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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엽 Jan 03. 2024

5. 우리는 어떻게 배움에 다가가는가?

기억을 일으키기 위한 기둥

이해가 가니?

이해중심, 이해기반, 이해집중 등 '이해'를 강조하는 교육의 풍조는 여전히 지속적이다. 암기식의 기존 학습에 대한 반대급부적 표현으로 '이해'를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해를 했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적 차원을 넘어선다. 이름(명칭)을 알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해서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안다!'라고 표현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지식의 구멍'을 우리는 쉽게 발견하게 된다. 

교육에서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를 강조하고 기저에 두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해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보다 초입으로 들어가는 길을 쉽게 밝혀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해는 어디에서 오는가?

블룸(Bloom)의 인지영역에 따른 교육 목표 분류 체계에서도 볼 수 있듯 이해 이전에 '기억'이 있어야 한다. 

기억이 있어야 해당 영역이나 주제에 대한 이해가 오는 것이다. 교과 중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단순히 암기하여 그것으로 시험을 잘 치른다고 해서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적어도 역사적 사건의 전후관계 즉 맥락을 이해하고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다른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사건에 관여한 인물과 인물들의 의도 등을 모두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우리는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예를 들어보겠다. 항일의병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조선말기 즉 일제강점기 직전 의병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여러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왜 하필 1895년, 1905년, 1907년인가?, 1910년대 이후 의병활동은 왜 사라졌는가?, 사라진 의병활동이 1920년대 이후 그것도 중국 만주 지방에서 다시 일어날까? 하는 것들이다. 

이런 의문은 가설로 만들어진다. 가설조차도 해당 사건에 대한 단순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즉 기억이다. 

기억은 우리의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이라면 기억의 선명성은 더 올라가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학습해야 할 교과를 모두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주입과 암기는 필요하다. 주입과 암기가 단순한 사실적 기억이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이해는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사실적 지식은 전편에서 언급했던 지식의 구조에서도 가장 기본 기둥을 이루고 있음을 다시 언급한다. 

공부하고자 하는 영역이나 주제에 대한 사실적 지식이 없으면 이해의 질은 떨어진다. 이해를 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해 후 적용이나 분석으로 이어지기도 힘들다. 이해를 강조하다 보니 너무도 분명하게 지식의 구조를 받치고 있는 단순한 사실에 대한 기억, 즉 암기를 소홀히 하고,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암기는 지겹고 재미있지 않으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재화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주입이 되지 않으면 주는 사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상호가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기억될 뿐이다. 또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교육을 받아 왔고 지금도 그렇게 교육을 하고 있기에 이해를 강조한 다른 교육의 방법을 강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된 지식이 결국 우리의 이해를 구성한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불변의 진리다. 다른 원리가 없다. 우리는 기억된 것만 지각하고 지각된 것만을 기억한다. 

지식의 핵심에 이르는 기억을 강력하게 새기기 위한 노력으로 고리타분한 주입과 암기식이 아닌 다른 효과적인 방법을 우리는 무수히 시도해 왔고 지금도 부단하게 다양하게 시도하려 하고 있다. 

플립러닝, 토의토론학습, 하부루타, 프로젝트학습, NIE(신문활용교육) 등 학습의 방법에서부터 ICT, 비주얼싱킹 등의 시각적 사고를 더 강조하는 자료들, 사고맵(Thinking Map), 마인드맵, 사고루틴(Thinking routine), 메타인지 사고법 등 사고를 시각화하는 방법들도 사용된다. 모두 다 훌륭하고 학습의 주제나 영역에 따라 적확하게 사용된다면 학습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이다. 가련하리 만큼 짧은 우리 뇌의 기억시간을 늘리기 위해(장기기억으로 옮겨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학습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이러한 방법적 측면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학습할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학습자들도 알고 있다. 어떤 교사가 훌륭하고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어떤 수업시간이 나에게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인지를. 수많은 학습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만 학습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것은 그 내용 자체가 학습자에게 와닿지 않는 것이다. 즉, 학습자의 이전 기억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학습의 내용은 학습자에게는 '우이독경'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학습할 내용이 학습자에게 효율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상태가 진단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처방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것은 다수의 학습자가 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일반적 교실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다. 따라서 다수의 학습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학습의 의욕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교사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교사가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교사의 능력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고 다시 학습자가 학습에 다가가기 위한 요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의식 단계에 도달한 감각이 이전 기억과 비교하는 순간 일어난다. 최근의 기억이 이전의 유사한 기억과 결합하게 되면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고 이것을 우리는 '이해했다'라고 말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억된 내용이 없으면 학습된 내용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것은 어렵다. 물론 이전 기억 없이 새롭게 학습하는 과정을 장기기억으로 만들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것이 바로 훈련이다. 반복적으로 빈도를 증가시켜 지속적으로 학습하게 되면 절차기억으로 바뀌어 장기기억으로 저장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의 43%, 즉 절반 가까이가 습관에 따른 행동이다라는 이론으로 비추어보면 '훈련'에 의한 절차기억과 습관화는 학습에 있어 상당히 의미 있게 고찰해 보아야 할 문제다. 수많은 학습에 대한 자기 계발서의 주제도 결국 이러한 효과적 훈련을 통한 루틴을 만드는 데 그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계획되고 의도된 학습의 방법이다. '기억'즉 '사실적 지식'에 우리는 익숙해져야 한다. 


지금까지 이해를 위해서 기억이 중요하고 기억을 위해서는 사실적 지식, 즉 학습할 내용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넷만 열면 나오는 강의영상, 입시를 위한 수많은 학습 영상은 엄청나게 많은 내용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나 학습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기초적인 사실적 지식, 즉 이전 기억이 없기 때문에 따분하게 들리고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학습에 대한 동기, 학습자의 주체적 활동 등 배움이 일어나기 위한 어찌 보면 더 강력한 작용을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먼저 어떤 학습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실적 지식의 기둥을 우리는 먼저 세워야 한다. 

그 사실적 지식, 즉 기억의 기둥을 세우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시간과 공간의 지식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민감해지면 어떤 학습의 내용도 조금 더 선명하게 들릴 수 있다. 우리는 결국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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