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과 아는 척을 하고 싶은 마음 사이
거창한 주제가 아니어도 내가 잘 아는 걸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아마도 이제 먹고 살만하다 하는 느낌이 들 때겠지. 나 말고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시점. 그럴 때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게 "조언" 혹은 "멘토링"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길에 들어서면 아주 쉽게 빠질 수 있는 두 사잇길이 있다, 바로 "꼰대질"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나한테는 너무 잘 통한 그 방법이 누군가에게는 안 통할 수도 있고, 데이터 분석에서 흔히 쓰는 A/B테스팅처럼 다른 가정들이 철저히 통제되었는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 없이 해버린 가설검정은 유의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인 경우도 있고.
자기만의 서사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서사에만 취한 조언은 위험하다. 아주 어렸을 때 작은 키로 방바닥에 앉아 있을 때 가장 먼저 보이고 손에 잡히던 선반에는 위인전집이 있었다. 그때 좋아했던 위인들은 슈바이처, 퀴리부인, 그리고 강감찬. (강감찬 장군은 그냥 그 어린 나이에 낙성대를 알았다는 이유 하나로 여기 들어와있다.) 그러다 보니 위인들의 서사가 좋았고 편했다. 역경을 이겨내고 성취를 이룬 사람들, 다른 말로는 성취로 가기 위해 편집된 인생 이야기. 그러다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고 단조롭지 않은 인물들에 더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 집에 책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그 위인전집을 아빠와 함께 청계천에 팔았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나도 조언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잘 아는 것, 내가 많은 고민을 했던 것. 예를 들어보자. 이직이 잦았고 면접을 잘 보는 편이다. 사람을 대하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에 제법 재능이 있다. 알고 경험한 것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줄 아는 축에 속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기회에 많이 노출되었으면 좋겠어서, 면접 잘 보는 "비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봤다. 금방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이르른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한테 통했던 몇 가지 방법들이 있지만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정말 통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면접은 소개팅 같은 거다. 소개팅은 관계를 위한 과정이지, 이겨야 하는 "게임"이 아니다. 내가 나일 때 나를 뽑아주는 사람들과 일해야지, 불필요하게 분칠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이런 조언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절박한 사람들이다. 절박할 때 우리는 덜 비판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혹시나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지 않다. 위의 이유들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네가 하는 말 따위엔 그 정도로 신경 안써" 같은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남의 조언을 받아들일 때도 있지만, 주로 피드백을 듣고 내 방법을 찾는 편이다. 나부터 그러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크게 다를까.
조언을 아끼게 되는 진짜 이유는, 이건 내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능력을 길러가길 바란다. 일련의 상황에 압도되지 말고 하나하나를 내 필살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근력을 키우는 일을 생각해보자: "하나만 더!"하고 소리치는 트레이너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 반면, 자기 자신을 다그치지 않고 즐겁게 운동에 정을 붙이는 것이 나은 사람도 있다. 손으로 써가며 필기하는 게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노트북으로 정리해가는 게 편한 사람도 있다. 저마다의 문제에 저마다의 해결법이 있다. 그렇게 자기 방식을 시도해보고 실패해도 보면서 나한테 맞는 걸 찾아가는 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일들이 그래도 많을 때, 잃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을 때, 신경써야 할 일이 적을 때, 자기 자신으로 수많은 A/B테스팅을 해보면서 나의 황금 키를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끔 하루하루가 너무 비장한 사람들을 본다: "성공을 위한 한걸음을 걸어가야 해" 그 비장함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겠지. 나는 그렇지 못한지라, 편집된 위인전 속 이야기보다는 매번 번뇌하고 실패하며 찌질하고 별볼일 없는 소설 속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살고자 한다. 나부터 내 이야기를 그럴싸하지 않다고 편집하기 시작하면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 작은 플롯을 만들고 작은 실험을 해본다. 그리고 결과를 배우고 기록해본다. 계속 반복하다보면 나도 내 방법에 이름을 붙여줄 날이 오겠지. 조언이라는 지름길에 의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가 정보고 어디까지가 의견일지 구별해내기 힘든 시기더라고, 요즘이. 그걸 할 수 있기 전까지는 좋은 출처의 정보와 함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듣는 이 없이) 제법 긴 글로 해봤다.
적고 보니 이 또한 하나의 조언 a.k.a. 꼰대질. 이렇게 남의 일에 아는 척을 얹고 싶어하는 것 보니 나 요즘 좀 살만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