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시계로 살아가는 법
봄이오면, 주차장이나 화단의 흙과 시멘트 틈바구니를 따라 일렬로 피어나는, 접시같은 치맛자락으로 펴지는 노랑 꽃 잡초가 있다.
분명 같은 흔한 잡초라도 구석진 곳에서 빳빳하고 가느다란 긴 줄기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습은, 눈 녹자마자 아직 잔디가 자리잡기도 전, 잔디밭을 둥근 머리로 노랗게 덮어버리고 곧이어 하얗게 홀씨를 피워 삽시간에 번져가는 민들레와는 달리 새침하고 더 귀여운 데가 있다.
이 녀석들의 한국어 이름은 ‘나도 민들레’이다.
몇 년 전 너도 밤나무, 나도 밤나무 처럼 가까운 종에게 ‘너도’나 ’나도’를 붙인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으니, 이 아이들도 그러니까 결국, 집안에서 목소리 깨나 큰 민들레에 치어사는 얌전한 사촌동생 쯤 되는 모양이다.
‘너도 나도’ 나서는 정치판이며,
쾌를 만나면 ‘이참에 나도’ 끼어드는 망둥이들,
생색나고 이득 볼 때만 ‘나도 나도’ 잘났다고 고개를 드는 기회주의자들에 비해,
나도 장미도 아니고 나도 민들레로 존재하는 이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친구들인가.
어려서 (혹은 다 커서) 민들레 홀씨를 부는 것에 대해 아름다운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정원이나 밭이 없는 태생 도시 사람들일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민들레는 꽃 주변으로 잎을 납작하게 땅에 눌러 붙이며 그 반경 잔디까지 누렇게 말려죽이고, 뿌리는 또 얼마나 질긴지 큰 것들은 뽑는 것도 수월치 않은, 가히 최강 잡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낭만없게도, 혹 어디서 민들레 부는 사진이라도 보이면,
안 도~~~ ㅐㅐㅐㅐ!!!
하고 구식 오디오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를 내며 몸을 던져 막고 싶어지곤 하는 것이다.
엄빠 여기 놀러오셨을 때, 우리 엄마는 뒷마당 잔디밭에 무성한 민들레를 보고 반기며 한 보따리 따다가 나물도 하고 쌈도 해 드셨드랬고, 요즘도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아닌 기근 만난 사람처럼 민들레 많이 뽑아먹으라고 성화시지만, 근래들어 이웃에 부쩍 반려견 산책시키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것도 영 찜찜해졌다.
게다가, 혹 막상 모기와 전쟁을 벌이며 한모타리 캐 오더라도, 고작 한 접시 얻으려고 씻고 다듬고 삶고, 손질이 이만저만 성가신게 아니라서, (특히 여성) 노동집약적인 한국인의 밥상의 배후에 어떤 노고가 있는지를 남자들은 알고 어머니 집밥 같은 소리를 하는지도 궁금해지고, 감자 농사에 올 인했다가 대기근으로 나라를 잃을 뻔한 아일랜드 사람들이 이 ‘나물’의 미학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돌아가신 시할머니는 톱밥도 장만하면 먹는다 하셨으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Dandelion clock ‘민들레 시계’ 라는 게 있다.
지금 몇시니?
하고 물으면,
민들레를 후 후 불어서 다 날아갈 때까지 걸리는 횟수만큼의 시간을 답하는 놀이.
당연히 전혀 맞을리가 없는데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을 것이, 후우 후우 민들레를 불고 홀씨들이 날아가는 모양을 바라보다보면, 지금이 실제로 몇시인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어른보다 아이가 더 여러번 불어야 할 테니까, 어쩌면 아이에게는 저녁이 더 빨리 찾아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더디 가지만, 늘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보면 어느새 길어져 가는 그림자에 놀라 집으로 뛰던 기억이 생생하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해시계도 있었네. :)
너무 정신없이 지나갔기도 하고, 한 없이 지루하기도 했던 지난 한 해 나믄의 시간들.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간 따위 무시하고 우리 모두 그렇게 민들레 시계로 살아도 좋겠다.
보얗게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예쁘고 좋은 것만 바라보면서 살다보면 어느새 다시 좋은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