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점을 찍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는 긴데 한 달은 빨리 간다. 벌써 올해의 1/5이 지났다. 특별히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은 가고, 그나마 보낸 시간을 '뭐하고 살지'와 '뭐하고 놀지', 그리고 '뭐 먹지'에 다 쓴 듯 하여 여러모로 아쉽다. 물론 그 순간을 달리 알차게 썼을 방도도 없어 이 또한 이 시기를 큰 문제 없이 나는 방법이겠거니 하고 넘어간다. 이 아쉽지만 넘어가는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 싶고, 대단하진 않아도 꼬인 부분이 많지 않게 사는 걸로 족하다.
아직 다 읽지는 않은 책이지만 이 책에서의 한 꼭지 덕에 즐거운 경험을 해서 이번 격주정리에 넣어보고 싶었다. 두번째 장에 나오는 '고립에서 벗어나 관계 맺기' 편. 수다스러운 스타일이지만 어렸을 때부터도 엄마한테 학교 다녀와서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잠든 시간 전화기를 방에 들고 들어와 밤새 수다떨던 친구들도 있었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수많은 카페에서 바에서 같이 앉아 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는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술 한 잔(+a) 하면서 페이스타임으로 나누는 이야기가 있고 소중하다. 하루하루 오늘은 누구를 만났고 이불 커버가 세일이더라 같은 이야기는 나누지 않아도, 정돈되지 않은 의문과 이유를 모르겠는 상한 마음 같은 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다.
인간관계에 냉소적이지는 않지만 기대를 무리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오래된 관계에 노력을 더하는 일을 소홀히 해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시간에 따른 나의 변화에 대해 알아차릴 수 없으니, 주변의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에게 여러 개의 점을 남겨놓고 나중에 그 궤적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 마음을 굳게 걸어잠근 사람은 또 아니라 관계를 맺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그렇게 맺은 관계를 잘 이어나가지는 못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오고 가는 건 상대에 달렸다고 생각해서 가는 사람 못 잡고 오는 사람 안 걷어차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휘둘린 경험이 몇 번(+a) 있기도 하고. 아무튼 내 지나온 시간 내 ups and downs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거, 내 점들이 어떤 트렌드를 보이면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지켜보고 이야기해줄 사람들과 그런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선 여기 시간으론 오후 4시, 한국 시간으론 자정이 넘은 시간, 친구 하나한테 "자니?" 하고 텍스트를 보냈더니 "당연히 아니지"하고 답장이 왔고 오랜만에 한 3시간 같이 놀았다. 그 친구의 점들을 나도 이었고 그 친구도 내 점들을 이었다. 생각보다 긴 선이었고, 점들이 많이 찍혀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아주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주파수 같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적당히 출렁이는 곡선이었다. Good old days 말고도 아직 앞으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라 좋았고, 이 저녁 수다도 어떤 점으로 찍혔겠구나 싶어 따뜻했다.
관종은 아니어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면 나를 노출시키는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낮을수록 노출이 중요하다. 물론 노출 후 겪어야 할 노이즈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이 책도 굳이 따지면 자기계발서다. 자기계발서라는 게 적당한 시기에 만난다면 좋은 넛지가 될 수 있고, 아니면 또 다른 블라블라블라로 들릴테지. 필요할 때 내 맘대로 가져다 읽고 뭐라도 (이상하지 않은 걸로) 얻어가면 되지 않나 싶어 읽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좋아 천천히 읽고 생각해보고 있는 책.
<소울>을 보고 싶어서 시작했다가 의외로 볼 게 많아서 생각보다 열심히 즐기고 있는 디즈니 플러스. 픽사의 모든 작품을 좋아해서 한번씩 더 보고 있기도 하고, 스타워즈 시리즈도 있어서 도전. 이번 기회에 "내가 한번 그 수많은 레퍼런스를 위해 쭉 보고선 계속 싫어하기로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두 개의 에피소드를 보고선 "우와, 이 세계 더 알고 싶다" 모드로 바뀌었다. 마지막 뮤지컬이 언제였더라 싶을 정도로 오래된 공연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해밀턴>도 좋았고 네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들도 있고 볼 게 많아서 한번씩 갈아타면서 보고 가도 좋을 채널.
디즈니가 지어내는 세계에 물론 많은 문제점 (백인 중심적 사고방식, 여성을 다루는 방식) 들이 있지만, 실존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몰입하게 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한 데서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현지어가 많이 부족하여 공부할 겸 산 책들도 동화책들이다 - 그림 형제와 미하엘 엔데의 책을 샀다. 스웨덴어를 배울 때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책을 사서 읽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서 자꾸 까먹는 기본들이 있다.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야 해. 남을 해하면 안돼. 차례를 지켜야지. 남의 것을 탐내면 안돼.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친구한테도 상처가 돼. 이런 기본들을 잘 배워놓고도 까먹는다. 일부러 까먹기도 하는 것 같고, 저대로 살면 호구가 되는 사회에 살면서 자연스레 지워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씩 다시 짚어보는 것이 중요하고, 초대받지는 않은 것 같지만 열심히 자리에 앉아 디즈니와 동화의 세계에 들어가보는 게 아닐까 싶고.
머리가 엄청 복잡한 한 주였는데 기억에 남는 게 그렇게 없네. 물론 일기장을 뒤지면 이것보다 많은 아이템들이 있겠지만 이걸로도 충분하다 싶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난 이렇게 열심히 점을 찍고 있는 셈이다. 짧은 격주정리도 나름대로의 indicator!) 일이 바빴고 잠을 많이 잤고 병원에 들르면서 간단한 치료들을 받고 있고, 지금은 부활절 휴가만 기다리고 있다. 작년 휴가와 오버타임을 붙여서 4일 휴가를 내고선 10일을 통으로 쉬는, 아주 오랜만에 긴 휴가다(라고 말하기엔 1월에 이미 그렇게 통으로 쉬었었네...). 딱히 계획은 없는데도 이 휴가가 너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