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꿈 하나를 짓는다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지금은 내 성을 따르고 있는 업둥이 딸 '해피'. 이렇게 한 식구가 나란히 기대어 영화를 보았다.
"UP"
진짜 모험은, 당신과 함께 한 모든 순간입니다
이것이 내가 이룬,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오래된 집을 사서 함께 수리하고 청소하고 하나씩 만들어 가는 모습과 또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손길 닿는 곳마다 모두 추억이 쌓인 장소가 된다. 나도 모르게 몰입하면서, 마음대로 영화 감상평을 달아본다. 이런 게 '스포일러 주의'가 될 수도 있겠다.
분명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한 것 같다.
'착한 남편이 돼야지'하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안사람이 이야기를 꺼냈다.
돌아온 작은 아버지 기일에, 친정 식구들과 작은집 식구들이 모였다. 예전 사촌 오빠의 방이 지금은 조카의 방이 되었다. 사촌 오빠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는 오래된 풍경 안에, 다시 조카가 크는 모습을 보고 있는 사촌 오빠의 모습이 겹쳐진다.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공간에 또 다른 추억이 만들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오글오글 모여 살던 모습이 남아 있을 것 같은 옛집이 그리워진다.
옥상에 줄지어 있던 하얀색 빨래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추듯 흔들리던 하얀 물결이 그려진다. 그땐 하얀 속옷들이 왜 이렇게 많았었지? 유독 하얗던 물결과 볕에 잘 말라서 종이를 만지듯이 까슬까슬하던 촉감이 느껴진다. 한참 글자를 배우던 때는 벽지며 장판이며 기역 니은을 그리고 엄마 아빠 얼굴을 함께 그려두던 날들이 떠오른다. 빵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를 쌀통 뒤에 몰래 숨겨 두었다가 누나에게 약점을 잡힌 기억. 철제 대문이 넘어져 아찔했던 기억들.
몇 번의 이사 뒤에 그리고 어른의 모습으로 그곳을 다시 찾아갔을 때는 장난감을 팔던 '만물상회'도 빵을 팔던 '블란서제과'도 사라지고 근방에서 제일 높다는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추억도 그만큼 높이, 멀어져 간 것 같았다.
그럼 지금은...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혹은 없는 환경 요인에 따라 언제든 옮겨 다녀야 하는 철새와 같은 모습이 '노마드족'이라는 용어로 익숙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돌아가 쉴 곳은 늘 '그자리' 였으면 좋겠다.
집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은 좀 올드한 감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려본다.
세월이란 이름에 낡고 삐걱거리는 집이지만, 추억은 나이를 먹지 않기에, 흑백사진처럼 뿌옇게 빛바래더라도, 젊은 날의 아버지와 고운 엄마의 모습이 서려있다. 나를 돌봐주던, 딱 지금 내 딸아이의 나이만 한, 누나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속에 어린아이와 이제 어른의 얼굴을 한 내 모습이 함께 한다.
지금 나에겐 없지만…
그런 집을 두 딸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꿈이 생기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