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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Dec 31. 2016

길 위에 설 때면, 늘 처음 가보는 길이다

길치라서 그래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길치는 방금 온 길을 돌아보며


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런 사람, 길치다.


새로 가는 길 위에서 항상 주저하며, 늘 같은 길을 고집.

멀게 돌아가는 걸 알아챈 순간에도, 가보지 않은 길 위를 달려야 하는 두려움에 출구를 지나쳐 직진하게 된다.

어쩌면 길치는 가야 할 길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 길 위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통제할 수 없는 것 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업데이트 때를 지나친 공장 초기화 상태의 내비게이션이 주는 통제의 평화가 고집스럽게 발을 묶어 둔다. 어차피 길치라면 이 길을 가던, 저 길을 가던 거기서 거기일 건데 왜 그리 덜컥 겁이 나는지. 허상처럼 매일매일 변하는 길 위에서, 이런 고집은 이제 그 유효성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세밑에 이렇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분명 지나온 시간이며 길인데 '어느 순간에, 어느 곳에서' 지나왔는지 희미하기만 하다. 정신없이 밟은 엑셀레이터 뒤로, 지나쳐 버린 출구와 새로 난 길을 "길치"라며 쉽게 허용해버린 스스로를 탓해본다.


늘 아쉬움을 남기며 보내는 한해를 그래도 수고했다고 나에게 말해본다.  


토닥토닥


지금 바라보는 이 길 위에서 다시 시작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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