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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Feb 20. 2021

코로나에 백화점이 안 망한 이유

명품

휴일에 노트북 여는 건 금기시 해왔는데 오늘은 이 얘길 남겨두면 좋을 것 같아서 켰습니다.


실적 시즌인데요. 저는 지금 주요 유통 기업들을 맡고 있는데, 백화점 3사의 실적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자회사들이 포함된 연결 실적 말고 백화점 '만' 나와있는 별도 실적을 보면 거의 망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굉장히 안 좋긴 했습니다. 지옥불은 아니었다고 이해하심 될 거 같아요.)


https://www.mk.co.kr/news/stock/view/2021/02/159016/


이유는 2가지로 좁혀집니다. 명품과 대형가전.


해외 여행 수요는 명품으로 쏠렸고,

집콕의 수요는 대형가전으로 쏠렸습니다.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00806010003487


그 중에서 백화점의 명품 판매가 급증했다는 건 여러모로 재미있는 현상이자, 사회적으로 보면 굉장히 무거운 신호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명품 매장 앞 대기줄(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에 한함)이 코로나19 이후 더 길어졌다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정작 홍보실에 확인할 때는 '꼭 그런건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기도 했는 데요. 소비자들의 반응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나 너무 어이가 없었다능... 옛날옛적부터 넓적한 스카프를 사고 싶었는데요;; 이왕이면 좀 좋은 걸로 장만해서 오래오래 하고 싶었습니다. 벼르고 벼르다가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습니다. 스카프는 에르메스가 유명하대서 갔는데 매장 앞에서 '3시간에서 5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에르메스가 좋다지만 그만큼 기다려서 살 이유와 가치가 제겐 하등 없었습니다. 샤넬 싫고 루이비통 싫고. 그래 그럼 디올 가자!!고 했습니다. 디올은 3대 명품은 아니니까 설마 했습니다요.


그런데 대기해야 한답니다. 결국 50분 기다려서 들어갔는데. 하 진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엄청 들었습니다. 들어가면 뭐해요. 스카프 보여 달랬더니 쌔!빨!깐!쌕! 아니면 디올 특유의 흑백 사진 같은 흐르르르롤로한 디자인 밖에 없더라고요..저 스카프를 제 목에 두르면 제가 흑백이 될 것 같았습니다.. 재고가 다 떨어졌답니다..하..


어떤 고객이 그러더라고요.


"아니 무슨 디올도 줄을 서"

'이렇게 해서 명품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저야 뭐 개중 저렴하다는 스카프 보러 갔지만, 몇 백씩 하는 가방 구입 고객들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도 운이 좋아야 원하는 디자인을 살텐데.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출처 픽사베이


여기서부터는 제 뇌피셜입니다.


1. 코로나19 현상이 이어진다면 이런 명품 쏠림 현상(심각한 대기)도 당연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비싼 물건을 이렇게 지치는 과정을 거쳐 사는 현상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2.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종료 이후 바로 끝날 것 같습니다. 면세점 및 해외 현지 구매 등으로 분산될 뿐 아니라 명품 구매 과정에 대한 회의론도 일부 생겨날 수 있습니다.


3.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 같습니다. 3대 명품을 구입하려는 심리는 희소성을 소유하려는 건데, 몇 시간을 기다리든, 구매대행을 활용 하든. '명품이 대중화' 되는 이 현상을 본래 명품을 '즐기던' 사람들이 참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더 고급지고, 더 갖기 어려운 제품으로 쏠릴 것 같습니다.


4. 몇 백화점은 아예 문 닫아 놓고 VIP 중 VIP만 초대해 상품을 소개하는 시간을 연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포함될 수 있는 VIP가 되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 같습니다.


명품 기사마다 댓글에 '사람들 돈 많다. 나만 없구나' 하는 반응도 많은 데요. 이게 명품 구매 패턴도 많이 달라졌다고 이해하심 될 것 같습니다. 한푼 두 푼 모아서 사는 경우도 많아졌거든요. 요즘에는 명품 소비층이 1020으로 많이 낮아졌다고 합니다.


이럴 때 개인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면 좋을 까요. 자기 취향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품이라서, 남들이 해서 나도 가져야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자기한테 어울리는 디자인을 구현하는 브랜드를 찾아내고 자기 분수에 맞게 소비하는 것.


소비자들이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가 기습적으로 가격을 일년에 1~2번씩 올려도 '오픈런' 하는 일 훨씬 줄어들 거고요. 준명품 급의 브랜드들도 더 발전된 디자인과 품질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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