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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문맹(文盲) 자의 대화

넘 피곤했던 것이다

by 진이
언니야 이거 읽어줘


읽어 달라고..


읽어주세요..


묘한 뉘앙스의 변화를 줄 수 있을 정도로 둘째가 부쩍 컸다.


주말 오전 시간 안사람이 출근하고 난 뒤, 죽은 척하고 있었더니 아빠를 살리겠다고


일어나!

를, 외치며 그렇게도 얼굴에 심장 마사지를 시도한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결국 둘째가 참지 못하고 첫째에게 간 모양이다.


눈을 꼭 감은채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딱 한 번만 읽어준다


가진 자의 거만함 이랄까?


이리와. 한 번만 읽어 줄 거다


책장을 넘기는지 잠시 조용해진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지 쫑알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 옆에 앉으세요


아마도 어린이집 선생님을 따라 하는 것 같다.


보세요. 여기 보세요.


정적이 흐른다. 뭐지?



아.. 둘 다 까막눈이지..




결국 일어나 책 한 권을 같이 읽었다.

서로 아빠 다리에 앉겠다고 해서, 첫째를 앉히고 그위에 둘째를 앉힌다.


딸들아~

언제가 어렴풋이 오늘 일이 기억 날 수도 있겠지.

아빠도 가끔, 요즘 부쩍 생각이 난다.

아빠의 아빠 다리 위에 앉아서 밥을 먹고 TV를 보고 하던 일들이. 그런데도 보고 싶다고 전화 한 통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아들 키워봐야…


아빠 대신으로 할아버지한테 전화하고 뺨도 부비고 해줄 수 있겠니? 표현하지 못하는 덩치만 큰 아이를 대신해서 말이야.


그럼 책은 한 권 더 읽어줄게. 딱 한권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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