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보내는 연말 - 화해해야 할 것들
내 연말연초 계획을 들은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은 다음과 같다: 네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넌 왜 또 이런 어려운 시기에 한국에 들어오니. 작년 연말에도 14일의 자가격리를 했고 올해도 10일의 자가격리를 했다. 물론 평일의 시간은 재택근무를 하며 보냈으니 바쁘게 시간은 흘렀고, 격리지만 부모님 댁 + 예전 내가 살던 곳에서의 시간은 철저히 고독하지는 않았다. 사실 혼자 집에 있을 때도 특별히 나갈 일이 없고 장볼 일이 없으면 재택이 주라 밖에 안 나가고 보낸 기간이 길게는 3일까지도 있었다. 그래도 갑갑함을 못 느꼈고, 주방 창 밖으로 보이는 눈과 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날씨와 시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하는 격리는 다르다. 우선 내 공간은 아닌데 그렇다고 갑갑함을 해결할 길은 또 없다. 원래 계획대로 격리 시간을 일 없이 휴가로 보냈다면 정말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 같다. 대작 드라마를 한 큐에 빈지왓칭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고.
격리의 장점은 부모님에게 드리는 시간이다. 원래 한국에 살 때도 주말이고 평일 저녁이고 나가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주로 침대에서 자는 거였으니, 엄밀히 따지면 이렇게 격리하면서 부모님께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도 빚진 효도를 대충 돌려막을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뭘 또 하는 건 아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약간의 필요를 알려드리는 것. 서른이 넘은 딸도 여전히 챙기고 싶은 부모님 마음에 그 기회를 드리는 것도 나는 효도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우리 부모님 한정인 듯 하다. 참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엄마 아빠는 내가 집에 있는 걸 참 좋아한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나는 보일러가 뜨끈하게 들어간 바닥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따뜻함이 그곳에 있는 건 참 좋지만 그게 없는 찬 공기에서 이불을 잘 덮고 자는 걸 더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저 따뜻함의 기억이 extra warm 이불을 덮고 잘 잘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들었는지도.
격리를 하면 굳이 시차에 적응할 필요가 없다. 시차에 적응해서 해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재택도 내 시간에 맞춰 하면 됐었고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다 한 1:1 미팅에 15분 늦었다... 3번이나 연기했다 잡은 미팅인데 늦어서 너무 부끄러웠지만, 내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또 들었다. 그래도 부끄러움은 부끄러움...) 이미 휴가를 고려하고 캘린더를 블락해뒀어서 미팅이 상대적으로 없었다. 피곤은 하지만 잘 수 없는 밤들이 많았고 그때마다 드라마 몇 개를 봤다. 잠시 넷플릭스를 쉬고 한국에 오자마자 왓챠를 구독했다. 왓챠의 장점은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과는 달리 넷플릭스엔 영화가 그렇게 많지 않고, 다른 나라 언어로 된 개봉 영화들이 별로 없다. 아마존엔 영화가 많지만 예전에 내가 볼 때만 하더라도 서비스 국가의 언어 + 영화 언어 두 가지만 서비스가 되다 보니, 독일어나 스웨덴어를 못하던 나에게 그런 영화들은 옵션이 아니었다. 그렇게 피곤한 밤 보게 되는 건 익숙하고 가볍고 짧은 시트콤 류의 드라마였고, 그것들의 언어는 영어였다. 예를 들면 <오피스>. 마이클과 짐과 드와이트와 팸이 나오는 그 익숙하고 심란한 사무실이 혼란스러운 공간과 시간을 자연스레 이어주었다. 기대한 건 안 보던 프랑스, 일본 영화였는데 결국 이미 본 적 있는 미국 국민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게 참 이상하면서도 딴엔 자연스러웠다.
저 2주 간은 거의 철저한 격리였고 격리가 해제되자마자 매일 무언가를 했다. 추운 날 바닷가를 갔다가 수산시장에 가서 해산물을 사다 맛있게 먹고,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도 가고, 좋아하던 곳들에 가서 서성이다 적당히 사람이 많지 않은 공간에 들어가 낮술도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다가, 저녁 약속이 있던 날은 애매하게 9시에 식당에서 쫓겨나 택시를 타기에 너무 쌩쌩한 정신이니 지하철을 타고 귀가해서 (구 직장인의 자존심) 따뜻한 방바닥에 가방을 내려두었다가 화장품이 든 파우치를 꺼내 서랍 위에 올려두고선 (이걸 안해서 화장품이 녹아내린 걸로 값을 치룬 적 있음...) 옥돌매트가 있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 다음 날 10시가 되어서야 눈이 떠지는 한량생활. 재밌는 일들과 엄청 다이내믹 코리아다운 에피소드들이 정말정말 많았지만 이건 내 이야기도 아니니 여기엔 쓰지 않으려고.
친구를 만나서도 이야기했지만, 아직 나는 한국에서의 내 삶과 내가 좋아하지 않던 한국의 문화와 이 치열하면서도 각박한 분위기와 제대로 화해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한숨도 나에게는 무언가로 읽히는 곳이 한국이라면, 내가 거주하는 곳에서는 내가 프로세싱하기를 거부하는 순간 그들이 나에게 하는 말도 노이즈캔슬링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가끔 한국에 올 때마다 잠깐 머물면서도 느끼는 피로감이 심한 건 하나, 역사와 맥락까지 다 읽히니 괴로움이 더해지는 건 둘. 해외생활을 10년 넘게 하신 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부터는 유럽 여행와서 열심히 차려입고 사진 찍는 친구들을 보면 귀엽고 그 옆에서 들리는 한국말이 정겹게 느껴진다고. 길어봤자 2주인 휴가를 어렵게 내고 와서 충분히 즐겨도 마땅한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예쁜 '서양'만 찍고 경험하고선 유럽 정뽁!하고 가는 사람들이 뭔가 고깝게 느껴지는 건, 아직 과거의 그랬던 나와 지금의 내가 화해하지 못해서다. 유난히 같이 일하는 한국팀이 지나치게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 누구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독일에서의 내가 아직 이렇게 잔뜩 성이 나 있는 건 아직도 화해하지 못한 그때의 내가 있어서다. 한국에 오면 피부관리도 해야 할 것 같고 두피 클리닉도 받아야 할 것 같고 잘 보지도 않던 손등 피부도 관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의 80%는 공격적인 LED 백색 조명 탓이겠지만, 10%는 온갖 미디어가 시켜주는 환기, 나머지 10%는 살아나는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2022년 새해 다짐은 딱히 없지만 올해는 화해가 목표다. 이게 붕 떠 있는 마음이 적어도 자유롭게 바람과 함께 유영할 수 있게 해줄 거고, 맺어가는 관계 속에서도 내가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계획을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이유와도 마주할 수 있을 듯 하고,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것들 때문에 치루던 비싼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거다. 2021년에는 드디어 해외살이의 콩깍지가 아주 개운하게 벗겨지는 경험을 했고 (참 오래 걸렸네...) 인생의 책임감과 스케일을 키운 중요한 해였다. 한 해에 코로나 백신을 세 번이나 맞았고 그것 말고도 다른 백신도 세 번이나 맞았으니, 예방도 신나게 했다. 준비가 이렇게 든든히 됐으니, 2022년에는 실행이 주가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해도 그 중의 하나다. 가장 중요한 하나. 내가 나의 일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강한 회복이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사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많은 생각을 했는데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하고 싶던 말을 까먹어버렸다. 돌아가는 길에는 그래도 노트북을 꺼내서 뭐라도 적어봐야지. 긴 비행 중에 먹는 마음들이 생각보다 신박한 게 많다. 새해에도 이렇게 매너리즘 가득하고 의미없는 이야기들을 써내려가고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은 크게 변하지 않나보다. 1그램이라도 좋게 변화하는 방향으로 힘을 보태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면 불어오는 바깥의 바람에 나쁜 쪽으로 너무 쉽게 기울고 만다. 올해는 좀더 열심히, 그리고 자주 기록해보기로 하지만 격주는 격주, 나머지는 자발적으로 횟수를 늘려보고자 한다. 쓰는 이유는 결국 읽히기 위함일텐데, 이미 이렇게 혼잣말을 길게 하는 기술을 충분히 익혔으니, 이젠 읽혔으면 하는 그런 좋은 글을 쓰는 노력도 해봐야겠다. 새해 다짐은 너무 비장해서 싫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걸 보니 이것도 내 안의 한국인과의 화해 중 하나로 쳐도 되지 않을까. 벌써 성취율에 신경쓰는 걸 보니 노력2로 쳐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자기평가인데 자신있게 성과로 인정하지 않는 걸 보니 이것 또한 화해의 일부가 아닐까...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