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말다 하다 보니 오래되어 버린 격주정리
지난 주말엔 베를린에 있었다 (포스팅하는 시점으로는 거의 한 달 전이 되어버린 듯). 나만 너무 쪼그라들어 동네에만 붙어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 갑자기 콘서트 티켓을 샀고 기차표를 샀으며 베를린에 사는 대학원 동기에게 연락을 했다. 그냥 보면 순서가 이상하지만, 나 나름대로 그때는 제법 논리적이었다. 그 장소에 가야 할 이유가 분명했고, 표를 샀으니 몸이 가야 했고, 간 김에 만나고 싶었던 친구 얼굴도 보고. 마침 그 친구가 자기 스튜디오에서 지내도 된다고 말해주어 숙소 비용도 굳었다. 대학원 친구들과는 예전 학생 때 근근한 시기를 함께 했던 기억이 있어 모든 게 굉장히 소박하다. 물론 돈을 벌기 시작한 지 다들 3년이 넘었고 (역시 다들 나보다 많이들 어리다) 레스토랑 들어가기 전 메뉴판 가격을 한참 보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세금은 어떻게 정산하고 ETF 수익은 어떤지를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되었다. 그때도 나는 한국 직장인 씀씀이가 남아있어, 여러모로 저렴하게 노는 동기들과의 시간이 간혹 불만스러웠지만 그 덕분에 제일 값싼 맥주를 주유소에서 캔으로 사다가 캠퍼스에서 마시면서 탁구도 치고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 실제로 인간 대 인간으로 별 공통점이 없는 친구들인데도 그때 그 함께 한 시간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다. 절친들은 아니어도, 몇 년에 한 번 보더라도 반가운 그런 친구들.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한 인간으로 제일 불완전한 시기를 살 때 만난 사람들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더 편한 지도. 해외생활도 처음이었고 공부하는 분야도 너무 낯설었고 혼자 제대로 살아보는 것도 처음이어서 여러모로 허당 짓을 많이 했었거든. 아무튼, 시작은 콘서트였지만 결국 끝은 사람이었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콘서트도 엄청 좋았다. 너무 좋아서 콘서트가 끝나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며 서성이는 밤길이 정말 행복했다. 사실 음악 취향이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살짝 변했는데, 그중 하나가 말러와 올라프손 연주곡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 앙코르로 들려주었던 이 곡이 이 이상한 시기와 내 인생의 정의하기 어려운 단계를 지나가는 지금에 담담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가사가 없어도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넣어 흘러가게 두면 그렇게 들려오고야 마는 아름다운 연주곡이었다. 이 영상은 BBC 프롬 때.
부모님 집은 내 결정이라고 보기 힘드니 내가 골라 살아온 집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면, 집에 관해서는 그냥저냥 운과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았고, 최고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적당한 월세에 그럴싸한 환경에서 좋은 집주인들을 만나 잘 지내왔었다. 하지만 격주정리에 구구절절 써온 이번 집에서의 시련은, 이 모든 아름다운 기억들을 가볍게 비웃으며 렌트 만족도 평균을 반으로 깎아먹고 말았다. 나의 이사를 도와주고 이 사가를 팔로업해온 동료들은 그 이야기를 열심히 다른 동료들에게도 실어 날라서, 내 집 스토리는 이미 나보다 유명해졌다. 발코니 있는 집에서 살아보겠다고 (그 발코니는 매우 작고, 발코니가 가장 중요한 여름의 대부분을 공사 쓰레기가 놓여있는 바람에 제대로 사용도 못한 건 맘이 쓰리다), 좀 더 큰 도시에 살아보겠다고 (그래 봤자 서울의 1/20 인구가 사는 그런 도시여서 제대로 된 익명성도 없고 뭐가 많이 happening하는 것도 아니다) 이사를 감행한 이 외국인 1에게 닥친 일들 치고는 제법 다이내믹했다. 이렇게 집과 한번 씨름을 하고 나니, 이 책 <새 집 연대기>를 읽는 내내 엄청 웃었고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열심히 끄덕였다.
뭐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시작한 선택이 아닌데, 지나고 보면 어긋난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있었고 그 균열은 레트로스펙트로 훗날의 시련에 복선을 제공한다. 나에게도 몇몇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수선하고 자리를 못 찾은 물건들이 밖에 놓여있음에도 그런대로 나는 지금 내 보금자리가 마음에 든다. 여전히 이모저모로의 개선의 여지가 굉장히 많지만 서로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와 집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조금씩 조금씩 낫게 만들어가 보기로. 집뿐 아니라 모든 취향의 문제가 그렇다. 우리 모두 취향은 주관적이고 비교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분야든 그 분야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이 많아지면 결국 돈과 정비례하고 있는 그 아름다움의 경지를 발견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원래 그렇다. 좋은 건 비싸다. 적당한 수준에서 나의 취향과 지갑이 타협점을 찾고 제한된 조건 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내 만족도를 최적화하려는 노력(이라고 쓰면서 수식을 머릿속에 적어 내려가고 있는 나의 업은 데이터 과학...)은 정말 중요하다. 부모님과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시도와 실패의 시간들을 충분히 겪어내지 못한 젊은이들은 신혼집에서 그 실험을 하거나, 캥거루 서울 사람들은 무리한 독립을 감행해보기도 한다. 모두의 도전을 응원한다. 대신 네이버 메인에 올라오는 천편일률적이고 묘하게 핀트가 나간 유럽 흉내를 낸 인테리어보다는 좀 더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그런 집들을 한국에서도 더 많이 보고 싶다. 어차피 등받이로 쓸 소파 대신 눕기 편한 데이베드나 예쁜 디자인의 좌식 의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9월 한 달 내내 피곤함이 가시질 않는다. 물론 바쁜 일정 덕분이기도 하지만, 잠을 잘 못 자기도 했고 일과 사생활 모두 산발적인 주제가 많았던 시기라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기도 했다. 정확하게 뭘 더 낫게 해 주는지 모르겠던 커다란 오메가 3 영양제가 드디어 바닥이 났고, 마침 비타민D를 다시 시작할 시기가 된 것 같다. 하루 8시간을 진짜 제대로 일하고 나면 저녁에 별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 한번 경험했고, 그럼에도 업무 후 일정이 작든 크든 있으면 삶이 더 다채롭고 재밌어진다는 것도 배웠다. 채소 박스를 주문했는데 거기에 홋카이도 호박이 하나 애물단지처럼 들어있었고 호박이 상하기 전에 뭘 만들어야겠다 싶어 예전에 울산이 고향인 동생이 호박지짐이를 해준 게 갑자기 기억나서 (태어나서 한번 먹어본 이 음식을) 만들어보았다. 호박 껍질을 까다가 역시나 손을 베었고, 한참 치즈 강판에 호박을 갈다가 나에겐 푸드 프로세서와 믹서와 스파이럴라이저까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생각해냈다. 마침 집에 있는 밀가루가 다 건강 버전이라 퍽퍽한 호박지짐이가 되었고, 남은 호박을 그냥 오븐에 꿀을 발라 구웠는데 그게 더 맛있었다. 이렇게 한식과 나는 다시 한번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10월, 11월에는 요리를 더 많이 해볼 생각이다. 매주 만들어볼 페스토 레시피가 가득이고, 주말 오전엔 쿠키 버터 냄새로 가득한 집을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