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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자두 Nov 09. 2022

네가 얼굴이라도 예뻤더라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솔직히 너 학벌도 내세울 것 없고, 그렇다고 빠릿빠릿 일을 잘해서 눈에 띄는 사람도 아니잖아. 너 그러다가 평판만 좋은 사람 된다. 그럼 뭐가 남을 것 같아? 아무것도 안 남아. 계속 승진 못 하고 뒤에 너만 남아.

메이지 -  ‘퇴근길, 밤하늘 아래 별을 세며’ 中


책을 읽고 있던 저는 이 구절을 보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20대 중반 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책에서 작가는 상사의 일방적인 폭언임에도 불구하고 따끔한 질책이라며 당시 본인을 자책했다고 합니다. 저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상사들이 저에게 조언이랍시고 했던 폭언들이 상당히 많았더라고요. 아예 대놓고 모욕감을 주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상사들이었습니다.


사회생활 1년 차가 조금 지났을 때, 저는 바로 윗 사수가 차장인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2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저는 당차고 싹싹하다는 말을 들었죠. 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회사 화장실에서 남몰래 숨죽여 울거나 지쳐서 점심조차 거르는 날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이 왜 ‘네가 얼굴이라도 예뻤더라면’ 일까요? 눈치채셨겠지만, 실제로 제가 그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차장님께 들었던 폭언 중에 하나입니다. 무더웠던 여름날, 그날은 오랜만에 정시에 퇴근하던 날이었습니다. 때마침 집 가는 방향이 같았던 차장님과 나란히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고 있었죠. 평소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차장님이 셨는데, 그래도 상사였기에 그분이 저에게 했던 모든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같이 걸어가던 중 대뜸 저에게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차장 : “ 내가 너 가르쳐줄 맛이 안 난다.”

나 : “ 네? ”

차장 : “ 네가 얼굴이라도 예뻤으면 일 가르쳐줄 맛이라도 있을 텐데 그런 맛도 안 난다고. 회사 다니는 재미가 없어.”


7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으니까요. 그날 차장님을 먼저 보내드리고 집으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사람들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죽여 울기만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당히 불쾌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저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곧 터질 것 같은 속을 억누르며 집으로 향하던 길. 저는 가끔 그때 일이 생각이 나는데,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 차장님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저를 폭언으로 괴롭혔던 상사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지옥 같았던 2년간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야 더 이상 그 분과 같이 마주칠 일은 없었습니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그 차장님 뿐만 아니라 부장님 한 분도 유독 저에게 박하셨죠. 평상시 일 할 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제가 실수를 하거나, 본인 마음에 안 드는 결과물을 가져올 때는 제 머리를 살짝 쥐어박거나 자기가 하겠다며 저를 옆으로 밀치고 그 자리에서 일을 처리하시던 분이셨죠. 그 부장님 역시 프로젝트만 끝나면 더 이상 같이 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습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 퇴사를 하지 않는 한 다시 만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대리 1년 차 시절, 당시 수행하던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하여 부장님이 서포터를 하기 위해 잠깐 오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한 결과물을 보시고는 계속 제 어깨를 툭툭 치시면서 화를 내며 말씀하셨죠. 결국 저는 과거 프로젝트에서 겪었던 서러움과 함께 내가 이런 처우를 받아가며 일을 해야 하는 막막한 현실에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옆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들도 놀라서 저와 부장님을 쳐다봤죠. 제가 눈물을 터트리니 처음엔 당황해하시다가 “야 뭘 잘했다고 울어. 네가 울 자격이나 있어?” 라며 모든 직원들 보는 앞에서 소리를 크게 내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부장님과는 같이 프로젝트를 할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런 폭언을 들었던 첫 회사였던 전 직장을 정확히 7년 4개월을 다녔습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폭언과 모욕감을 주는 말들을 들었지만, 그때마다 저는 다 내가 못해서, 내가 잘하는 게 없어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며 버텼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버텨서 얻어낸 건 정신과를 다녀야 하는 환자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벼랑 끝에 몰아 병들게 한 결과는 치료를 위해 쓰인 많은 비용,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존감, 그리고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치료를 받아도 트라우마는 계속 남아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계속 부딪쳐야 나중에 아무렇지 않게 흘러 보낼 수 있다고 했지만, 퇴사 후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나서도 한 동안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회사가 아닌 일상에서도 지인들과 의견 대립으로 부딪칠 때마다 그때의 기억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저를 괴롭혔죠. 지금은 그런 폭언과 모욕적인 말들에 대해서 흘러 듣는 법을 배워서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이제는 그런 폭언을 하거나 모욕감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과 부딪치면 ‘아, 저분 또 저러네’라는 생각을 하며, 쓰레기통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폭언, 모욕감을 주는 말들과 조언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과거 제 동기들 역시 그 당시에는 폭언인 줄 몰랐던 말들을 지금에서야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저의 과거처럼 사회 초년생인 직장인 분들은 더욱 걸러 듣기 어려울 것입니다. 연차가 쌓인 직장인들도 이게 조언인지 아닌지 헷갈려하니까요.


조언의 사전적 정의는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입니다. 말로써 상대방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조언이라는 명분 하에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차라리 아무 말 안 하고 모른 체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가 깨달은 것은, 폭언과 모욕감을 주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본인들의 자존감이 낮아 자신보다 만만한 사람에게 이런 언행들을 일삼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차장님은 본인의 능력을 윗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자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했습니다. 그분 역시 저에게 했던 모욕적인 말들을 윗사람들에게 똑같이 들었다고 합니다. 되돌려 받았을 때의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요? 아마도 똑같이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저에게 했던 그 폭언과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누군가에게 하고 있을 테니까요.


끝으로 사회생활에서 조언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 앞가림이나 잘해도 모자를 시간에 상대방에게 조언이랍시고 던진 말이 그 사람에게는 폭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요. 사회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행동이 바로 ‘말조심’입니다. 내가 생각 없이 뱉은 말은 언젠가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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