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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Feb 21. 2021

2021년 6-7번째 주

끝이 좋으면 다 좋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던 2주였다. 눈이 많이 와 겨울왕국 같던 세상이 아름다웠던 날 다음엔 추워 죽겠는 집에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로운 집을 알아보며 난 도대체 무얼 원하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소셜해지고 싶은 마음이 둥둥 떠다니다가, 추적추적 비가 내리며 전형적인 회색 날씨가 계속 되자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하며 한없이 가라앉다가, 해가 뜨자마자 지금 사는 집과 이 동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져버렸던 이상한 2주. 그래서 나는 지금 해가 거의 봄날처럼 좋은 날에 이 글을 쓰고 있음을 서두에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사물인터넷 데이터 관측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건데, 제대로 모니터할 주기를 못 찾고 그저 정기적으로만 데이터를 모으다 보면 이렇게 이런 오르락내리락은 없던 것처럼 세상이 아름다운 나만 격주로 기록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튼 운동장 공터 같은 중앙부를 가진 이 집에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바 테이블에 서서 이 글을 적고 있다. 굳이 듣고 있는 음악까지 곁들이자면 Sunday Morning - Paris Cafe 플레이 리스트를 스포티파이로부터 틀어두었다. 이 정도면 혹시나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낙관적일 앞으로의 격주정리에 충분한 변명거리를 제공했다고 보고, 한번 시작해볼까. 



써모믹스와 아웃소싱


광고도 아니고 제품리뷰도 아니다. 그냥 내 삶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친 기계라 언급을 안할 수 없어서. 써모믹스 Thermomix는 독일 회사 Vorwerk에서 만든 Cook Processor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TM6는 와이파이/블루투스 기능까지 있어 폰에서 레시피를 선택하면 자동으로 연동되는 형태다. 사실 이 써모믹스는 나도 안 지 한 3년 밖에 되지 않았다. 독일에서 공부를 할 때는 워낙 근근한 학생들하고만 놀았었고, 회사를 다니며 학생으로 일할 때 같이 살던 룸메랑 사이좋게 지냈었고 그 여자인 룸메 친구들과 놀게 되면서 이 단어를 알게 되었다. 비싸지만 갖고 싶은 물건이라고. 근데 그런 것 있지 않나. 모르는 단어는 들어도 안 들리다가 딱 알아듣기 시작하는 순간 자꾸 귀에 들려오는 것. 그때부터 여기저기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극찬하고 없는 사람들은 궁금해하거나 가격을 불평하던 그런 제품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선 한참 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스웨덴에서 지인의 지인으로 만난 독일인 부부 중 아주머니가 이 써모믹스 영업사원이었던 것. 그래서 스웨덴에서도 끊임없이 이 써모믹스 이야기를 그 분을 만날 때마다 듣다가, 독일에서 코로나 시기를 4개월 보내고서는 그래 결심했어 난 이걸 사야겠어 하게 되었다. 그 계기는 간단하다. 1) 난 요리에 소질이 없고, 2) 잘하고자 하는 노력도 하지 않으며, 3) 작은 정성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4) 맛있는 걸 좋아하고 맛의 차이에 민감한 편이지만 아주 부조화스럽거나 간이 세지 않는다면 재료 자체의 맛으로 잘 먹는 스타일이고, 5) 건강을 많이 신경쓴다. 6) 아참, 한국음식을 좋아하지만 전 세계음식을 만만치 않게 좋아한다. 그래서 노맛국이라는 독일에서도 즐겨먹는 메뉴들이 있을만큼 생존력이 있는 편. 이렇다 보니 배달음식이 제한적인 독일에서 돈으로 막아 제대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는 편이다. 이렇다 보니 써모믹스에 대한 생각이 커졌다. 사용한 지 근 2주, 내가 만들면서도 시킨대로 하다 보니 남이 만들어준 맛이 나는 이 기계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선 만들어먹은 건 커리, 라따뚜이, 어니언스프, 피자도우지만, 만들어먹을 수 있는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아이스크림도 되고 글류바인도 적정온도에 따뜻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고... 하다보니 제품리뷰 플러스 광고 같네.아무튼 이걸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발전이 없을 영역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웃소싱하자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쥐고 있어도 안되는 영역들이 있다. Capability가 아니어도, 그 영역만의 전문성이나 작은 디테일의 차이가 눈에 절대 안 들어오거나 거기에 들어가는 1분 1초마저도 아깝게 느낄 수 있다. 나한테는 요리가 그 영역이었고, 소꿉놀이를 하듯 요리를 해보던 시기는 지났다. 기술에게 받을 수 있는 건 받는 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즐거움 아니던가. 다른 영역도 이렇게 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한번 더 생각해봐야겠다. 



필터 샤워기와 걱정


한국에서 돌아올 때 항상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건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떠나오기 전날 인터넷 면세점을 기웃거리다 이 녹물을 걸러주는 필터 샤워기를 보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에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려면 이 집 저 집에 돌아다니며 자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데, 그렇게 외박을 하며 발견한 이 필터 샤워기는 뭔지는 몰라도 독일 집에 너무도 필요한 물품 같았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석회와의 전쟁. 브리타 정수기는 기본이고, 생수를 사마시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는 무조건 마른 행주로 그릇을 닦아두어야 한다. 아니면 하얀 얼룩들을 참아내야 하니깐. 얼음도 나오고 뜨거운 물도 나오고 요즘은 슬러쉬도 되는 정수기가 있는 한국에서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오래된 수도관과 석회로 시작한 수질에 대한 불신은 아마도 독일에 사는 한 계속 신경써야 할 문제다. 스웨덴에서 살 때는 물이 참 맑아서 석회 걱정도 안해도 되었고 그냥 탭워터를 마시곤 했는데, 이젠 못 그러니 참 슬프네. 

아무튼 그래서 필터 샤워기와 여분의 필터를 급 결제하고는 오자마자 설치해서 사용했다. 어느덧 3주가 훌쩍 지났고, 지금 내 필터는 무슨 색일까요. 매우 하얗다. 석회로 인해 생기는 하얀 얼룩은 상대적으로 덜해진 것 같지만, 그냥 느낌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 필터 샤워기는 손잡이 부분이 투명해서 필터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볼 수 있는데, 그 색이 지금 매우 하얗다. 이것 또한 제품 리뷰나 독일 수질검사가 아닌데, 이상하게 흘러가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이게 '걱정'에 대한 내 태도를 말해주는 듯 해서. 최악을 상상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시간이 흘러 그 대책의 결과를 살펴보면 그 최악은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새하얀 내 샤워기 필터처럼. 가끔 어이없게 최악의 상황이 안 일어나 실망하기도 한다. 녹물이 듬성듬성 낀 필터를 봤으면, 거봐 했을 내 자신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내 대책은 그저 그곳에 제법 무의미하게 있다. 실제로는 궁금함이 걱정보다 더 크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렇게 끊임없이 걱정을 깨뜨려 확인해보는, 일련의 과정을 앞으로도 계속 거쳐갈 것 같다. 깨끗한 필터와 행복한 나는 결국은 윈윈일까, 아니면 무의미한 시간과 노력과 정신승리한 나의 루즈루즈일까. 



Scott Young - MIT Challenge


아웃스탠딩에 한 기사가 나왔다. 흥미로워서 읽어보는데, 구독하지 않으면 전체 글을 읽을 수 없단다. 가끔 영문 컨텐츠를 그저 번역한 듯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제법 보게 되는데, 흠... 아직 이 서비스의 장점을 못 느껴서 곧장 구글에 영어로 "Scott Young MIT Challenge"를 검색했고 더 많은 원 자료를 얻었다. 

 https://outstanding.kr/ultralearning20191017


나처럼 스캇 영이 직접 제공한 내용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 링크가 더 적합하겠다. 

https://www.scotthyoung.com/blog/myprojects/mit-challenge-2/


간단하게 이 분이 이 챌린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자면, 원래 전공 선택 시 경영학과 컴공 사이에서 갈등을 했었고 경영학을 선택해서 졸업을 했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고, 그래서 컴공을 공부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하게 될 때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하면서 대안을 찾아보다가, 이 방법을 찾은 것이다. 최근 질 높은 강의와 커리큘럼을 오픈하는 대학교들이 많으니, 내가 그 커리큘럼을 따라 자가학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 시작한 1년 안에 MIT CS과정 마스터하기에 대한 이야기다. 자세한 건 이 테드 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piSLobJfZ3c

TED Talk - Scott Young - MIT Challenge


이 분의 이야기가 좋았던 점은, 일이 아닌 개인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 관리의 동기와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교훈까지 완벽한 스토리라인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에서 시작하여 이런 자율학습의 유일한 단점이 학위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를 해결한 점 (자신의 블로그에 이 과정을 기록함) 이 뭔가 굉장히 미국스럽지만 그래서 좋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좋아하는데, 365일 줄리아의 레시피 따라잡기 챌린지 같았달까. 스스로 commitment를 만들고 지켜나가면서 실패하고 배우고 수정해나가는 모습이 내가 추구하는 인간상과 닮았다. 이 분도 똑똑한 사람인 건 블로그에 기록한 그 과정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제대로 잡힌 목표와 계획이 실행되는 걸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 분의 Lessons learned였다. 대학교육이 좀더 저렴해져야 한다 혹은 정부가 변화해야 한다 같은 너무 거시적인 이야기보다,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하고 배우는 걸 방해하는 게 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세대고, 사실 그에 대한 리소스는 사방에 있다는 점. 


잠시 느슨해졌었는데 참 필요한 메시지였다. 새해도 지났고 구정도 지나서 작심삼일의 파워를 끌어올 구실이 없다면, 이 스캇 영의 이야기가 작은 트리거가 되었으면 좋겠는 마음에서 공유해본다. 



Private Life


넷플릭스 영화다. (나 넷플릭스 너무 좋아하나 싶어, 다음 달에는 넷플릭스를 잠시 중단하고 HBO를 구독할 예정) 

https://youtu.be/J1orjA9Z8g4

Netflix Film <Private Life> Official Trailer 


굳이 영화제 영화만 찾아보는 시네필은 아니지만, 선댄스 영화제 작품들은 유난히 내 취향과 잘 맞는다는 점을 깨닫고 넷플릭스에 Sundance로 검색을 했다 발견한 영화다. 2018년 작이니 오래되진 않았지만 최근 영화라 하기엔 좀 그렇다. 


타마라 젠킨스 감독에 폴 지아마티와 캐트린 한 주연의 작품이다. 미드 <빌리언즈>를 본 사람이라면 저 남자주인공이 낯설지 않을거다. 영화는 난임으로 고생하는 40대 예술계에 종사하는 부부가 아이를 갖으려 클리닉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면서도 입양을 함께 고려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제목처럼 누군가의 사생활이고, 이 부부 말고도 주변인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생활도 엿볼 수 있다. 사생활이란 게 저마다의 요지경이라 참 거지같고 하찮고 부질없는 건데, 그걸 너무 재밌고 유난스럽지 않게 보여주는 점이 내가 찾은 이 영화의 묘미.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정말 좋았는데 (지금 저 오피셜 트레일러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으니 말하지 않으련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적어도 내게는) 이 요지경같은 삶을 견뎌내고 살아내는 이유이지 않을까 슬쩍 던져보면서. (나는 영화평을 참 성의없게 쓰는 경향이 있음을 이제야 밝힌다...)







이것 이외에도 <Franny & Zooey>와 <Little fires everywhere>를 천천히 아껴읽고 있는 중인데, 이건 다음 격주정리에선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감정이 소용돌이쳐도 끝이 좋으면 다 좋을지도 모르겠는 그런 2주였고, 셰익스피어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볼까 싶은 의욕만 넘치고 산만한 주말이다. 봄날같은 오늘, 바깥 공기 좀 넉넉히 마셔둬야겠다 싶다. 


그나저나 스포티파이의 Sunday Morning - Paris Cafe 플레이리스트? No good :( 아마도 파리 안 가보거나 유럽 2주 투어 다녀온 미국인이 만든 리스트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커버 이미지는 어제 다녀온 독일의 베네치아(sarcasm...), 밤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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