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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선 Nov 28. 2018

냉이를 샀다

할머니의 된장과 꼭 어울리는

깨끗하게 다듬어진 냉이 한 봉지


냉이가 든 봉지를 덜렁이며 걷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냉이 향 향긋한 된장찌개가 떠올라 입꼬리가 절로 씰룩인다.

조금 늦은 출근길, 빨간 바구니에 담긴 냉이를 보자 고장이라도 난 듯 걸음이 멈췄다. 선 자리에서 냉이를 돌아보곤 요리조리 고민했다. ‘냉이는 봄에 나는 거 아닌가? 냉이가 맞나? 저걸 사 가면 주말에는 끓여먹겠지? 아닌가 버리게 되려나?’ 미치도록 반가운 마음과 혹시라도 버리게 될까 미리 아까워하는 마음이 두 발로 흩어져 발만 동동. 멈춘 자리에서 종종거리며 한 바퀴를 뱅 돌고는 결국 냉이를 향해 돌진했다. 한 바구니에 2천 원. 검은 봉다리에 잘 다듬어진 냉이를 담아 들고 세상 가장 뿌듯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할머니의 막장에 냉이를 넣어 끓이면 얼마나 맛있을까. 멸치 다신 물에 강원도식 까만 막장 휘휘 풀고 다진 마늘 조금에 냉이만 듬뿍 넣어도 맛있겠지. 시커먼 색깔에 누구는 놀랄지 몰라도 일단 그 맛을 보면 줄어드는 국물이 서운할 거다.

할머니 손에 자라던 때. 할머니는 참 신기하게도 들에서 산에서 온갖 것을 캐오고 구해오셨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밥상은 늘 풍족할 수 있었던 비결일까. 밥때 전 과도 하나, 소쿠리 하나 들고나가시면 돌아올 때 소쿠리는 냉이며 달래, 머위대, 쑥 같은 것들로 살뜰히 채워져 있었다.

냉이 된장국, 달래 무침, 머위대 볶음. 그런 것들을 보면 왠지 더 반갑고, 눈물이 날 것 같은 이유는 없는 살림에도 어떻게든 한 끼 든든히 해먹이고 싶었던 할머니 마음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커버린 탓이겠지. 도시 사는 손녀는 들에 널린 나물 캐는 법은 못 배우고 읽고 쓰는 법 배워 대학까지 나왔는데. 냉이 하나에 울고 웃는 모지리가 되어 전화 한 통의 안부도 전하지 못한다.


이번 주말엔 냉이 된장국을 끓여 먹어야지. 그리고 씩씩하게 할머니의 된장국만큼 맛있는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고 전화를 해야지.


2017.12.09.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던 삶의 조각들을 모아보려 한다.
여기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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