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중에 제일 큰 리스크, 사람
지금 내게 밥과 집과 여가를 가져다주는 일이 바로 데이터를 활용하여 리스크관리 및 예측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밥벌이라고 해서 뭔가 이 분야에 대해서 통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매우 큰 오해다. 다만 영역별로 어떠한 리스크를 감지하고 이를 진단한 뒤 일어나기 전에 알려줄 방법을 찾는 걸 일주일에 35시간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 고민이 지난하고 답 없게 느껴질 즈음에 적절한 타협을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전략 업무를 할 때도 내 인생에는 전략도 계획도 없었었고, 예산 업무를 할 때도 내 돈으로는 가계부도 안 썼었고, 데이터 업무를 맡으면서도 아카이브를 똥으로 하여 하드를 날려먹은 경험이 있고... 일하는 나와 생활하는 나를 철저히 분리하는 게 워라밸일 수 있다면, 나도 워라밸 클럽에 당당하게 가입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웍앤라이프배리어로 워라배를 한번 만들어볼까...)
리스크 관리와 위험감지센서라고 제목을 달고 이렇게 마치 경영학 수업의 인트로 같은 말을 하는 건, 결국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리스크에 대해 말할 때 제일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 게 이 두 축인데, 그게 바로 일어날 가능성과 일어났을 때의 파급력이다. 리스크의 임팩트라고 하면 최근에 모두의 작은 생활의 부분까지 영향을 미친 코비드19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실제로는 자잘하게 크게 작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는 리스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모든 리스크를 관리할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크게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을 관리하는 건 일반 기업이나 개인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관리가 가능한 리스크들이 있다. 그런 리스크들을 대하는 방법으로는 1) 리스크 자체를 도려내거나, 2) 리스크를 상쇄할 다른 긍정적 돌파구를 찾거나, 3) 리스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거나. 코비드19의 예가 너무 좋아서 한번 들어보려고 한다. 개인이 코비드19이라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를 리스크로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면, 1) 사람이라고는 없는 산골짜기에 집을 사서 살아갈 계획을 세운다거나, 2) 백신을 만드는 회사 주식에 투자하여 코비드19의 고통이 오프셋되는 과정을 목도하며 이익이라도 챙기든가, 3) 마스크를 쟁여두고 향후 2-3년간 해외여행 계획을 대폭 수정하거나 홈오피스에 대응하여 오피스룸을 리노베이션한다든지 같은 것들.
그런데, 이게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사람이 리스크라면. 사람이 가진 장점과 단점이,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고유의 어떠한 특성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수치화되어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이 사람의 따뜻한 관심이 좋지만, 그 따뜻함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건 별로야" 같은 상황. 거기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사이에서 그때그때 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또다른 리스크. 상태가 좋은 날은 저 정도 단점은 참아낼 수 있을 것 같다가, 상태가 별로인 날은 그 점이 너무 거슬리기도 하고.
이렇게 추상적인 이야기를 구구절절하는 건 오랜만에 사람으로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retrospect로 되짚어보면서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이걸 손절했어야 하나를 생각하는 중이다. 최근에 같이 업무를 한 남자 분이 부족한 점이 보여 이런저런 도움을 드렸는데, 어느 순간 그 도움을 너무 당연히 여기고 나를 본인 업무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려 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같이 업무하는 다른 사람 험담을 하는 등 여러모로 너무 수준 이하인 모습을 보여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선을 그었더니 그때부터 다른 얼굴을 드러내며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하는데... 휴... 그리고 개선해야 할 지점을 공유했더니, 그 개선점의 주체를 다 다른 사람으로 지정하면서 걔넨 그걸 개선해야 하는데 하고 있더라고. 한국의 규모가 큰 기업들에 가보면 굉장히 쉽게 볼 수 있는,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서식하고 있는 분들이었는데 내가 감이 떨어져서 이걸 빨리 못 알아차렸다. 내 보스가 아니고서는 최선을 다해 깔아내리고, 내 보스에게는 최선을 다해 뭐라도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런 남자 선배가 하나 있어 정말 고생했었는데, 내가 어떻게 이걸 까먹었지.
일어나지 않은 순간 리스크라 판단할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고, 일어났을 때 곧장 대처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그런 경험이었고, 사람이라는 리스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나갈지에 대해서 좀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 기간동안 생각하고 있는 주제인 "버블에 갇힌 삶 vs. 인간은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는 도대체 끝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리스크 센서를 좀더 좋은 걸로 갈아끼우든지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마음 그릇을 넓히든지 좀더 애자일하게 손절할 수 있는 스타일로 날 개조시키든지 방법이 필요할 듯 하다. 요즘 추세가 인간관계도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는데, 그걸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직까진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옳지 않은 것에 공분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충분히 공감한다. 내 에너지와 관심의 총량은 한계가 있으니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는 정해져야 할텐데, 그렇다면 노이즈와 진짜 어려움을 가르는 경계는 무얼까. 악플과 건강한 비판을 모니터하는 경계는 어디일까. 이 고민도 버블 고민만큼이나 계속 마음 속을 떠다니는 중.
이번 경험에서 배운 레슨은 정확하겐 하나다. 마지막에 "저 사람 정말 못됐네!"라고 말하게 된다면, 이제부턴 그 전에 못 알아차린 내 잘못이다. 심란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해가 쨍하게 뜬 아침에 아무 소음 없이 이러고 정리해보는 시간이 소중하고, 나중에 읽어보면 뭐래는 거야 싶을 이 이상한 생각의 흐름도 나름 의미있으리라 믿는다.
이 과정에서 생각나던 두 영화가 있었다. <Carrie Pilby>와 <About a boy>였다. 내 마음에서 따뜻하게 지켜주고 싶은 것들인데, 다들 먹고 살기가 힘든지 자꾸 인류애 깨지는 경험을 던져주어 저 마음 지켜내기가 참 쉽지 않다. 좋은 어른,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데, 그냥 그런 어른이 되는 것도 힘들어 죽겠다. 이런 거 보면 진짜 리스크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