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시간(1)

만남

by 숨은 연못

다람쥐


2020년 초, 겨울의 끝에서 시작한, 이러다 말겠지, 는 이러다 말겠지? 로 바뀌었고, 설마, 는 다시 결국, 으로 이어지면서 계절은 자꾸 바뀌어 금세 다시 겨울의 시작으로 이어졌었다. 시간은 갑자기 불가능하게 된 것들의 부재로 묽어졌고, 그리고 다시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들로 끈적해졌다.

마스크를 쓰느니 (글자 그대로) 죽음을 달라는 미국인들로 운동시설 이용이 곤란하게 되었고, 에코의 강의를 인강으로 돌린 후로는 둘이 하루 24시간을 붙어있게 되었고, 우리는 각자, 혹은 같이, 나가 걷는 시간이 길어졌다.

여느 늦가을처럼, 월동준비로 솔방울을 모으느라 분주하고, 이따금 새보다도 소란스럽게 깍까드득깍깍 영역 주장을 짖어대기도 하는 조그만 다람쥐들이, 종내엔 건물 5층 높이는 됨직한 가문비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솔방울을 따 신나게 바닥에 던져놓고는 다시 그걸 바지런히 모아들이는 모양이 기특하고도 신기하더니, 급기야 어느 날부터는 부럽기도 한 것을 보니 내가 많이 지쳤나 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숨은 문제들이 속속들이 드러나 버린 미국은 나날이 사망자가 몇천 명씩 나오고 있었고, 그나마 잘하고 있었던 한국까지 어쩐지 상황이 좋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한국의 연로하신 부모님과 미대륙 양 끝에 떨어져 1년 동안 못 만난 아이가 너무나 걱정스럽고 보고 싶었고, 그래도 우리는 다행히 ‘아직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날마다 뉴스에서, 코로나로 병들고, 죽고,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의 사연을 듣노라면 대책 없이 가슴만 아픈 시간이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자연이 다 알아서 농사를 지어놓은 걸 너희들은 그저 대충 모으기만 하면 배불리 먹는구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잘난척하더니 보이지도 않는 균 하나 이기지 못해 사랑하는 이들 얼굴도 다시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 인간들 사정을 느이들이 알기나 하겠니, 싶어 애먼 다람쥐들에게 슬그머니 심술까지 나려 했던 모양이다.


여우


그해 겨울 초입, 첫눈이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산책하러 다녀온 에코가 여우를 본 것 같다고 했다.

겨울에는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무스가 한 번씩 보이긴 하지만 아직 여우는 본 적이 없었다.

본 것 ‘같다’니? 그러자 그는 이번에는 여우가 분명하다고 했다.

-어떻게 생겼는데?

-이렇게, 이상하게, 여우같이.

-무슨 색인데?

-여우 색.

- …


많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의 묘사는 죄다 ‘이상하다’는 것뿐인 에코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지만, 아무튼, 오리같이 울고 오리같이 걸으면 대개 오리라는, 그러니까 아마도 오리인 척 하는 닭은 아닐 것이라는 미국의 속담을 에코보다 더 믿고 며칠을 지켜보기로 했다.


-여우가 물지는 않지? 난 혹시 몰라서 피해 들어온 건데. (에코는 자기가 모르는 건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글쎄, 여우가 사람을 문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는데.



여우와 다람쥐 (그리고 새)


그렇게 겨울이 깊어지던 어느 날, 바로 우리 집 창 밑으로 거짓말처럼 슝 지나가는 붉은 여우를 드디어 나도 목격했다.


녀석은, 여우 색이었고, 과연 여우같이 생겼었다

또한 여우는 여우같이 움직였다.

붉은 구리색 몸이 물 흐르듯 매끄럽고 조용히 미끄러지듯 낮게 은밀한 것이 개보다는 고양이에 가깝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몸의 길이에 비해 길지 않은 다리의 작은 발끝에 통통 튐이 있는 것은 얼핏 강아지와도 비슷한 녀석은, 어어 하는 새에 창 밑을 지나, 잰 몸짓으로 재게 ‘재’ 버렸다.


녀석의 스케줄과 내 것이 들어맞기 시작했는지 그로부터는 한동안 며칠에 한 번씩 여우를 만날 수 있었다.

여우는 첫 만남부터, 마치 일상으로 오다가다 만나던 사이처럼, 그러나 동시에 내가 어떤 놈인지 봐야겠다는 듯,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그윽이 내 눈을 마주치며 바라보다가 내가 빨리 다가가거나 하면 그제야 달아나곤 했는데, 그러고 보니 여우가 자주 보이는 나무 밑 외에도 다람쥐들이 자주 들락거리던 하수관 주변에도 마구 흩어진 여우 발자국과 눈에 뭔가를 파내려했던 듯 좁은 구덩이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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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 다람쥐들을 잡아먹으러 온 거네!

-응, 막 깡총깡총 파다가 이상한 걸 (!) 막 먹더라고!

-뭘 먹더라고?? 왜 그 얘기를 이제 해!

나는 기함을 했다.

-알면 뭐 하려고.


그러게, 알면 뭐 하려고.


하지만 안 되는데. 우리 다람쥐들, 그렇게 열심히 겨울 준비를 했는데 인제 와서 잡아먹으면 안되는데.

나는 오래전 친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끝나고 다 같이 할머니 물건을 정리하면서, 할머니가 그렇게 가실 줄 모르고 다음 계절 옷을 잘 다려 놓으신 걸 보고 쓸쓸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다람쥐들을 걱정하게 되면서 나는 얄팍한 반성을 했다.

쉽지 않구나, 누구에게나 사는 건. 거저먹는 게 아니었구나. 너희들도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열심히 새우튀김 같은 깡치를 남기며 솔방울을 먹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다가가면 지레 황급히 달아나는 다람쥐 뒤통수에 대고, 아이구 천지 널린 먹지도 못할 솔방울 따위를 빼앗아 먹을까 봐! 하고 억울해했던 것도 어이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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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은 솔방울을 빼앗길 까봐 걱정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위험한 것은 다람쥐뿐이 아니었다.

무리 지어서, 얼핏 날개 힘이 딸리는가 싶어 보이게 둥 싯 둥 싯 날아다니는 검은 모자 치카디나, 나뭇잎이 다 떨어진 자작나무나 오리나무에 새 열매처럼 열려 조로롱조로롱 방울 소리로 울리는 정코는, 낮에는 어른 엄지만 한 그 작은 몸무게의 십 퍼센트에 달하는 칼로리의 모이를 부지런히 먹어두고 밤새 나뭇가지 사이에 끼어 그 칼로리를 태우며 자는 거로 겨울을 난다는데, 자칫 바닥에 떨어진 씨앗이라도 정신없이 쪼아먹다가 여우에게 먹히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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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우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여우는 정말 정말 정말 예뻤기 때문이다.

여우가 동의할지는 모르지만, 사진발 안 받는 것에 내 멋대로 동병상련을 느끼게 한다.

물론 가죽으로 목도리를 만들기로 한 사람은 진짜 나쁜 사람인 건 맞는데도 그 미적감각(?)은 이해가 갈 정도다. 가끔 미 원주민들의 장터에 통째로 나와 있는 실버 폭스의 털가죽을 쓰다듬어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붉은여우는 얼핏 오렌지빛이 도는 다갈색의 머리와 등 부위와, 얼굴과 배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하얀 털로, 강종강종 털 물주머니처럼 뛰어가는 모양이 가죽만 따로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물론, 먹이를 찾아 쫓고 쫓기는 기민함과 야생 동물로서의 단단히 말린 스프링 같은 움직임은 동물원에서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연명하는 모습과도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솝이야기에 나오는 여우들도 그렇지만 마침 최근에 읽은 러시안 동화책의 여우는 새들이 날아오면 잡아먹으려고 죽은 척을 한다고도 하고, 예로부터 구미호, 천년호 등 전설을 보듯 여우는 흔히 사람을 ‘홀리는' 교활한 동물이다. 그렇게까지 묘술을 부리지 않더라도, 아무리 덫을 놓고 감시를 해도 농장에 내려와 몰래 닭을 잡아먹고 마는 간교한 여우는 농부들에게는 골칫거리인 것도 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읽은 중세 프랑스 동화 ‘여우 르나아르 이야기’의 여우는, 마침 곁들여진 중세풍의 삽화와 더불어, 간교하고도 어딘가 음울한, 자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비극의 주인공 같은 인상으로 남았었다. 틀림없이 ‘악한’ 르나아르가 죽었을 때 왠지 눈물이 나는 것에 당황하던 나는, 톰과 제리와 딱따구리 등을 보며, 강한 것과 약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구분이 흑백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애증이라는 감정을 배우기 시작하던 중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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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여우에게 한 눈에 반해 버렸던 것이고, 그래서, 안 그래도 걱정할 것도 많은 세상에 마음이 더 복잡해져 버렸다.


To be Continued...


#여우 #야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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