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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엽 Jan 16. 2024

핵심지식

핵심은 효율적이다.

정처 없는 이 내 발걸음~

80년대를 강타했던 박남정의 노래 가사다. 교육에서 핵심지식, 즉 알맹이가 빠진다면 교사나 학습자는 하릴없이 정처 없이 떠돌게 된다. 

우리가 문명화된 삶의 양식으로서 교과를 가르친다면 분명히 교과에는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지식이 존재한다. 그러한 지식들을 잘 엮어서 묶어 놓은 것이 교과서다. 교과서를 집어 들어 보면 참으로 재미가 없다. 집필자의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최대한 보편화된 지식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하다 보니 보수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 많은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가지들을 쳐냈을지 짐작이 간다. 여러분은 교과서 한 권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있나? 책이 소중했던 과거에는 그 교과서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아련한 기억이 있을 수 있겠지만 휘황찬란하게 편집, 디자인되어 나온 참고서와 각종 부교재 등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읽어야 할 것들은 넘쳐나기에 교과서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핍이 때로는 간절함을 만들기도 한다.  

국가에서 찍어내는 학교의 교실에서 일괄 배부하는 교과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국어와 도덕을 제외한 나머지 교과는 검인정 교과서다.) 어떤 교과든 꼭 다룰 수밖에 없는 지식들을 우리는 핵심지식이라 한다. 생물에서는 세포부터 시작해서 우리 인체의 구조, 지구과학에서는 암석의 종류와 구분, 태양계의 구조, 화학의 주기율표, 물리의 공식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역사에서는 연표나 시대순 왕이나 왕조 도표, 주요 인물이나 사건이 될 수 있겠고, 지리에서는 당연히 지도를 들 수 있다. 수학에서는 각 영역마다 주요 공식이나 기하에서는 도형이 되겠고, 언어에서는 문장을 이루는 단어와 문장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글의 형식을 들 수 있다.

이런 핵심적 지식에 바로 접근하기는 쉽지 않고 오히려 바로 투입을 시킨다면 거부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테니스의 핵심기술은 스트로크이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과 힘으로 샷을 쳐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립의 파지법부터 스텝, 시선처리, 손목의 쓰임, 스윙의 궤도 등 무수한 요소들이 합성된 것이 스트로크라는 하나의 핵심 기술이 된다. 세계지도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대륙과 대양, 면적, 위치, 거리 등 수많은 요소들이 집합적으로 사고될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계지도를 예를 들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세계지도를 볼 줄은 알지만 아마 그릴 수 있다는 사람은 전체에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지도에서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공부할 거리들이 나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실제적 표현인 '지도'를 가지고 공부하지 않고 있고 또 지도를 볼 줄도, 그릴 줄도 모르기 때문에 지리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정처 없는 발걸음으로 헤매는 경우가 생긴다. 어린 학습자에게는 어찌 보면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과거 조상들이 공부했던 방식이나 형태를 떠올려보자. 한자를 바로 외우고 쓰게 하고 모르면 혼이 난다. 어떤 뜻인지도 모르는 유년기에 주야장천 천자문과 사자소학, 동몽선습을 외우게 한다. 책을 하나 다 떼면 다음 수준의 책을 또 같은 방식으로 외우게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리'가 트이게 하는 원리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게 하고, 시를 쓰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글을 나눈다. 테니스도 마찬가지다. 아직 역학이나 몸의 쓰임, 기능 등을 깨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는 바로 스텝과 스윙연습을 무수히 반복시킨다. 최고의 NBA지도자 우든코치의 지도 방법의 핵심도 바로 이와 같다. 태도, 가치 보다 상황에 따른 드릴(drill)로 바로 들어간다. 몸이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지도로 돌아가보자. 많은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서 세계지도를 걸어놓지만 그뿐인 경우가 많다. 여기가 어딘지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보고 나라를 외우게 하고, 면적을 가늠해 보고 주요 바다와 해협이나 섬 등의 이름을 알아보며, 세계지도를 여러 차례 그려본다면 아마 정처 없이 헤매는 역사나 지리교과에서 핵심으로 바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플랜테저넷 왕조의 분파들인 랭커스터와 요크가의 잉글랜드 왕국 왕위를 놓고 벌인 장미전쟁은 여러 번 보아도 확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정리된 가계도를 보고 난 뒤 사건을 바라보면 한결 이해가 쉬워진다. '학문은 결국 언어학이다', '공부는 명사(이름)를 아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익숙하지 않고 또 여러 차례 반복되는 동명의 인물들이 열거되며 우리는 사건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정리해야 한다. 하나의 도표가 장황한 설명보다 이해에 도움이 될 수가 있다.

몽골사도 마찬가지다. 가장 어렵다는 몽골어로 된 여러 지명과 인물, 사건들은 어떤 책들을 읽어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칭기즈칸의 가계도와 몽골 지도를 그려보고는 한결 당시 몽골제국의 역사가 쉽게 다가왔던 경험이 있다. 


핵심은 분명히 있다. 준비운동하면서 곁만 맴돌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언제나 열면 열리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되잖아.'라는 마음으로는 교과의 내용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을 그 내용에 스며들게 해야 내 것이 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식이나 이론이 내 마음에 다가온다. 우리는 그것을 학습이라 말하고 공부했다고 한다. 학습에는 끝이 없다. 하나의 핵심지식을 익히게 되면 다른 핵심지식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즉, 질문이 떠오른다. 다른 탐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나라는 어떻게 멸망했는데? 그다음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지지? 주원장의 가계도를 그려봐? 명나라에도 우리나라 세조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데?.... 결국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와 같은 이론과 같은 명문장들이 내 가슴속에서 체화된다. 


실제 세상은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지도, 연표, 도표, 공식, 도형 이와 같은 핵심지식의 형태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단순하다는 것이다. 자연은 복잡하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의 공통적 속성들을 추출하여 언어와 같은 다양한 기호로 만들어 공유하고 그것을 맥락적으로 사용했을 때 우리는 개념이라 부른다. 위에서 언급했던 핵심지식들은 형태적 속성을 띠고 있다. 즉, 단순화시켰다는 것은 형태를 조작했다. 조작은 의도를 가지고 형태나 속성에 변형을 가한다는 뜻이다. 복잡한 것은 다루기 어렵다. 그리고 머릿속에 쉽게 저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화시킨다. 졸라맨이 한창 인기를 얻었던 때가 있었다. 여전히 이런 류의 그림들이 웹상에서 활개를 치고 서로 공유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공통된 속성, 즉 같은 개념으로 단순화시켜서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다. 나도 그릴 수 있고 너도 그릴 수 있다. 그러니 공유의 힘은 더 커진다. 세계지도 말이 쉽지 어떻게 그려?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 많은 숫자가 담긴 연표 어떻게 외워? 무작정 외우는 것은 힘들어. 고달파. 그리고 결국 재미가 없어. 이렇게 귀결된다. 그래서 학습자의 수준에 맞추어 더 단순화시켜 핵심지식으로 다가갈 것을 제안한다. 

나 역시 이렇게 단순화된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세계지도를 처음 익혔다. (웹상에 세계지도 쉽게 그리기라 치면 많은 방법들이 제시된다.) 그리고 복잡한 곡선을 점차 더해서 그려나갔다. 

동유럽의 수많은 나라들,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나라들도 그렇게 단순화시켜 외웠고(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시레요), 예오(사우디 하위 예멘, 오만), 마그레브의 나라들(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을 모알튀리와 같은 앞글자만 따서 외우기도 했다. 

반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빈도다. 집중적으로 익히고 외우면 그것이 내 것이 된다. 위의 동유럽 지리가 내 머릿속에 들어오자 다른 핵심지식들이 말을 걸어온다. 그래 흑해는 바다야? 호수야? 흑해와 지중해의 연결(마르마라 해, 보르포루스, 다르다넬스 해협), 비잔틴제국(동로마) 멸망과 같은 역사적 사실, 크림전쟁과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영국의 견제 등의 사건들 말이다. 



반복은 힘이 세다.

우리의 뇌는 늘 새로운 것을 연결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새로운 것과 연결을 위해서는 에너지가 사용된다. 즉 신경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절차적 반복을 통해 습관화시킨다면 뇌의 에너지 쓰임을 한결 줄일 수 있다. 태릉선수촌의 수많은 엘리트체육인들, 무수한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들의 공통점을 든다면 몰입적 반복을 통한 습관화라 할 수 있다. 곁가지를 떼내버리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 그것만을 수없이 반복한다. 자동차가 시동을 걸 때 가장 많은 연료가 소모되듯이 우리는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데 시작에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것을 최대한 줄이고 효율적으로 궤도에 올려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는 장소, 책상, 필기구의 종류나 배치 등 습관화시킨다. 변수를 최대한 줄인다. 그리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간다. 때로는 정서에 호소하고 마음에 자극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결국 많은 교과의 지식, 즉 내용이 다음 학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든다. 이 세상의 수많은 지식들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반복과 훈련을 통한 습관화가 필요하다. 시간이 많이 든다고?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빈도다. 한 달 걸려 세계지도를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시도로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지식과 기능, 기술 등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는 호봉과 같은 것이 아니다. 된장의 숙성보다는 쇠의 담금질에 비유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지금도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이것저것 책을 펼쳤다 덮었다 하는 학습자들은 당장 교과서의 수많은 표와 그래프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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