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격주정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gal Oct 03. 2021

2021년 38-39번째 주

마치 스몰톡 같은 격주정리

10월이 또 왔다. 10월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회색 날씨와 차가워진 온도, 줄어든 일조량에 무력하게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몇 년 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중 (재택근무) 퇴근 후 일정을 살짝 빠듯하게 잡았다. 운동 스케쥴이 촘촘하게 짜졌고 이런저런 그룹 활동도 살짝 넣어보았다. 코비드 제한이 아직도 있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잡아두고 보았다. 일부러 주말로 잡은 독일어 수업 스케쥴은 최소 인원이 차지 않아 취소되었다. 마침 어수선한 단체 수업 분위기가 별로여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취소되고 나니 오히려 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즉흥적으로 회사 동료와 따뜻한 남쪽으로의 롱위켄드 여행을 잡았고 10월의 햇살 할당량은 거기서 채우게 될 것 같다. 우연히 역에서 콘서트 포스터를 봤고 한번은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던 연주가의 얼굴이 있어 콘서트 하나도 바로 예매해두었다. 이런 준비가 유난스러워보이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걸 보면 10월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의 시기가 아무렇지 않아지기엔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하다.



다른 나라 선거 이야기


독일의 선거가 지난 주 일요일에 있었다. 민심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단편적이고 이념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이했던 이번 선거와 그 결과는 외국인으로 세금을 내며 이곳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참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개인적으로 NYT와 비슷한 스타일의 Die Zeit이 제공하는 결과 및 시각화 서비스가 가장 맘에 들었다

도시별 정당선호도, Zweitstimmen 기준 / 링크는 여기: https://www.zeit.de/thema/bundestagswahl


지역별로 굉장히 상이한 정당 선호도가 신기했고, 젊은 유권자들이 녹색당에 많은 표를 던진 것에 우려를 표하는 어르신 세대 이야기도 제법 들어 세대 갈등은 어디나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젊고 소위 진보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녹색당만은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해관계라는 게 제법 투명하게 보이는 투표 이야기를 듣는 또다른 재미였다. 저 지도에 있는 색이 빨갛다고 마냥 진보라고는 볼 수 없는 게 SPD의 색깔이 어느 정도 중도를 향해있기 때문. 저기 저 마치 지오디 팬인 것 같은 하늘색은 언제 봐도 놀랍다. 내가 만나고 이야기 들을 수 있는 독일인이 물론 굉장히 소수여서 그들이 모두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약간의 개개인의 의사결정에 있어 맥락을 파악하는 건 흥미로웠다.


https://youtu.be/v-Wf1UoV-wU 

독일의 정치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주는 유튜브 비디오도 하나 추천. (출처: Easy German, 독일어계의 박막례님 채널)


모처럼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고 백신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듣고 깜짝 놀랐다. 물론  "부작용" 있을  알면서도 백신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친구가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궁금해지긴 했다.  정보의 출처는 어디일까. 네이버 인터넷 기사일까, 나무위키일까, 네이트 판일까. 정보를 얻는 장소가  다르고  정보를 공유해고 확장시켜가는 준거집단도 다른 데다가  서로 다른 집단이 건강하게 공존하며 토론할 공간이 없어지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내년에 있을 한국의 선거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다들  출처나 팩트 체크없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믿으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쉽게 끌어다  정보들은 도처에 깔렸다. 진실과 상관없이  주장을 강화하고  이해를 지지할 정보를 찾는 것은 일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바보가   있는, 그리고 내가 바보가 된지도 모르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알면 알수록 인류애를 잃어갈 수밖에 없는   슬프면서도,  또한 어떤 버블 안에서 살면서 토론할 에너지를 아끼며 어떤 무리를 보며 그저 쯧쯧거리고 마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졌다. 물론 내가 이상한 정보를 흡수, 유통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함께.



가을앓이


원래는 지금이 매해 감기에 한번 심하게 걸리는 시기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주로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대신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PMS 증상들도 평소보다 일찍 와서 한없이 졸리고 의욕이 없다. 그래서 정해진 일정을 제외하고는 주로 누워서 뒹굴거나 별다른 걸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러기엔 일정이 너무 바빴다. 거의 한 주 내내 출근을 했고 퇴근 후 일정이 많았다. 열심히 자고 쉬고 나서도 개운한 느낌이 없다. 아마도 이번 생리가 지나고 나야 원래로 돌아올 것 같다. 건강한 11개월을 보내다가도 이렇게 한번 나약한 순간이 올 때 나이먹어가는 게 무서워진다. 언니들한테 말하면 이건 아직 노화의 시작도 아니라고 걱정 말라고 하지만, 그래도 인식하기 시작하면 무서운 게 세월. 그리고 나는 젊은 꼰대도 아닌 그냥 꼰대.


엄마가 아는 분의 자제 분이 북유럽에서 8년을 일하며 살다 마흔 중반에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8년이면 충분히 정착과 안정을 했을 텐데 왜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이제 해외생활이 7년차고 곧 그 분의 8년에 다다르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에 정착이란 느낌도 그저 막연할 따름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고 딱히 지금 사는 국가에서 계속 살 계획 또한 없지만 그렇다고 가고 싶은 다른 나라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닌 나는, 매해 가을 이렇게 몸이 PAUSE를 강력하게 외치는 동안 이런저런 마일스톤을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아는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보수적으로 살아가는 또래한테 중장기 계획을 물어보았는데 이 친구도 그 정해진 영역 안에서 두 세 갈래의 길을 놓고 고민하는 걸 듣고는 미래는 누구에게나 막연한 거구나 하는 위안을 받았다.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은 아닌데 언젠가부터 계속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지금 발을 앞으로 내딛어도 되나 하는 까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기분. 아마 가을과 겨울 아침 출근길이 그럴 것 같다, 안개가 있고 어둡고 회색인. 일주일에 한 번뿐일 출근길이겠지만 말이다.  







지난 주에 밀린 격주정리를 써서 주기가 너무 빨리 돌아왔다. 이래서 밀리지 말아야 한다. 촘촘하게 일정을 잘 짜서 자동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이 가을, 겨울을 보내고 싶다. 핑계댈 시간을 주는 순간 몸이 늘어지기 쉬운 계절이 왔다. 쉬고도 쉰 느낌이 나지 않고, 존재론적 고민이 어둠과 함께 오후 4시부터 찾아올 수 있으니까. 한국으로 가는 티켓을 끊을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작년 12월의 자가격리와 카페에서 앉아 커피를 못 마셨던 기억이 있어 살짝 두렵기도 하다. 지난 겨울 한국에서 머무른 게 효도용이었으니 이번 겨울까지 효도 여행을 하기엔 좀 부담스럽다. 혹시나 싶어 오키나와 여행을 알아봤는데 일본 국경은 현재 여행객들에게 닫혀있다. 원래 다정한 사람이었다면 한국 갈 때마다 이런 고민을 안해도 됐을텐데 여러모로 큰 맘을 먹어야 한다. 중장기 계획 중 하나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어떤 주기로 한국을 들러야 하나인데, 현재는 일 년에 한 번 이지만 맨날 겨울 한국만 보는 건 좀 아쉽다. 할 말이 딱히 없었는데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별 내용 없이 한 페이지 뚝딱 채워내는 걸 보면 내 스몰톡 능력은 아직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년 36-37번째 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