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위치에 선다는 것
주말이면 종종 엄마집에 가서 함께 묵은 짐들을 정리하던 때였다.
지은 지 올해로 35년 된 엄마와 아빠가 지은 집이다. 내가 10살이 되던 해, 우리가족의 꿈이 서려있는 집, 그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우리 삼 남매들. 이제는 손주들이 아파트의 답답함을 벗어나 마당에서 물놀이도 하고,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미지의 모험심을 키워가는 그런 집이 되었다.
다섯식구 옹기종기 살았던 집은 방도 많고 오래 묵은 짐도 많은데다, 나이가 드니 손볼데가 자주 많아졌다.
물품이 부족한 시절을 살아낸 엄마세대 답게 우리집에도 옛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가구들의 서랍마다 잠자던 물건들을 꺼내어 버릴물건을 솎아내고, 사용할 건 먼지를 닦아 재배치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한번 맘먹고 먼지를 닦아내고 나면, 신비한 마법의 빗자루가 지나간 듯 가구에서 생기가 나고 싱그런 햇살이 들어와 빛이났다. 생명을 다한 듯 보였던 가구들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그럴때면 엄마는 “딸 덕분에 집이 훤하다. 너무 좋다”고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주었다.
그 날도 아침부터 엄마의 옷 방에서 낡은 옷들을 꺼내어 정리 하던 중이었다
“가만 있어봐라. 우리딸 고생하는데 내가 라떼 만들어 줄게”
물건을 쉽게 사는 일이 없는 엄마가, 라떼를 만들어보려고 다이소에 가서 ‘미니블렌더’를 샀다며 꺼내 보여주었다. 2,000원 이라는 글씨가 적힌 건전지를 넣어 작동하는 싸구려 블랜더
엄마는 올해초 시니어일자리에 지원하여, 동네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하루 3시간씩 일을 한다. 엄마가 평생 해오던 밥을 하고, 돈도 벌고, 맛있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다고 보람 있어 했다. 새로운 활력이 느껴졌기에 나는 그런 엄마를 응원했다.
엄마는 선생님 한분이 매일 엄마가 일하는 주방에 들어와 ‘라떼’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그 선생님에게 라떼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시도 해보려고 ‘미니블렌더’를 샀다며 설레는 표정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옷장 정리에만 온통 정신이 팔린 내 앞에, 두잔 중 그나마 성공한 거라며 수줍게 내민 잔을 한 모금 들이키니 두유 속 녹지 않은 인스턴트 커피의 덩어리가 씹혔고, 두유와 커피는 전혀 섞이지 않은 맛이었다.
나는 무심하게 “원래 이런 맛이가? 난 별로” 라고 잔을 내려놓고는 하던 일에 몰두했다.
엄마는 아까운 두유만 버렸다고는 컵을 들고 나갔다.
옷장 정리를 마무리 한 후 엄마와 외식을 하고 들어오는 길에 엄마 친구분께 전화가 왔다
엄마와 함께 시니어일자리를 신청했고, 다른 곳에 배정된 분인데 종종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힘들어서 그만할란다”고 푸념을 하시는 분이셨다.
“우리가 이 나이에 돈을 어디가서 벌 수 있겠노? 그냥 아무일 없이 노는 것하고, 일 하루에 세 시간씩만 하면서 노는 것하고 기분이 다르더라. 노는 것도 기분이 나더라. 보람도 있고, 돈도 벌고. 니 그만두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 2천명이나 대기하고 있다는데 얼른 다음사람 배정해서 앉히겠지. 그때가서 후회할래? 다들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데 우리는 할수 있으니 얼마나 좋노. 더러운 꼴 못본 꼴 봐도 못 본척 참아라!!알겠제? ”
주위의 모든 분들이 다 그만하라고 부추기는데 유일하게 엄마만이 참으라 했고 현재까지 일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도 맘이 상하면 엄마의 이야기에 마음을 다잡는 친구분이시라고 엄마덕에 참고 견딜수 있어 엄마가 해주는 조언을 고마워하신단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 들렀고, 매번 달달한 라떼를 주문하던 엄마가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엄마 근데 그 선생이 만들어준 라떼는 맛있었나? 엄마가 만든거랑 비슷하더나?“
엄마는 그 라떼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매일 라떼를 만들어주는 이는 엄마가 아닌 ‘국장’이라는 직책의 대빵이라고 했다. 라떼를 만드는 것을 보고, 그 맛이 너무 궁금했지만, 차마 만들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만드는 방법을 배워온 것이라 했다. 일터에서의 엄마는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 실감 되었으며, 그것을 견디고 받아들이는 엄마를 떠올리는 것이 속이 상했다.
늙는다는 것,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서지 못하는 것. 나 또한 엄마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어쩌면 나도 시스템이 정해준 위치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이렇게 대하고 있을 테지만. 긍정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엄마의 일터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위대해 보였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곧 중요하지 않은 위치에 서게 될 딸로써, 위대한 엄마에게
제대로 라떼를 만들어 대접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