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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Jun 04. 2020

별로 내키지 않는 것들을 해야 할 때

그리고 그럴 때가 자주 있는 나에게

특급 신입사원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후배미가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바쁜 대리님이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점심에도 일을 해야 하는데 나는 너무 신입이라 도울 수 없었던 순간, 사원 선배가 "뭐라도 사다드릴까요?" 하고 묻자 퉁명스럽게 "됐어" 하던 대리님한테, "김밥이 좋으세요, 샌드위치가 좋으세요?"하고 물을 줄 아는 막내. 이렇게 물을 때 "됐어"라고 말할 만큼 화가 나 있던 사람들은 다행히 없었다. 피식 웃으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던 대리님. 


실은 이 방법은 내가 나한테 즐겨쓰는 방법이다. 가장 먼저는 질문이 너무 거창하고 추상적일 때. 그리고 다른 경우는, 무척이나 하기 싫거나 내키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 다른 옵션을 하나 옆에 둬 보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 다른 옵션은 너무 좋은 옵션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A보다만 나으면 된다. 사실 바쁜 순간에 하나 때문에 바쁜 경우는 잘 없다. 할일이 여러 개일테다. 근데 그 중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게 떡 효율성의 길을 막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럴 때는 그 힘든 일 옆에 덜 하기 싫은 일을 붙여본다. 그럼 덜 하기 싫은 일이 할만하게 느껴진다. 그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그거라도 끝내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별로 즐겁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그 반작용으로 다시 힘든 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긴다. 쓰고 보니 좀 안쓰럽네.


너무 신나서 몰입할 일들이 있긴 하지만, 내 리스트에는 자질구레하고 내키지 않는 일든도 많다. 집안일이 그렇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장기 프로젝트가 그렇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동료와 함께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할 수는 없고, 손을 놓고 쇼파에 누워있을 수만은 없기에 이렇게 자꾸 나를 헷갈리게 만들어 뭐라도 하게 만들고 있다. 계속 덮어써봐도 안쓰럽네.


잘하는 거보다 끝내는 게 중요한 일들이 훨씬 많다.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은 내 일은 아니다. 실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기가 싫어서 블로그를 써보는 거다. 이거 다 쓰고 나면 다른 걸 할 마음이 혹여나 생길까 싶어서. 아무리 봐도 안쓰럽네.


오늘 날씨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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