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시간?

국민은 같은 덫에 두 번 걸리는 어리석은 것들

by 신승엽

한 사람의 잘못된 신념은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민주화의 굴곡에서 군부와 신군부가 그랬다.

이 세상의 독재자들은 대개 경험주의자였다. 그들은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좋아했고, 박수와 지지를 받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배자들은 자기의 존재의의를 확증하는 수단으로써 실재의, 때로는 가공의 적을 의도적으로 지정하여 그것을 탄핵하고 그것과 싸운다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북'이라는 실재의 적(敵)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런 독재자가 등장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런 지배자를 용납하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머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24년 만에 울려 퍼진 '계엄의 포고령'이 울려 퍼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악몽과도 같은 대통령의 계엄 선포 내용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고 있습니다....(중략)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만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이하 생략)"


즉, 국회를 대한민국을 붕괴시키고 있는 '적'으로 지정하고 그것과 싸우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독재는 민주주의를 거부한다. 의회제도 따위는 무의미한 제도이며, 언론의 자유? 그것은 국가가 처해 있는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재판의 목적은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고 집단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자는 제재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독재자의 사고방식이다.


공식석상에서 '자유'를 수백 번이나 외치고 있었지만, 그 자유는 국민 개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자기 권력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써 '자유'로 전락해 버렸다.


국민들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 표결'이 여당인 '국민의 힘'의 불참으로, 무산된 상황은 위와 같은 독재자들의 행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들이 위임해 준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집단의 이익과 보호'를 위해 거부해 버린 행위는 역사로 기록되지 않더라도, 수많은 국민들에게 강력한 트라우마로 기억될 것이다.


국민은 같은 덫에 두 번 걸리는 어리석은 것들
(오르탕트 드 보아르네-나폴레옹 3세의 어머니)

'국민의 힘' 윤상현 국회의원이 한 유튜브 방송에서 했던 말은 위의 역사와 중첩된다. 공인들의 워딩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위의 말은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갑진백오적'의 얼굴은 SNS를 타고 수천만의 국민들에게 공유되고 있으며, 국민의 힘 당사는 국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을사년이 오기 전 어떻게든 결론은 날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는 자신이 이룬 승리를 자축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민주주의가 스스로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많은 것들을 붕괴시켜 버린 윤석열 정부의 만행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또 많은 희생과 논란이 있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의 검은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있지 않나?

민주주의의 시간은 말싸움하기를 좋아하는 힘든 시간이면서 못생겼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시간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주의는 우리를 열광시키면서 동시에 화나게 한다. (크리스토퍼 홉슨, <민주주의: 덫, 비극, 혹은 위기?>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학습자의 주도성'의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