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뜻이 '가르침과 배움이 함께 성장한다'가 아닌 '교수행위와 교사의 연구행위는 함께 성장한다'라는 뜻임을.
교연후지곤지부족(敎然後知困. 知不足)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르치고 난 후 학생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안다.'가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 내 지식의 부족함을 안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해석 문구 몇 글자를 잘못 안 것이 아니라 전체 맥락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학교의 교실을 들여다보면 대다수의 교실에서 선생님들은 화면을 보면서 가르치고 있다. PPT, 영상, 그림자료 등 시청각자료를 활용하여 교과의 내용을 더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불과 30여년 전 20인치 티브이가 교실 칠판 옆에 자리했을 때 만해도 저 tv는 학교 방송이나 교육방송 송출 말고는 다른 기능이 없었다. 교실에 티브이는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칠판을 잡아먹고 중앙을 차지해 버렸다.
대부분의 시청각 자료는 웹에서 손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다. 학교의 업무나 생활지도, 주당 수업시간 등을 고려하면 직접 멀티미디어 자료를 제작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수많은 교과에 많은 수업시수, 게다가 매년 달라지는 지도학년, 거기에 더해 교육과정을 언제든 치고 들어오는 사회적 필요에 따른 계기교육과 범교과 교육을 고려하면 자료를 직접 제작하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인 일이 된다.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학교에 외부강사들의 출현이 더 잦아지고 있다. 성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디지털 AI교육, 최근엔 마약 중독 예방 교육까지... 나의 교실을 거쳐간 강사만 해도 세 자릿수는 될 것이다. 강사님들의 전문성을 비약할 의도는 없으나 대부분의 강사님들은 USB가 여러 개 달린 주머니와 프리젠터, 그리고 마이크 세트를 가지고 들어오신다.
내가 직접 제작하거나, 또는 재구성하지 않은 자료는 자기의 지식으로 전환하여 전달하기 쉽지 않다. 교실에서 보이는 사진 한 장에도 교사의 의도가 담겨있다. 교과의 핵심 지식을 축약하고, 교과다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자료의 선정은 교사가 자기 지식을 가진 후에 해야 할 일이다.
선생님들이 많이 사용하는 자료 공유 사이트(인디스쿨, 함께 학교...)나 교육 커뮤니티를 차지하는 많은 자료가 PPT나 학습지류다. 참신하고 깔끔한 PPT가 올라오면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오늘도 이걸로 한 시간 잘 견뎠어요", "다음 자료도 기다릴게요"...
PPT는 교과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툴이다. 영상, 그림, 텍스트까지도 원하는 곳에 이리저리 배치할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가?
요즘은 캔바, 미리캔버스와 같이 다양한 템플릿을 지원하고, 어설프지만 AI기반 프레젠테이션 생성까지 가능한 자료들로 그 다채로움은 나날이 더해간다.
나 역시 제작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료를 무수히 다운로드하여 사용했고, 지금도 하드웨어에 가득 저장이 되어있다. 그리고 꾸준히 활용했고, 수업도 잘 진행했다. PPT나 프레젠테이션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사의 잘못될 수 있는 정보나 지식의 전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있다는 점이다. 중등교사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고~ 시험기간 다되어서 잘못된 정보 전달했다가 큰일 납니다. 민원이 아니라 재시험을 치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사전에 제작된 PPT를 활용하는 게 맘 편 합니다." 십분 수긍이 가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쉬운 마음은 그지없다.
또 이런 수업의 형태가 보편적인 이유는 대한민국의 교실이 이런 멀티미디어 자료의 전송에 적합하게 진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교실한구석에 작은 티브이가 교실 전면에, 그것도 과거 칠판이 있던 그 자리에 80인치가 넘는 전자칠판의 기능까지 가능한 평면으로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고, 인터넷은 쌩쌩 돌아간다. 판서를 하고 싶어도 가운데에 차지하고 있는 티브이를 피해서 해야 할 판이다.
교육현장에 판서가 줄어들면서 분필계의 애플이라 할 수 있는 '하고로모'가 업체를 결국 팔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학생들의 사고와 습성도 멀티미디어에 익숙해져 있다. 느릿한 영상이 나오거나 아는 내용이면 2배속이나 스킵을 요구하기도 한다. 학교 전체에 사각지역 없이 무선 AP가 터지다 보니, 그리고 수많은 학교에서 1인 1 디바이스까지 지원되니, 직접 스마트기기를 활용하여 이것저것 탐색하고 제작하는 일에도 능수능란하다.
그런데 지적하고 싶은 사실은 그것이 나의 지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액정 위에 먼지처럼 날아가버리는 가벼운 누군가가 뿌려놓은 지식을 조합하여 전달하고, 전달받고 있다는 사실은 단호하게 말해서 교육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학생들도 이미 알고 있다. 교실에 띄워지는 저 프레젠테이션은 우리 선생님께서 직접 제작한 자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재생해 보고 연습해 보면서 PPT를 재구성하는 교사면 차라리 낫다. 대부분이 수업 얼마 전 다운로드한 자료를 시연 없이 바로 띄워 수업한다. 그리고 제작자의 이름이 구석에 나오면 재빨리 다음 슬라이드로 넘겨버린다.
스마트폰에서 무수하게 공유되는 SNS자료처럼, 교육의 내용이 전달되고 공유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교사와 학생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사와의 의사소통은 누군가가 만든 멀티미디어 자료로는 어림없다.
차라리, 초록색 그 특유의 매끄럽지만 둔탁한, 희끗희끗 세월의 때가 묻어 더럽지만 신성한... 칠판에 써 내려가던 선생님의 지식이 더 온전한 교과 지식이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
다양한 분필을 골라 써가면서 열정적으로 교과의 내용을 전달하고, 질문하고, 학생들의 답을 기다리던 에어컨도 없었던 그 더운 교실...
거기엔 웃음도 있었고, 분노도 있었으며, 열정도 있었다. 학생들은 꾹꾹 교사의 판서내용과 입에서 터져 나오는 교과의 내용을 받아 적기 바빴고, 교사는 어짜든동 교과의 내용을 잘 전달하려 애썼다.
내가 가르쳐봐야 나의 부족함을 안다. 내 지식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는 '효학반(斅學半)'과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본 뜻을 이제야 알고서는 무릎을 탁 친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제자이자 동시에 스승이며, 배우고 가르치는 사제의 연쇄를 확인하는 것이 곧 자기 발견'이라 했던 (故) 신영복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잘 훔쳐 가르칠 수도 있다. 그것도 능력이다. 하지만 자기 지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학생들도 안다. 우리 선생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