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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자두 Nov 11. 2022

일만 잘하면 다야?

일 잘한다고 인성까지 버리지는 맙시다.

이 질문에 대답은 ‘응. 회사에서 일만 잘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라는 답이 대부분입니다. 저 역시도 일을 하고 그에 맞는 월급을 받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일만 잘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지금도 일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일을 못해서 매일 불려 다니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하나둘씩 회사 밖의 자리에서 저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비꼬는 듯한 말과 대놓고 무시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잘하지 못하니까 당연한 소리를 듣는 거니까 내가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어서 비꼬는 듯한 말과 후배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하는 말까지 들었어야 했었죠. 그런 말들이 조언이라고 마음에 새기면서 일할 때도 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습니다. 지옥 같은 회사 생활인 걸 알면서도, 출근 길마다 ‘오늘은 어떤 소리로 나를 혼낼까? 또 그런 소리를 들을 거면 그냥 가던 길에 사고가 나서 며칠간 출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늘 들었죠. 그럼 왜 그런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참았던 이유가 뭐였냐구요? 그 사람들은 일을 너무 잘했고 제 사수이자 스승들이었으니까요. 스승이 제자가 잘못된 길을 가는데 혼내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저를 많이 가르쳐 주었던 스승 같은 분이 계시던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합류하게 되어 부지런히 업무 파악을 하는데, 제가 워낙 습득력이 늦다 보니 합류 후 일주일간 밤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을 쫓아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업무 파악은 간신히 해냈으나 실전에서의 업무를 배정받았을 때 근무시간이 끝나가는데도 많이 헤매고 있으니, 답답했던 저의 스승님이 오셨습니다. 어디까지 했으며 어느 부분이 문제냐는 말씀에 설명을 드렸죠. 얼굴이 굳어지시더니 잠시 비켜보라며 직접 해결을 해주셨습니다. 너무 고맙기도 하고 머쓱해서 작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정색을 하시면서 말씀하시길,


“ 웃지 마. 진짜 한대 치고 싶으니까.” 


이 말씀만 남기시고는 다른 윗 직원 분들과 후배들에게 웃으면서 술이나 한잔하자며 말씀하시고는 퇴근하셨습니다. 저에게 한대 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간 뒤, 저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눈물이 터졌습니다. ‘이제 이 일을 관둬야 할 준비를 해야겠다. 내년까지만 버티고 이제는 미련 없이 내려놓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날 이후부터 저는  당시 하던 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 할 일 만을 하며 손을 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들었던 말들은 ‘야 이 연차에 그 돈 받고 일하는 거 안 창피하냐?’라는 말도 들었죠. 네, 창피하더라고요. 후배들 앞에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제가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래도 버텼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다 조언이다. 윗 분들 말을 잘 새겨듣자 하면서요.


늘 참고 살던 제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적이 있었는데, 바로 회식 자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늘 제가 일을 잘하지 못해서 제 스승님이신 과장님이 안쓰러우셨던 차장님 한 분이 취기가 올라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숟가락을 세게 내려놓으시며 저한테 말씀하시더군요.


“ 야, 너 양심 있으면 그렇게 살지마. 네가 첫 제자라고 못 놓고 있는 거 보면 불쌍해 진짜. 네가 뭐라고 쟤가 저렇게까지 너를 가르쳐야 하냐?” 


네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근데 후배들 앞이라 너무 수치스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술을 따라드리려고 하니, 됐다며 제 손을 쳐 내 리시 셨죠. 분위기는 좋지 않았고, 과장님은 수습을 해보시겠다며 다시 분위기를 띄우셨습니다. 그래도 차장님은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연거푸 몇 잔을 연달아 드셨죠. 저는 안 되겠다 싶어 집에서 급하게 연락이 와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눈물을 꾹 참고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썼습니다. 당시에 적었던 글입니다.


‘그래.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해야 하냐.

그 돈 받고 일하면 창피하지 않냐는 소리도 들어보고,

지금 까지 수많은 말을 들었지만 늘 참았는데.. 오늘은 왜 그게 안되는지 모르겠다.

이 일에서 손을 떼야겠다는 생각을 잘한 것 같다.

내년까지 준비를 잘해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게 하자.

오늘 많이 수치스러웠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잘 버텼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의 정리는 더욱더 빨라졌고 그다음 해 저는 8년 가까이하던 일을 내려놓고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떠나고 나서 새롭게 시작하여하고 싶은 일을 하니 마음이 많이 편합니다. 지금은 좋은 사람들 옆에서 같이 일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기획자라는 직업을 잘 선택한 것 같아서 늘 행복합니다. 본인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면 실력도 좋아지고 인정받을 수 있으니 지금처럼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들으니 힘이 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일을 잘한다고 해서,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말을 할 권리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에게 던진 한마디가 평생의 기억으로 자리 잡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 할 수 있는 일 마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모욕적인 말들을 일을 잘한다는 명분으로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을 잘하고 인정받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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