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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자두 Nov 16. 2022

개발자 세계에서 벗어나기

개발자를 그만 두기까지

“ 너 진짜 관두면 두 번 다신 너 안 본다.”


유난히 추웠던 날. 저는 같이 일했던 스승이나 다름없었던 사수에게 개발자를 그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전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고, 안 좋은 소리를 들을 거라는 것도 예상했었는데 돌아온 답은 더 이상 저를 보지 않겠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기획자로 살아가도 같이 일했던 시간과 같이 어울렸던 시간이 길었기에 두 번 다시 안 본다는 말은 조금 충격이었죠. 그래도 제 의지는 확고했고, 더 이상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에 저는 안보는 한이 있더라도 의지는 확고했기에 저 말에 다시 답을 했습니다.


“저를 보는 것도, 안보는 것도 과장님 선택이시니까 괜찮아요. 일 못하는 저를 거두어 주신 것도 감사했고 제가 개발자를 관둠으로써 가장 마음 아파하실 거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기획자라는 길로 다시 살아가려고요. 이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8년 가까이 쌓아 둔 경력을 한 번에 버리고 기획자로 살겠다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요. 하지만 앞날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저에게 있기에 누가 말려도 저는 제 갈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상태였죠. 


“다시 처음부터 하자. 내가 다시 가르쳐줄게. 그러니까 개발자 그만하겠다는 거 취소해라.”


과장님은 진지하게 다시 저를 설득하셨고,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알았기에 저는 고개만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몇 초 정도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해요. 개발자는 제 길이 아닌 거 같아요. 제 실력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제 실력은 연차에 비해 형편없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온갖 손가락질을 당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기고 결국엔 공황장애까지 오게 되었죠. 그래서 개발자의 길을 끝내는 게 제가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개발자의 길을 포기하기 몇 개월 전 기획자와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기획자가 하는 모든 일이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이것저것 물어봤고 그 기획자 분이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자두 씨. 기획자 하면 잘할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가는 길을 바꿔봐요.”


그때부터 기획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제 결심은 확고해졌습니다. 저에게 다시 시작하자는 스승의 말도 뿌리치고, 올해 초 저는 새로운 회사에서 기획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직은 걸음마 정도의 수준이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사람들의 비난도 줄어들고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오히려 공황장애가 나아질 정도였으니까요. 사람은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하던 일을 관두는 결정은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만큼 뒤따라 오는 손해도 안고 가야 합니다. 그래도 제 경험상 돈도 중요하지만 내가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에 집중력도 올라가고, 일이 힘들어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참 중요합니다. 


지금은 같이 일했던 개발자 분들과의 인연은 모두 끊겼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네요. 어떻게 보면 저를 가르치고 이끌어 주던 사수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이 많이 죄송합니다. 그러나 개발자를 계속했더라면 오히려 사수를 힘들게 했을 겁니다. 


기획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얻은 것보다 잃는 게 조금 더 많았지만 (기획자로써 얻은 건 많습니다), 제 앞날을 생각한다면 그때의 선택은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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