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찾아왔던 붉은 인연이
아직도 담장 위에 머물러 있는데
주먹만 한 눈송이가 또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내린다.
아주 푸짐하다.
바람은 불량배처럼 지상을 배회하고
차가운 기류를 따라 유유히 공중을 유영하던
눈송이들이 바람이 화들짝 달려드는 바람에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철새가 군무를 펼치듯
범고래의 공격을 피해 멸치 떼가 도망치듯
이리로 휘리릭, 저리로 휘리릭휘리릭
몰려다닌다.
지상으로의 방문이 숨 가쁘다.
잠시 한눈팔다 내다보니 창밖이 고요하다.
저렇게 짧은 탄생과 소멸이라니,
잠깐동안 지상의 시간을 살다 사라진 흰 눈과의
짧은 인연에 허탈감이 몰려온다.
가까스로 창문에 매달려있던 눈물방울 하나가
주르륵 흘러내리며 떠나는 인연을 배웅해 주는 해프닝 같은 하루,
우리는 오늘도 또 이렇게 조금씩 저물어가는가?
*"모든 육체는 풀이요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그러니 한순간 머물다가는 이생에 삶에 집착하지 말 일이다.
*성경: 이사야 40장 6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