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여행(不惑旅行)

위안을 얻는 시간

by 진이

마흔.

뭐 한 게 있다고...


꾸~ 욱 눌러 담아 만으로 계산되는 나이에 다시 삼십대로 회귀할 때...

이게 또 뭐라고 조금은 마음 가벼워진다.


언제 다시 보겠냐며 질러주는 친구가 있기에 핑계 삼아 가게 된 "불혹여행"

불혹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서, 때어놓지 못한 미혹들을 지고서 제주도로 향했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구름, 청운(?)일까나..



어느새 빨간 옷이 좋아지고 배고프면 화가 나는 "아저씨"가 된 친구들이 모였다.

중국 대부호의 풍채를 닮은 친구와 다른 건 다 변하지 않았는데 머리숱의 변화가 온 친구.

나에게 와서 지나간 시간들은 그리도 짧게 흘러 가버려서 알지 못했는데,

그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 떨어져 있던 친구의 얼굴, 옷차림에서 누적되어 보였다.

가끔 샤워를 끝내고 보게 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에 흠칫 놀라곤 하는데...

이 무리 속에서는 그다지 놀라운 모습은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누구네 제수씨가 짜준 일정을 따라 움직이며,

"저녁에 뭐 먹지"

라는 화두를 서로에게 가장 많이 던졌다.


생각보다 빡센 일정은 남편의 친구를 염두에 둔 것인지, 남편을 의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무 생각도 못 할 만큼 바쁘게 이어졌다.

약간의 고집을 부려 스케줄에 넣은 반딧불 투어를 마지막으로, 첫날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현장 구매로 2시간 정도 기다리다 보니, 배고픔과 기다림으로 짐승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딱 6월 한 달 정도 볼 수 있다는 코스이기에 "힐링"을 앞세워 고집을 피웠다.
2시간 이후 코스를 예매하고 뭐든 먹어야 하기에 인근 고깃집을 찾아갔다.

하등 특별할 것 없는 반주와 저녁을 먹으며, 이번 여행을 이야기해보았다.

20살 지리산 도전, 폭우로 철수
30살 지리산 재도전, 폭음으로 포기

다시 10년 세월이 흐르고 "힐링"이라는 주제로 최대한 덜 걸어 다니는 여행에 모두 수긍했다.

우리의 40살은 수긍, 현실 안착을 위한 쉼이 주제인 듯했다.


개똥벌레가 반딧불이 인지 아닌지 잡지식을 동원하고, 처음 반딧불을 본 곳이 어디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10대 그쯤으로 돌아간 것처럼 시끄럽고 시끄러운 저녁이었다.


어두운 숲 길을 따라 반딧불이를 찾으며 감탄할 때. 먼저 떠오르는 "우리 아이들 참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에 다시 40살로 돌아오는 나를 보게 된다. 이제 나의 돌아감은 늘 아이들과 안사람이 있는 곳이니까.




"걷지 말자"

"만보계가 놀라서 알람 보낸다"

"일단 먹자"

"비 온다"

두 번째 날의 아침 풍경이 정리된다.

절물자연휴양림으로 간다.
모를 때, 정말 순수하게 모를 때 가보지 않던 길로 가보는 용기가 생긴다. 익숙한 것에서 빠져나와 색색의 수국들을 뒤로한 채 "장생의 숲길"을 들어갔다.

가지위의 까마귀.. 어디로(?) 인도하는 것인지..

코스대로 걸어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장생할 만한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비를 부르며 여행을 하는 탓에, 몸에 딱 달라붙는 우의를 입고 걷고 또 걸었다. 말수도 적어지고 뛰엄 뛰엄 대열도 벌어졌다.

나의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나무의 바람이었을까.

부러진 나무끝에 다시 잎이핀다

폭풍우에 꺾인 것 인지, 오래되어 저절로 꺾인 것 인지 모르지만, 그 꺾인 나무 끝에 다시 잎이 피고 있었다. 무성하게 뻗은 수많은 나무들 사이에 유독 눈에 들어온 이 모습은 축 처진 어깨를 한 내 모습 같았다. 비바람에 부서져버린 것은 나의 뜻이 아니 었겠지만, 다른 나무들과 비교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끝에 다시 잎을 피운다. 다시 피어서 무성한 잎을 드리우고 하늘을 향하고자 하는 나무의 바람이 그 작은 잎에 가득한 것 만 같았다.
잠시 멈춰 서서 토닥토닥 나무를 위로했다.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거야"

옆에 있는 다른 나무처럼 키를 키우고 가지를 넓게 뻗기는 힘들 겠지만, 그래 뭐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해도 이 숲 속에서 적어도 지나는 한두 사람에게는 또 다른 의미 하나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바람도 아직 시들지 않아 잎을 내밀고 있음을 확인한 것 같았다.

길은 다시 이어지고 시작했던 자리로 돌아온다.

돌아갈 곳이 있으니 여행의 시작도 있고 끝도 있다.

여전히 미혹 한 보따리씩 들고 다니지만, 뭐 어떤가.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불혹 하고 싶은 미혹 덩어리들이라 맘 편히 다닐 수 있었나 보다.

10년 뒤 여행은 우선 살아 있는 사람끼리 가보자는 모종의 약속을 하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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