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루이비통의 아르노 회장을 공항까지 직접 마중나간 일화는 유명하다. 면세점의 성패는 얼마나 강력한 브랜드를 보유하느냐에 달렸고, 해외 유명 브랜드는 면세점이든 백화점이든 입점을 고려할 때 해당 시장에서의 파괴력을 본다. 그렇게 따지면 다수의 거대 백화점을 지니고 있는 롯데는 브랜드들에게 훌륭한 파트너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은 세계 선두다. 신라는(혹은 삼성은) 백화점 같은 거 없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부진의 집념'은 신라면세점에 루이비통을 입점시켰다.
2019년 유통부에 다시 돌아오자 명품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져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더 안좋아져 있었지만, 명품을 향한 소비자들의 열망은 더 커져 있었다. 백화점의 양극화는 그야말로 심각했다. 중저가 브랜드는 줄줄이 생명력을 잃어갔지만 명품 매장 대기 시간은 5시간에 달했고, 코로나는 '선을 넘었다'는 생각을 들게 할만큼 미친 웨이팅을 유발했다.
이 때 찍은 사진 못찾음. 그래서 얼마 전 찾은 더현대서울로 대체..ㅎ
이상의 내용들을 2년 내내 기사로 써왔다. 아침 출근길 명동 롯데백화점을 지날 때 건물을 둘러싼 대기줄을 봤다. 샤넬 대기줄이었다. 난 이런 현상들을 언제나 백화점의 매출과 앞으로의 전략 등과 연결지어 기사화 했다. 그리고 그 사이 내가 변해있었다.
고백하자면 산업부에서 유통부로 돌아온 직후 좀 힘들었다. 과거와 달리 예쁜 게 너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백화점 기자실은 백화점들이 가장 신경쓰는 본점과 거의 붙어있다. 필연적으로 매일 같이 백화점을 둘러보게 된다. 저기도 예쁜 거, 여기도 예쁜 거. 예쁜 거, 예쁜 거, 예쁜 거 천국이었다. 특히 백화점 1층 매장들에 진열된 가방이 고역이었다. 타이트한 가계 운영이 절실한 때였다. 참다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카드를 긁는 일도 생기긴 했지만, 가방은 참았다.
왜냐면 나에게 가방은 가벼운게 최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 자리란 게 없고 늘 이런 저런 기자실로 이동해야 하니 모든 짐들을 다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한다. 거기에 노트북까지. 왠만한 핸드백 1개와 에코백에 노트북을 넣어 다녔다. 그동안의 내 가방의 역할은 그 뿐이었다.
어느날 라디오 제안이 들어왔다. 전화연결로 하는 거고, 코로나로 활동량도 줄어든 참이었다. 그래, 출연료를 모으자. 지난번에 본 그 반짝거리는 가방을 그걸로 사자. 약 8개월간 퇴근 후 밤에는 라디오 원고를 쓰고, 출근 직전에는 방송에 출연했다. 후에 내 라디오 출연료를 들은 한 선배는 나였다면 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맞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나에겐 의미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반짝거리는 가방을 사려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기자생활을 10년 했다. 앞으로도 수년은, 혹은 그 이상을 청바지를 입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노트북을 이고지고 다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10년을 함께할 제품을 고르자. 원래 내 방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디자인의 제품을 샀다. 그 가방은 브랜드나 외관보다 가방으로서의 정체성에 더 집중한 느낌이었다.
반짝거리는 그 제품에 대한 아쉬움은 하나도 없었다. 저 가방을 들고 다닐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을 뿐.
저녁은 지난주 냉동실에 넣어 둔 치킨이었다. 에어프라이어에 바삭하게 데웠다. 점원들이 예쁘게 리본까지 묶어준 쇼핑백을 들고 팔랑팔랑 들어온 직전의 상황과 매우 대조되는 메뉴였다. 공부하고, 인내하고, 가끔은 실수하고, 때로는 목표를 이루면서 지금의 내가 됐다. 나 다운 삶의 모습을 갖춰 가는 듯한 확신은, 지금 이 모습을 누가 보더라도 아무렇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