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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엽 Oct 26. 2023

교육의 목적(目的)과 난점(難點)

(그래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가르친다는 것을 실행하기에 앞서 '왜 가르치는가?' (목적) 그에 따른 어려움은 무엇인가?(난점)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외재적, 내재적, 가치중립적 목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실제 교육의 목적과 난점을 쓴 저자(이홍우)는 교육의 내재적 목적을 합리성, 문명화된 삶의 양식에의 입문, 학문적 사고방식이라는 이유를 들어 선호하고 있고, 다른 목적에 비해서도 분명 더 높게 평가한다.  여기서 교육의 바깥을 이끌어가는 외재적 목적(정치, 경제, 사회 등)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고 이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일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육기관에서는 이런 외재적 목적에 의해 일련의 수업이나 학교의 행사 등이 진행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분명 외재적 목적에 의해서 교육의 동기가 일어나고 활동이 탄력을 받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치중립적 목적 이 자체도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교육이라 함은 결국 '무엇을' 즉, '교육의 내용'의 이해가 분명히 뒤따라야 하지만 그 '내용'에는 '가치'가 분명히 함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의도한 '학생 행동의 결과'만을 위한 타일러 식의 목표모형에서 강조하는 가치중립적 목적은 자칫 교육의 그 숭고한 의미가 상실되어 이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교육의 내재적 목적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교육 그 자체가 가진 학문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나? 이 점에 대해서는 <삶과 공부>, <교육과 형이상학>, <문자와 교육> 등의 챕터를 통해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충분히 납득이 가고 설득이 되는 부분이지만 굉장히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경험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는(교사라면 공감이 가고 체험했을 법하지만) 영역이라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잘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의 대답은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집, 빠른 차, 사회적 지위, 승진, 연봉...' 반면에 '건강, 가족, 여유, 사랑...' 과도 같이. 그렇다면 '잘 가르쳤다'는 의미는? '잘 배웠다'는 의미는. 역시 마찬가지다. 에 보이지 않지만 개인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 그리고 그와 같은 '일어남'에서 가치를 찾고 지속적인 믿음을 가지는 일을 교육의 내재적 목적으로 설명한다면 조금은 이해가 될까?



플라톤이나 주희의 철학, 우리의 성리학과 현재의 교육의 목적(민주시민의 육성...) 사실 많은 교육사상가들이 주장하는 부분이다. 어찌 '가치'를 측정가능한 결과로만 판단할 수 있나? 관념적인 부분에 치우친 생각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이런 경험이 없지만 어떤 경지에 다다랐을 했을 때 '꽃비가 내렸다, 종소리가 들려왔다, 서광이 비쳐왔다...'와 같은 표현을 본 적이 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확장되었음을 느꼈을 때 위와 같은 '불꽃과 폭음'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교육의 내재적 목적에 대한 부분은 너무나 관념적이어서 느낌, 감정과 같이 보이지 않는 직관적인 사고에 치중한다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가치중립적 목적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에 분명히 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극복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라는 목적이 달성되었다. 그것은 역사학에서 다루는 사건에 대한 해석적인 안목과 연결 지을 수 있지 않나? 과학과에서 빛의 직진이나 굴절에 대해 실험을 정확히 수행하였다면 빛의 속성에 대한 이해를 하고 다른 물리적 현상에 대해서도 관점을 확장시킬 수 있지 않나? 이와 같은 질문이다. 하지만 가치중립적 목적은 궁극적으로 학문적 안목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출발한다. 단순히 의도한 목적(목표)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평가를 하고 목적의 도달을 재단한다. 심지어 그 내용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교과의 각론으로 들어가 더 고찰해 보겠다. 


 교육의 목적과 난점이라는 조금 색다른 키워드를 병치하여 제목으로 선정한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난점'이라고 하는 것은 교육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 즉 '장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 그 자체가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가리킨다. 

즉, 교육의 '장애'가 교육의 외적인 여건을 가리킨다면, 교육의 '난점'은 교육의 목적 그 자체의 특성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학교현장이나 교육기관에서 '교육'의 어려움을 외적인 요인에서 찾고, 이를 비판하지만 정작 그러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교육' 그 차제 가진 난점을 분명히 인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철학적 문제와 질문 자체에 언어의 논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난점이 있다.'라고 말했던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1889-1951)이 떠오르지만 그 역시 그의 말년에는 스스로 분석철학자가 아님을 천명했다. 

 '교육의 내재적 가치'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해했다면 이제 그것을 실천하고 상대에게 설득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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