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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엽 Nov 03. 2023

개념 기반 탐구학습의 실천

실천의 아이디어

 사실적 지식(브루너는 이것을 중간언어라 불렀다.)의 전달은 1. 학습자의 수준 2. 학습자의 흥미와 관심 3. 지식의 양이 폭증하는 현시대 4. 교사의 체력과 지식 전달의 한계 등의 이유로 한계성이 지적되었다. 


평가의 체계가 지식의 양과 그것에 대한 이해(암기) 정도의 측정으로 가름되는 지금 어떻게 보면 지식 전달식의 교육 방식은 효율성을 담보하기에 수많은 교실에서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인정은 하지만 현실은 바뀌어지지 않은 지금의 세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비단 교육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그런 양태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결국 사회 구조나 체계(시스템)의 문제일까? 그것으로만 치부해 버리고 안주해 버리는 것 또한 실천자로서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실천적 측면에서 대안은 무엇인가? 전통주의 교육관에 따른 반발로 진보주의 교육에서 주창하는 바에 따르면 '아동중심교육'이다. 듀이로 대표되는 경험과 학습자의 발달단계와 심리학을 반영하여, 기존의 '주물형 교육 방식'이 아닌 회상으로서의 '끄집어내는 교육'을 강조한다. 하지만 진보주의 교육은 너무도 학습자의 주도성을 강조한 나머지 교육에서 '내용'이 빠지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재미있는 수업이지만 알맹이는 빠져있는' 정작 본질을 벗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로 미국은 자국의 교육을 재조사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미국은 전통교육관에 대한 성찰로 '경험중심'교육과정을 이행하고 있었고 지금의 '아동중심교육'에서 반성할 것은 무엇인지 교육각계의 전문가들과 이론가, 실천가들을 우즈 호울이라는 곳에 소집하여 회의를 벌였다. (사실 이때 모인 집단은 주로 물리학계 교수와 교사, 그리고 교육전문가들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교육에서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지적하고, 교과를 교과답게 가르치기 위한 핵심적 확신과 대담한 가설로 유명한 '교육의 과정'이 보고서로 나오게 되었다. 

'교과에 스며있는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는 '핵심적 확신'과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수준을 달리하여 교육을 한다면 3학년 초등학생도 물리학자와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설(대담한 가설)을 세웠고, 이것이 바로 '학문'이며 새롭게 주창된 '학문중심교육과정'의 시작이었다. 


 자, 내용을 다시 교실로 가져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지식의 구조를 나선형 교육과정으로 가르치자고 하자. 그러자면 이러한 의문이 또 생길 수 있다. 1. 모든 교과를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가?, 2. 교과의 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교과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3. 교과 간 통합(융합) 형 수업에서는 어떤 아이디어를 차용해야 하는가? 4. 아직 형식적 사고가 분화되지 않은 어린 학생에게는 어떻게 이 구조를 이용하여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교과에 스민 기본 아이디어는 '탐구'라는 기본적인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탐구가 아닌 교과는 어떻게?'라는 근원적인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탐구'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문제인식->가설설정->가설검증->일반화->적용의 순을 따른다. 기존에 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기에 '발견학습'이라고도 하고 귀납적으로 일반화된 이론을 추출해 내기에 과학과 사회과와 같은 교과의 전형적인 학습 방법이다. 하지만 기능과 표현이 강조되는 국어나 영어와 같은 언어, 문학, 예체능의 교과에 '탐구'라는 형식을 대입하면 그것은 교과의 본연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퇴색시킬 수 있다.


탐구학습과 개념기반 학습이라는 두 가지 별개의 교수학적 접근 방식을 결합한 위의 벤다이어그램을 본다면 '개념적 이해'를 위한 탐구학습과 탐구학습의 구별을 인지할 수 있다. 개념기반 탐구는 학생들이 전이 가능한 이해를 명확히 하고 다른 탐구 모델에 있는 탐구 기술과 전략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는 탐구학습의 한 형태를 나타낸다고 보다. 


 위 그림은 개념적 렌즈로 학습의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적 지식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닌 보다 고차원적인 사고로 대상을 바라보고 보다 맥락적인 파악을 위한 개념적 이해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본다'는 말을 대입하면 적절할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적 지식이 가볍게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적 지식'은 개념을 형성하는 근간이고 주춧돌이 되기에 사실적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개념은 더 정교해지고 개념적 렌즈는 더 맑고 투명하여 학습 대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기능이나 표현교과는?이라고 묻는다면 래닝(Lanning)이라는 학자가 '과정의 구조'라고 제시하였다. 즉 기초적인 기능부터 상위의 기능으로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일련의 과정으로 학습하고 그것을 일반화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골대형 게임에서 빠른 공수의 전환은 득점에 유리하다'는 일반화에 따라 '연결', '변화' , '책임' 등의 개념으로 드리블, 패스, 슛 등의 기능을 익힌다면 훨씬 구조를 조망할 수 있는 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탐구는 일반적으로 '개방형 탐구', '안내된 탐구', '구조화된 탐구'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구분 기준은 얼마나 학생들에게 열려있나? 가 될 것이고 보통 학교에서는 '절차'나 '주제', '개념'에 따른 '안내된 탐구'의 형태를 많이 따르고 있다. 

이와 같은 안내된 탐구는 브루너가 말한 '학습하는 방법의 학습', 이것을 듀이로 말하면 '경험', 이것을 피터스로 말하면 '교과'로 궤를 연결할 수 있다. 전통적 교육관과 진보적 교육관은 어찌 보면 거시적으로 같은 목적을 지향한다. 바람직하게 계획된 대로 학생들에게 교과의 내용을 전하고, 그것이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로 입문시키기 위한 의도된 활동이지 않나?) 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개념의 틀, 즉 프레임이 달랐을 뿐이다. 

힘들게 억지로 꾸역꾸역 사실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서 학습자의 주도성으로 관심이 옮겨가 이제 '학문하기'와 '개념기반 탐구학습'으로 그 관심이 옮아져가고 있다. 

쓰지 말아야 할 4개의 단어가 있다고 들었다. 전적으로, 절대적으로, 당연한 것은, 원래는... 이런 말들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겸손'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에서 가치를 찾자는 '존중'을 강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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