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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격주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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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Nov 01. 2021

2021년 40-43번째 주

마감이 업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처음 격주정리를 해봐야겠다 하고 시작했던 계기는 <일간 이슬아>였다. 허나 일간은  너무했다 싶어 매주를 떠올렸다가, 매주도 너무 무거운 의무감인  같아 격주로 주기를 정했다. 그럼에도, 아예 빵꾸를 내서 밀린  이번이  번째고 마음이 좋지 않다. 글로 마감일을 다투며 살아가는 수많은 분들이 갑자기 존경스러워졌다. 물론 나도  업에 있어서는 늦지 않지만, 온전하게  혼자 시작해서 마무리하는 작업은  없기에 적당한 선에서 다음 단계로 넘기는 것이 가능하다. 글은 아무리 편집자가 있어도 시작과 마무리는 글쓴이의 몫이니  부담이  것과는 다른 차원일 거다. 아무튼 엉뚱하게  마감이 업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고, 변명이나 한번 구구절절 써내려가볼까 싶다.


무기력 


몸이 힘들었다. 몸을 정말 힘들게 해서 힘든 것도 있었고,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닌  같아서기도 했다. 끌려다니는 기분이었다. 일도 원치 않게 여기저기에 휘둘리는 상황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컴퓨터를 켜놓고 커피를 내려와서는 로그인을 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점심 달리기도 많이 못했는데, 이렇게  달을 보내고 나니 내일부터는 최고기온이 10도일 정이라니 슬프다. 저녁 운동이 그나마 즐거움을 주었지만 취소되고 연기되는 상황이 여러  생겨 맥이 빠졌다. 몇몇 주말일정도 코로나 때문에 취소된  있어 괜히  짜증났다. 가끔 친구들도 만나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는 시간이 있었고 여행도 다녀왔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저녁 시간들있었고 핑계 삼아 잠을 많이 잤다.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했는데, 지금의 나는 ' 아니면 ' 아닌 '모나 ' 없는 ‘개’거나  ‘걸’ 혹은 ‘윷’ 삶을 살고 있더라고. 개는 확실히 아닌  같고 걸과 윷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런 하루하루. 그러고선 생각했던 , 내게 '' 뭘까에 대해. 싫어하는  많은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것도 많다던데, 나는 싫어하는  많지 않아 좋아하는 것도 많지 않나 싶었고. 자극이나 도전이 없는 삶에 지루해질 때마다 찾아오는 생각들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직장동료이지만 같이 일은 안하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했고, 그래도 지금   있는  한다는  친구 말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나아졌다. 그러면서 다이빙 자격증을 5월부터  거라고 하는 걸 듣고선, 새로운  원하는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하려고 하고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 영역 안에서 진화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의도치 않게 전자에 해당해서 지겨움과 안정감과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르는구나 싶었다.

시간이 많으니 고민도 질을 따지며 할 필요가 없어서, 게다가 고민할 기력이 별로 없어서, 이번에도 질 낮은 고민을 지리하게 붙잡고 늘어져보았다. 기회가 된다면 안정의 영역을 불편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



마요르카 


마요르카에 집을 살 생각을 할 정도로 자주 가고 좋아하는 동료와 그 파트너와 함께 여행을 갔다. 동료의 파트너는 팀 저녁회식차 상사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한번 본 게 다였지만, 나야 뭐 낯을 잘 안 가리니 상관이 없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좋아하는 친구들이어서 신나게 먹고 마시며 해를 듬뿍 즐기고 왔다. 해변에서 읽는 책도 좋았고 쉴새 없이 먹었던 해산물도 좋았다. 이미 여러 번 다녀서 갈 필요 없지만 처음 가보는 나에게 이것저것 보여주려고 스케쥴을 열심히 짜는 친구한테도 고마웠다.

마요르카에서 독일어로 주문하는 걸 보고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독일의 하와이구나 하고 이해했다. 굉장히 이상한 깨달음이지만, 영어 네이티브들이 여행하는 기분이 이런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번은 꼭 가봐야 한다며 슐라거 스타가 공연하는 비어쾨닉에도 데려가주었고, 흥은 나지만 코로나 규정 때문에 흥분할 수는 없고 가지런히 자리에 앉아 열심히 팔을 흔들어대며 떼창하는 독일인들을 보고 엄청 놀랐지만 티는 못 내고 그저 술을 열심히 마셨다.

해가 있고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곳이 일상인 건 어떤 기분일까. 이 생각을 하면서 며칠 안되는 아침마다 일어나 바닷가 달리기를 했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아주 가끔 진지한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따뜻한 날씨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 같이 감탄했다. 휴가에 들뜬 마음에 여기에 바 하나 차릴까 하면서 진지하게 매물도 찾아보고 답사도 가보면서 안주거리 이야기를 하나 더 만들기도 했고, 잠시지만 장사하는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다른 팀으로 옮긴 친구는 자기 새 상사는 지난 여름의 반을 이탈리아에서 보내면서 일했다며, 우리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며 나에게 마요르카를 열심히 팔았다. 바닷물이 부드러운 게 뭔지 아냐면서 데려간 해변에서 드디어 나도 그 부드러운 바닷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내 마요르카는 어디일까 생각해보았다. 아직은 확 떠오르는 곳은 없지만, 힘들고 무기력할 때 찾아갈 내 마요르카는 멀지 않은 곳에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매해 한 번씩 한 시간을 버는 날이다. 물론 여름의 시작에 가져간 한 시간을 되돌려주는 거니 특별한 건 없지만, 똑똑하지 못한 시계들에 찾아가 시간을 다시 맞춰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마치 무기력에 대한 해결책으로 마요르카에 간 것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마요르카가 먼저고 무기력이 나중이다. 잘 놀고 와서 왜 지쳤냐고 궁금해할 수 있지만, 삶의 여느 부분과 마찬가지로 이해불가, 설명불가다. 내일이 공휴일이라 참 다행이고, 뭘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그냥 뿌듯하다. 자고 싶으면 늦잠을 자도 되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 싶으면 그것 또한 가능한 그런 날이 있어 참 다행이다. 그러기에 너무 열심히 보낸 어제와 오늘이 부끄럽지만, 그리고 한번은 꼭 듣고 싶었던 연주가의 공연이 내일 저녁에 있는 걸 깜빡했지만, 그럼에도 선택권이 있다는 건 언제나 감사할 일이다. 감사하는 삶이 주는 좋은 효과 중 하나가 자기통제력이 강화된다는 점이라는데, 자기통제력 강화를 위해 감사를 이용하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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