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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선 Nov 28. 2018

안부를 묻고 싶은 밤

아니, 조용히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밤


서로를 스쳐간, 이제는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짧은 인연을 떠올린다.


짙은 눈매와 도톰한 입술, 그 입술과 꽤 잘 어울리던 걸걸한 목소리. 작은 나보다 한참 작은 키에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던 너. 메마른 상상력으로 뻔한 스테레오 타입이겠거니 내 멋대로 생각했다. 우리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된 이들이었다. 허술한 고용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꽤 야무진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함께 일할 때면 너는 언제나 내가 모르는 재미난 노래를 틀어주었다. 나는 우리 사이가 음악의 제목을 묻기에는 좀 싱겁다고 생각해 차마 묻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제목을 물었다. 너무나 웃긴 노래였기에 이번에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리미와 감자'. 홍콩반점이었던가, 치킨이었던가. 아무튼 요상한 노래를 부르는 요상한 듀오를 알게 되어 반가웠다.


우리는 점차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점심을 먹으며, 프린트물을 정리하며 질문을 주고받았다. 너는 나와 같이 오래된 연인이 있었다. 나와 같이 애인과 통화 중엔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썼다. 오래된 연인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면 각자의 애인에 대해 야무지게 떠들었다.


물론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았다. 나는 당시 스트레스를 시끄러운 클럽에서 땀날 정도로 춤을 추며 푸는 걸 즐겼다. 그런 나와 달리 너는 클럽 한번 못 가보았다 했다. 하이힐을 신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새내기 때부터 학교와 병원만을 오가야 했다고 했다. 암에 걸린 엄마 곁을 지켜야 했다고. 그 얘기를 듣다 나는 주책없이 눈물이 터졌다. 부끄러움이 반이었다. 멍청한 스테레오 타입 따위로 널 단정 지었던 나에 대한.


어쩌면 너는 원치 않았을 눈물을 죽죽 흘리며 울지 않는 너를 바라보았다. 단단한 눈빛이었다. 충실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너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던 건 바보 같은 내겐 넘치는 행운이었다. 어쩐지 너와 네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싶은 밤. 아니, 이름도 가물가물한 너의 행복을 바라는 밤이다.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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