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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Jul 08. 2020

잔가지들 정리하기

분주함이 버거울 때

바쁜 것에도 종류가 있는 듯하다. 정신없게 이어지는 스케쥴로 바쁠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들어오는 정보나 내 안의 생각이 많아 바쁘게 느껴지는 하루가 있기도 하다. 바쁠 이유가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면서도 분주한 마음이 버거워 하나하나 decluttering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정리할 수 있는 내 삶의 영역에서.  




1. 정보들이 들어오는 소스 정리하기

불필요한 광고들, 기억도 안나는 메일링 서비스, 이미 나와는 다른 길을 멀리 가고 있는 언론사의 기사들.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의 여러 장점들이 있지만 실시간의 독이 나한테는 매우 유해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쉽게 다양한 이슈에 engage할 수 있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여러모로 힘들었던 것 같다. 정보의 소스를 정리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건, "good to know"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였다. 알아둬서 나쁠 것 없는 정보들에 얼마나 주의를 빼앗길 여력이 있는가의 문제.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고 집중해서 할 일들이 있어 당분간은 필요한 정보들을 위주로 아주 필수적인 이슈만 팔로업하면서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읽어가고자 한다. 


2. 도대체 안 쓰는데 나와있는 물건들이 왜 이렇게 많은거냐...

이사를 곧 준비해야 하는지라 짐에 무척이나 예민하다. 허나 이 짐들은 다 내 손을 통해 이 집으로 들어온 것들. 아무리 이삿짐 센터가 와서 도와준다고 해도 실제로 이 짐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까지를 견디는 건 제법 고통스러운 일이다. 양과 질의 문제에서, 거의 95% 이상 질을 선택해야 하는 그런 때가 나에게도 온 것 같다. (5%의 예시는 모르겠는데, 그냥 개인적으로 절대적으로 무언가에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남긴 여지.) 지금 사는 곳은 리사이클링은 물론 업사이클링 등 중고제품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곳이라서 나도 혹시 다른 사람에게서 더 요긴하게 사용될 물건이라면 기꺼이 값없이 내어놓을 예정. 아직 이사까지 1.3개월이 남았지만 미리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짐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쓸모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려볼 계획이다. 그리고 너저분하게 물건을 보이는 곳에 늘어놓지 않는 습관도 들여보고자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으나. 


3. 관계의 잔가지 

돈도 중요하지만 시간에 더 인색한 사람이라, 쉬느라 보낸 시간은 안 아까워도 즐겁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나 흥미롭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더 아까워한다. 얼마 전에는 별로 친하지 않은 예전 지인이 연락이 와서 메신저로 취조하듯 이것저것을 묻는데, 처음에는 우리가 친했었나 하고 갸우뚱했으나 계속 대답하는 과정에서 뭔가 쎄하면서 "이 사람 기자야, 뭐야" 싶은 생각이 들어 대답을 멈추고 연락을 끊었다. 관계도 유지보수에 많은 에너지가 든다. 아니다 싶을 때 선을 그을 줄 아는 것과 항상 예민하게 날 혹은 촉을 세우고 있는 것의 사이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다. 


4. 일에도 잔가지가 참 많다 

나도 이제 일을 해온 시간이 제법 길어지는 덕에 될 일 a.k.a. CV에 남을 일과 그렇지 않은, 흔히 말하는 망스멜을 플래닝 미팅에서부터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100%는 아니고 대략 나쁘지 않은 적중률. 되는 일은, 일을 되게 만드는 사람과 그걸 가능하게 하는 자원, 그리고 아주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이밍"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한다. 망스멜 나는 일에 괜히 발들이지 않는 단호함 혹은 안될 일을 되게 만들 만큼의 능력, 둘 중 하나는 있어야 점차 줄어드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후자는 부담스럽고 전자는 한번 해볼만 한 것 같다. 


5. 하기 싫었지만, 할 일 목록 만들기 / 일기 구체적으로 쓰기

의무를 가지고 뭘 하는 걸 정말 안 좋아한다. 얼마나 싫어하냐면,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친구한테 뭐가 제일 싫은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팀장이 자꾸 명령을 하는거야!"하고 이야기했을 정도. 친구가 어리둥절하면서, 그게 팀장이 하는 일 아닌가 했던 기억이. 그래서 같은 맥락으로 투두리스트를 굉장히 안 좋아한다. 뭔가 그 리스트에 쓰는 순간 질린달까. 가끔 바쁜 하루에 리스트가 필요할 때는 "오늘 하고 싶은 일들 목록"이라고 쓰기도 했다. 이게 MBTI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ENTP의 성향이라고 하는데, 나만큼 이런 걸 싫어하는 ENTP를 만난 적이 없어서 가끔 혼자 가는 이 길이 쓸쓸하다 (ㅋㅋㅋㅋㅋ). 요즘 머리가 시끌시끌하니 하는 것 없이 바쁜 느낌이라, 이럴 때일수록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보자 하면서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확실히 해야 할 일 목록이다. 리스트에 있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고 작다. '은행에 전화하기', 'xx문서 프린트하기'. 지금은 무엇보다 작은 성취들이 필요하다. 그리고선 일기에 잘 알지도 못하겠는 감정들을 두루뭉술하게 하게 적어내려가지 말고, 무엇을 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적어내려가기. 행동으로 기억하는 과거가 뭔지 모르겠는 감정들보다 좀더 선명한 걸 보면, 이건 한번 해볼만 한 것 같다. 그리고 이름붙여주고 싶은 감정의 이야기는 따로 다른 저널에 써보기로. 어찌됐든 손을 바쁘게 놀려서 머리를 쉬게 하자 같은 맥락? 그리고 한때 글씨 쓰는 걸 참 좋아했었다. 지금은 외국어를 쓰다 보니 한국어도 제법 날림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됐다.


 



가끔 욕실장에 고고하게 서있는 바디제품들을 보면서, 도대체 몸은 하난데 얼마나 열심히 씻으려고 저것들을 샀나 하고 심란해 할 때가 있다. 지금은 그 제품들을 손비누로 사용하면서 과거의 업보를 나름대로 청산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누군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알게 됐더라 싶은 수많은 카톡에 있는 연락처들도 슬슬 지울 때가 되었나보다. 소화불가능한 정보들은 내려놓고, 순간 에너지를 잡아먹어버리는 소셜미디어는 잠시 덮어두고, 생각만 해온 "되고 싶은 나"에 좀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물론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남는다면 굳이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는 내가 안다.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걸 다 누리고 살려면 빌게이츠가 호날두 몸(@호날두, 이왕 올 거면 집과 돈도 같이 가져오면 좋을 것 같네...)에 있어도 불가능해. 



지난주만 해도 민소매를 입고 있다가 이번주 내내 풀오버를 입고 있어 몸도 마음도 혼란스러운, 

북쪽의 호더 (with 사진 속 보트를 즐기는 바이킹, dumma hund)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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