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반말임)
어느 날 밤이었다. 쉬는 날이었고, 평소보다 운동을 길게 했고, 술자리가 있었다. 운동한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술자리가 끝나니 가끔씩 오는 그런 허무함이 밀려왔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었지만 '타다'를 불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의 버스 정류장부터 집까지 가는 길은 아무리 가까워도 으슥했다. 기분도 안좋은데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의 타다는 꽤 비쌌지만 요즘 나는 그런 돈을 아끼는게 좀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허무함 때문이었는진 몰라도 타다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운전기사와 말 섞지 않아도 됨'의 룰을 내가 깼다. 요즘 타다 어떻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운전 기사는 정말 많은 말을 쏟아냈다.
중간에 울컥했던 건 이 포인트였다.
'제가 사실 **** 지점장으로 있었는데요, 그 때 진짜 안일하게 살았어요. 법인카드도 많이 쓰고. 지금은 돈 더 못써요. (타다 급여가 적게 느껴져서 인가요?) 아니요! 적지 않죠. 그게 아니라 이렇게 번 돈, 맘대로 못쓰겠어요.(기사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투잡까지) 저요? 요즘 젊은 사람들 얼마나 악착같이 사는데요.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내가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내 생각을 겨냥한 내용이었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안도감에 울컥했다.
그리고 다다음날 이 책을 만났다.
이 저자와 나는 생각하는게 꽤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제목의 책을 참 싫어했다. 사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 누가 빌려줬는데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읽다가 중간에 덮어버렸다. 내용도 저 말 그대로다. 참 별로였다.
<하마터면 편하게 살 뻔했다>의 저자는 나 처럼 직설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홀로 길을 가야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야매 경험 헌정서'라는 말에서 겸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열심히 살아도 되겠다. 열심히 산다는게 고난이나 고통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내가 그토록 의문스러워 하던 희망의 본질이 아닐까. 헐. 나 방금 되게 멋진 말 한 거 같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