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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Sep 05. 2020

여섯 번째 첫 출근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거의 5개월 전에 오퍼를 받고 붕 떠 있는 마음으로 생활하다가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첫 출근날 설레는 기분을 좋아한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다들 곁눈질로 쟤는 누군가 궁금해 하는 분위기가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만큼 적당히 외향적이고 뭐든 새롭게 쌓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좋아한다. 


보안이나 체계가 명확한 큰 회사라 피씨를 켜서 로그인하는 데만 반나절, 필요한 프로그램들 설치하는 데 또 반나절, 회사 폰 연결하는 데 또 반나절을 보냈다. 이미 업무 경력이 있는데도 새로운 회사에서 시작하게 되면 산업이나 해당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 등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쏟아져나오는 약어들을 디싸이퍼하느라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여섯 번째 첫 출근까지 모두 다 다른 인더스트리에서 일했어서 맥락을 파악하고 새로운 정보들을 내 방식으로 재분류하는 데 제법 자신이 있다.


타인의 저의에 큰 관심을 안 두려고 하는 편이라, 함부로 호불호를 정하지 않으려 한다. 싫어하는 것도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타입들은 있다. 지나치게 경쟁적인데 기본적인 직업윤리가 결여된 사람들, 모르는 데 너무 몰라서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말까지 많은 사람들, 일을 해야 할텐데 사내 정치에 관심이 과하게 많은 사람들. 전형적으로 욕심은 많으나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 일주일 일해보고 다 알기는 그렇지만 적어도 주변에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점심 먹으러 비어가튼에 가서 "음, 나는 오후에 중요한 미팅이 있으니깐 (난 술은 안 마실래 하지 않고) 작은 흑맥주를 마실래"라고 말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좋다. 맥주로 하나되는 우리 :) 


매번 회사를 떠날 때 하나 정도의 큰 숙제를 나한테 주곤 한다. 지난 직장에서의 숙제는 작은 의견이라도 크게 말하고 존재감 있게 회사생활하기. 명확하지 않은 업무 분장을 가지고 일하면서 계속 내가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핏치하고 다닐 기회가 생겨, 저 숙제는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직장에서의 숙제는 전문적인 지식을 쉽고 간결하게 전달하기.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쉽게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싶고, 액션 플랜으로 테드나 관련 분야 컨퍼런스 발표 등을 보면서 스토리 텔링을 공부하기로 정했다. 


확실히 스웨덴에서 독일로 오다 보니, 영어 숙련도가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팀이 나 빼고 다 독일인. 전 직장 부서가 30명에 17개 국적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크게 다른 분위기다. 석사 때도 그렇고 논문 쓰던 회사생활도 그렇고 나만 외국인이었던 적이 없었었는데, 이번 경험은 좀 신선할 것 같다. 이런 pressure도 내 발전에는 도움이 되겠지 싶어 쿨하게 받기로 (실은 다른 옵션이 없다...). 나는 과연 fast learner인가를 학교를 떠나 시험해보는 좋은 기회일 듯 싶다. 


돈보단 시간을, 시간보단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돈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아주 쪼들리며 살지도 않았고, 새로운 경험에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만들어 온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인데, 흠 이게 참 가치 측정이 어렵다. 이제 좀 써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투자를 한껏 했는데 이제 슬슬 ROI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이드 프로젝트와 재테크에 대해 여러모로 공부하고 알아보고 있다. 직장생활을 한지 꽤 오래 됐는데, 이렇다 할 목돈이 별로 없어 이제서야 좀 허전하달까. 여전히 경험에 돈을 아끼지는 않을테지만, 단/중/장기 재무 관점도 팩터에 넣어 의사결정을 해보기 시작해야겠다. 


일주일에 35시간, 잘 만들어보면 주4일 근무도 가능하다. 혹시나 40시간 근무로 바뀔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그 만큼 돈을 더 받을 테니, 그리고 모든 오버타임은 보상이 되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튼 그래도 충분히 넉넉한 업무 외 시간들을 채울 활동들을 알아보고 있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제약이 많지만 그래도 life must go on이니. 가을 겨울엔 승마, 봄 여름엔 테니스와 세일링 아니면 로잉 정도를 생각해보고 있다. 사계절 내내 체력단련을 위한 활동도 꾸준히 가져가야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도 사귀면서 이곳에 정을 살짝 심어보려 한다. 너무 크지 않으면서도 푸르른 이 도시가 제법 마음에 들고, 해가 잘 들고 나무들이 보이는 지금 집도 좋다. 


첫 출근을 잘 해내고 맞이한 첫 번째 주말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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