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떨어진 후 학교는 무섭다. 지금처럼 출입 통제가 엄중하지 않았던 과거에 컴컴한 운동장이나 학교 복도는 더 그랬으리라.
밀도가 유독 높은 학교라는 건물은 일과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텅 빈 공간이 된다.
아이들의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삐걱이는 시소나 그네는 누가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환영과 환청도 침묵이라는 무게에 눌려 사라져 버릴 때쯤, 잠시 학교 괴담과 매칭이 되는 대상을 발견하면 오~싹한 기운이 덮쳐 온다.
그 사물이란 어딜 가도 존재한다. 운동장에 석상이나 동상은 대표적이다. 컴컴한 운동장에 우두커니 칼을 차고 서있는 이순신 장군님과 눈을 마주치기는 쉽지 않다. 단군이나 세종 같은 인자스러운 위인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책 읽는 소년이라던지 유관순 누나와 같은 어린 학생상은 밤에 보면 더 무섭다.
어릴 적 들었던 학교 동상 관련 괴담 중 기억나는 것은 세종상과 이순신상이 밤만 되면 서로 싸운다는 것이다. 유관순 누나는 밤만 되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운동장을 뛰어다닌다거나 단군의 수염 개수가 달라졌다고 일일이 세어보는 녀석도 있었다.
책 읽는 어린이들이 들고 있던 책장은 하루에 한 장씩 넘겨지며 다 읽으면 학교가 무너진다는 소문도 있었다. 심지어 그 속에 에밀레종처럼 실제 어린이를 넣어 주조했다는 흉흉한 이야기도 전해 내려 왔다.
이러니 석상이나 동상을 보면 안무서울 수가 있나? 기억과 현재 시각 이미지, 그리고 밤이라는 시간과 학교라는 텅 빈 공간의 절묘한 조합이다.
미술실에 석고상도 마찬가지다. 머리통만 있으니 운동장에 상처럼 움직이지는 않지만 고개를 돌린다거나 눈알을 굴린다는 소문이 있었다.
화장실에 적막을 깨고 울려 퍼지는 덜 잠궈진 수도의 물방울 소리는 누구의 핏방울이라더라. 컴컴한 화장실 변기의 구멍의 사이즈를 보면 손이 쑥 나올 듯한 괴담이 그럴듯 하게 느껴진다.
교실은 또 어떤가? 방학 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갇혀 있던 아이가 청소용구함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았고, 꺼져 있는 스피커에서는 '지지직~' 당장이라도 방송이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학실은 괴담이 아니라도 동물 표본과 인체 모형을 혼자서 늦은 밤에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용실의 거울은 나 말고도 또 누가 보이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다 보니 오르내리는 계단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기다란 복도를 달려가는 발걸음은 낮에 그것과 또 다르다. 정말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의 터 자체가 공동묘지라는 괴담은 공간을 분절적으로 바라보았던 사고의 구조를 통째로 뒤바꾸어 버린다. 그렇다. 학교 전체가 귀신이 나올 수 있는 공간이다!
꼭 괴담이 아니라도 여고괴담과 같이 직접 배경을 학교로 잡은 호러물도 많다. 경성학교, 분신사바, 신데렐라, 고사, 속닥속닥, 해부학교실, 귀, 소녀괴담, 코믹영화라 하는 시실리 2km에서도 학교에서 귀신이 나온다.
성리학에서도 귀신은 실체가 있는, 그러니까 '기(氣)'의 형태로 보았다. 때문에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신주나 위패를 만들고, 조상이 단순히 제삿밥을 먹으러 혼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들이 모임으로써 흩어졌던 조상의 기가 일시적으로 모인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에서 여태껏 근무했고, 지금도 늦은 시간 학교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귀신의 실체를 본적은 없다. 하지만 강하게 느낀다.
학교에 귀신이 살고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습이라는 행위는 '개념 획득'을 위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교육의 내재적 목적'이라거나 '빛의 직진의 원리', '집합', '구조', '분업', '국가', '민주주의'와 같은 개념을 습득해야 한다. 물론 고유명사를 제외한 모든 낱말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조경태, 완전한 마을, 91P)
초등학교 어린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습득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민주주의는 사실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군주제나 과두제의 반대말인데, 국가의 주권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있는 말이 아니라 국가에 속한 모든 국민에게 있는 것을 말해. 국가가 아니더라도 사회에서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어...
아이들은 군주제? 권력? 국가? 이런 개념 속 개념(관련개념)에 대해서도 경험이 없고 무지하다. 따라서 개념을 획득했다는 것은 그 '용어'를 가르친다고 통상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 개념에 대한 이치, 즉 기(氣)가 아닌 '이(理)'를 안다는 것이다. 이는 모양도 형태도 없다. 심지어 그 내용도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치를 학생들이 이해했다면 그것은 학생들의 내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개념의 성격상 그것은 사람의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 주위에 떠도는 무엇이라 설명하는 것이 더 옳은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적인 작용은 교실이라는 공간에 떠도는 공명(共鳴) 속에서 장(場)과 같은 형태로 스멀스멀 존재자의 안과 밖을 들락날락한다. 그러하니 교실에 귀신이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학교 종이 울리고 학생들은 교실 밖을 빠져나간다. 곧 적막이 깔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학교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교실에서 교사가 열정적으로 써 내려갔던 칠판에서도, 학생들이 토론을 벌였던 책상 사이사이에서도, 각종 운동 기능을 익히고 '감'을 잡았던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도 그 흔적은 소리 없이 남아 있다.
수업이라는 의도적 행위 말고도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의 마음속에 들락날락했던 '교육'이라는 그 무엇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귀신'이라는 실체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느끼는 것이 아닐까?
오싹하게 엄습해 오는 귀신의 기운은 이치를 깨달았을 때 형성되는 마음의 상(象)과도 흡사하다.
나는 오늘도 그 귀신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