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