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밀도 실험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커다란 자갈만 유리병에 담게 되면 밀도는 떨어진다. 반면 자갈사이의 빈공간을 흙이나 모래로 가득 채운다면 유리병의 빈 공간은 쉽게 볼 수 없다. 즉 밀도는 꽉 차게 된다. 자갈은 개념이요 흙이나 모래는 세부사실이라 할 수있겠다 요즘 학교에서는 '개념기반', '이해중심', '탐구학습'이 강조된다.
개념이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나 관념'으로 정의되는데, 우리 인간들의 공동의 맥락적 사고가 작용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개념'이다.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지구에서 번성하고 유니크한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까닭을 공동의 상상, 즉 개념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개념의 비유(출처 위키백과)
R.S 피터스는 '교육'을 '성년식'으로 비유했는데, 이것은 인류가 이룩한 '문명화된 삶의 형식' 으로의 입문을 뜻한다. 문명화된 삶의 형식은 학교에서 '교과'라는 이름으로 가르쳐지고 있고, 학습자들은 이것을 학습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과'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교과를 교과답게 가르친다'는 것은 1960년대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이끌었던 '브루너'의 '교육의 과정'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호의 발사로 1959년 미국 교육계는 지금의 교육을 재진단하고 성찰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우즈호울'이란 곳에서 유수의 교육 종사자들이 모여 개최하였다. 이 회의 결과의 보고서 격인 '교육의 과정'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대담한 가설로 각각의 학분분야(교과)는 그 학문의 독특한 기본 구조(structure)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며 교육과정을 구성할 때는 이런 기본 구조를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핵심적 확신으로 교과는 어떤 교과이든지 지적으로 올바른 형식으로 표현하면 어떤 발달단계에 있는 학습자에게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브루너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지식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하는 일이나를 막론하고 모든 지적활동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학문의 개념이나 원리, 또는 태도, 사고방법 등이 학생의 발달단계가 높아짐에 따라 그 지적 성격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점점 세련된 형태로 가르쳐지도록 계획되는 '나선형 교육과정'은 제기된다.
즉, 교과를 교과답게 가르친다는 것은 교과에 스며있는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구조를 가르친다는 것이고 이것을 학습자의 수준과 발달단계에 맞추어 그 지식의 획득과정을 학자들이 하는 일과 동일하게 한다는 것이다. 브루너는 탐구의 결과를 중간언어(middle language)라 표현하며 이것을 전달하기에 급급한 학교 교육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렇게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교육에 대해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에서는 아직도 어쩔 수 없이 지식의 총량을 주입하는 교육의 방식이 선호된다. 하지만 이것은 브루너가 말한 중간언어의 전달에 불과하며 교과답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위의 밀도 실험으로 돌아가보자. 우리의 인식의 밀도를 채우기 위해서는 개념(자갈)의 위치가 중요하다. 먼저 핵심적인 개념을 채워 넣고 사실적인 지식(모래 또는 흙)을 채워 넣는 것이 밀도를 높이는 간단한 방법이다. 핵심 개념은 하나의 문장 또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될 수 있으며, 이것은 교과다운 아이디어의 바탕이 된다. 교과에서 이론으로 정립된 핵심개념을 바탕으로 한 학습은 학습자가 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지표가 되며 다른 교과에도 전이되어 교과 간 융합적 학습에도 용이하다. 또한 명확하게 핵심개념을 이해했다면 그 정보만으로 그 교과 또는 다른 교과를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다음의 도표는 Lanning이 주창한 지식의 구조다. 개념은 상층부를 이루며 그 위에는 일반화된 이론, 즉 핵심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IB PYP에서는 전이가 가능한 큰 개념을 Key concept, 교과 내에서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을 Related concept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Key concept는 형태, 기능, 원인, 변화, 연결, 관점, 책임 이 7개로 정리했으며 이는 초학문적 주제(문명화된 삶의 양식으로 교과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6가지 주제)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다. 관련개념은 핵심개념과 같은 일반성이나 전이성은 떨어지지만 하나의 탐구 덩어리(Unit of Inquiry)를 해결하기 위해 분명히 알아야 할 개념을 말한다.
LAnning (지식의 구조)
핵심개념을 먼저 가르치는 것은 과연 교과다운 학습인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학자들이 탐구하는 교과의 학습방식과 초등학교 3학년의 탐구의 방식은 수준만 다를 뿐 그 지적활동은 동일하다고 하지 않았나?
귀납적인 탐구와 발견을 통해 일반화된 이론으로 나아가는 과학과나 사회과를 탑다운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모순이지 않나?
초등학교의 성취기준은 2015 개정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사회과만 72개다. 그것도 2009 교육과정에 비해 대폭 줄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교실에서는 부담스러운 숫자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관련개념들만 추출해도 탐구학습으로 모든 지식을 다루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 단원에 핵심적 탐구활동을 중심으로 나머지 수업은 실제 주입식 전달학습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토의토론이나 조사학습 등의 학생들의 활동을 강조하는 수업의 형태로 일부 진행한다 하더라도 큰 프레임에서는 세부지식들을 전달하는 수업에 다름이 없다.
그러기에 핵심개념은 더욱더 탑다운식으로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핵심개념은 세부적 지식보다는 명료하지 못하고 생소할 수 있는 추상적 성격이 강하지만 교과 전반에 적용되는 보편성과 구체성을 띠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다. 즉,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관련 지식들은 체계적으로 확장되어 상호연관성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핵심개념을 먼저 연역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은 전체의 윤곽을 먼저 이해한 후 세부적인 스케치를 더해간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교사의 의도된(Guided) 탐구의 형태로 학습을 이어나갈 수 있어 이것이 지식의 최전선에서 탐구활동을 하며 지적활동을 하는 학자들의 모습과 괴리된다라고 단순히 지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학자들도 강력한 핵심개념을 바탕으로 세부사항을 연결시키고 그 가운데 새로운 이론이나 가설을 검증해 나가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우리는 '문명화된 삶의 양식'으로써 '교과'를 가르치고 있고 교과라는 그 틀 속에 포함된 지식들을 전수하여 학습자들을 보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과답게 가르친다는 것은 교과의 이론들을 정립해 나가는 학자들의 모습을 수준만 달리하여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브루너는 <교육의 과정>에서 전범(典範)이라 말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입시제도 아래에서는 이러한 학습의 방식으로는 다루어야 할 세부적 지식을 모두 다루기가 어렵고, 평가의 방식과도 연계성이 떨어지는 학습의 방식이기 때문에 하릴없이 주입식, 전달식 수업을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현실의 제도에 따르자면 모래(세부지식)를 방향성 없이 먼저 채워 넣기보다는 자갈(핵심개념)을 먼저 채우자는 것이다. 그것이 인식틀의 밀도를 높이고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핵심개념을 우선하는 수업을 위해서는 그 교과에 대한 교사의 이해정도와 가르치는 기술, 자료의 재구성 능력 등 수준 (水準)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