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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Nov 21. 2020

Requirements Engineering

추측과 오해가 난무하는, 타인의 필요에 대한 이해

집주인과 세입자로 만나 지금은 절친이 된, 나이 많은 스웨덴 친구이자 아저씨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스웨덴은 전후 기간산업을 다시 세워야 했던 유럽의 많은 나라에 철강제품을 수출하며 부를 축적했는데, 이 아저씨는 그때 한 철강회사의 해외 사업개발을 맡았던 분. 영국에 지사를 열게 되어 파견을 나갔었고, 그때 한 꿈많은 젊은이를 같이 데려갔다고 한다. 그 젊은이는 이 기회를 사업 아이템을 발전시켜보는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비장의 아이템을 잔뜩 싣고 영국으로 향한다. 그 아이템은 바로 강우량 측정도구(rain gauge). 쉴새없이 비가 내리는 영국이니, 이 아이템은 매우 핫하겠구나 싶었고, 먼저 그곳에서 살기 시작한 아저씨가 그 도구를 못 찾겠다고 하니, 더할 나위 없는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역시 요즘은 디지털. 이 제품명이 조금 웃긴데, Andersson Rain Gauge - 스웨덴의 "김씨" 같은 Andersson (출처: NetOnNet)


잠시 맥락을 조금 넣어보자면, "비가 얼마나 왔어?"라고 물을 때, 우리 한국인들은 "많이" 혹은 "조금 내리다 말았어" 같은 부사로 표현하는 반면, 스웨덴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 혹은 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것 같다) "10mm 내렸어"라고 말한다. 곁다리지만, 독일 사람들은 (물론 옛날 사람들) 평방미터당 mm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나는 두손들고 이 대화에서 빠져나왔다. 

아무튼 비가 아무때나 내리니 비가 오거나 말거나 하는 사람들이고, 비가 내리는 양이야 아주 폭우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 강우량을 측정할 필요가 굳이 없었기 때문에, 그 꿈 많은 젊은이의 첫번째 아이템은 그렇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필요에 대한 이해가 재미있는 부분은, 봉이 김선달은 지천에 널린 물을 돈 받고 팔았고 왜 이 청년의 강우량 측정기는 실패하고 말았나의 지점인데, 이건 나중에 더 이야기해볼 예정.

이런 영화가 있었네. 나는 왜 봉이 김선달 하면 아저씨 배우들 얼굴만 떠올렸을까. 사업 성공비결이 다른 데 있었나보다.


내가 생각하는 타인의 필요는 굉장히 주관적이고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제품의 개발과 유통, 전 과정에 있어 사용자/소비자의 니즈 분석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빅데이터도 사실 거기서 시작되었다. 사용자/소비자에게 "너 뭐 사고 싶어?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라고 직접 물어보면 되는 것을, 여러 이유로 인해 물어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쌓여있는 내외부의 데이터를 최대한 끌어모아 저 질문에 상응하는 답변을 만들어내는 과정. 이것도 다른 곁다리지만, 가끔 내부고객들을 위한 데이터 분석을 요청받곤 한다. 그냥 같은 회사 직원들인데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은데 현란한 버즈워드에 정신이 팔린 매니저들이 나 같은 리소스를 활용해 그저 뭐라도 빤짝이게 만들어보고 싶은 저의를 확인하고 마는 경우도 많다. 이 또한 타인의 진짜 필요를 이해하는 과정 중 하나. 


불완전한 외국어로 생활한 지 어언 5년이 넘어가면서 예전엔 제법 잘 했던 것 같은 한국식 고맥락 대화가 슬슬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불평만 늘어놓는 친구에게 그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만은 않다고 말했다가 넌 참 쓸데없이 긍정적이라며 비아냥거림을 들을 적도 있고, 같이 불평에 맞장구쳤다가 네가 뭘 아냐는 식의 선 긋기를 당한 적도 있다. 그리고 나선 아 그렇구나 하고 듣다 보면 또 경청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여러모로 피곤한 대화를 결국 피하게 되었다. 언어가 부족해 멋있게 돌려말하거나 단어를 세심히 고르거나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해 오히려 솔직해져버린 표현들은 그 나름대로의 강점이 되었다.  


친구들 중에 꼭 그런 사람들 하나씩은 있지 않나, 사람 참 잘 보는 친구들. 어디 가도 사기 절대 안 당할 친구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친구들은 타인에 대한 불신을 근저에 깔고 있다. 내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에게 우둔하게 당할 때,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던 친구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친구들은 항상 그렇게 누군가의 저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의심이 디폴트인 상태. 의심도 에너지인지라, 그리고 어차피 다른 사람을 온전히 알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제멋대로 나한테 어떤 레이블을 붙여버리는 게 불쾌하니까. 나는 이런 이유로 불신을 넣어둔다. 그렇다고 함부로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둘의 사이에서 내 균형점을 찾는다. 


누군가의 필요가 궁금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대상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직접적인 질문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직접적 질문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지 않는 선에서 간접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그 대상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다면 그 대상과 비슷한 대상에게 찾아가 물어본다. 그나마도 어렵다면 구글링과 빅데이터 분석이 나타나야겠지. 


예를 들어보자. 아빠 생신선물을 사야 한다. 제일 좋은 건 아빠한테 가서 물어보는 것이다. 아빠를 놀래켜드리고 싶다면, 간접적인 질문을 해야겠지. "백화점 갈 일 있어? 뭐 사게?", "넥타이 무슨 색들 가지고 있어?" 하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힘들다면, 회사에 아빠 나이 정도 되는 부장님한테 물어보는 방법. 그 부장님이 너무 아빠랑 다른 분이라면, 우리는 구글과 네이버 추천 아이템들 중에서 고를 수밖에. 너무 자연스럽고 우리가 실제 쓰는 방법이지 않나.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어떤 업무를 요청했을 때 분명 못 알아들은 것이 분명한데 더 질문을 하지 않고 다 알아들었다고 하고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Business needs를 두루뭉술하게 기술해놓고선 엔지니어나 개발자들이 완벽하게 알아듣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Requirements engineering은 그래서 그 어느영역보다 추측과 오해가 난무하는 곳이다. 쑥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기대하는 곳이고, 그걸 잘해내는 Business Analyst의 유무가 성공에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모두가 지겨울 정도로 봐온, 그 Requirements Engineering의 실제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결국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겠다는 거다. 전제는 "예전에 이래 왔으니,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게 맞다. 큰 테크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데이터로 가능해진 건, 가끔 일탈을 하고 싶은 나와 새로운 게 필요한 나 또한 과거의 데이터로부터 예측이 가능해진다는 것.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에서 시작하는 것. 그럼에도 인간과 인류에 희망이 있는 나는 사람들은 개별적이고 그들의 필요는 다양하며 데이터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너무너무 좋아하면서도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그 영역을 사랑한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직접적인 질문을 하자. 직접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기회를 놓치고 혼자 타인의 필요와 의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함부로 타인의 답을 정해놓고 다른 답이 나왔을 때 놀라거나 실망하지 말자. 내가 변하듯 남도 변하고, 거기에 좋든 나쁘든 "불확실성"이 있고, 그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재미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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