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법
생쥐
-으음 쥐가 있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내뱉은 에코의 말은 거의 중얼거리다시피 평이했기에 더 이상하게 들렸고, 그래서 한 구석에 따로 앉아 책을 보던 나도 특별히 놀랐다기보다는 마치 갑자기 무슨 그런 농담을 하냐는 조로 퉁박을 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말이야. 금방 이리 쪼그만 쥐가 지나갔어.
-정말? 아니 그럴 수가 있나?
한국이야 심해 봐야(?!) 바퀴벌레와 쥐 정도지만, 미국은 대개 나무로 지은 주택에 사니 박쥐나 너구리가 집에 들어오는 일도 드물지 않고, 흰개미가 생기거나 마당에 토끼가 굴을 파서 집 지반을 망쳐놓은 얘기 등 워낙 호로 스토리는 많이 들었어도, 우리 집은 10년이 넘도록 간간이 밖에서 들어온 개미나 해충 말고는 일껏해야 몇 년 전 들국화를 따 왔다가 생겨서 퇴치하느라 애먹은 날파리 사건밖에 없었기에, 아직 직접 보지 못한 나는 또 일단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내가 믿거나 말거나 여우가 실존했으니 쥐도 실존할 것 같았고 일단 잡아야 한다.
에코는, 직전의 평이한 목소리를 상쇄라도 하듯 자기가 본 곳을 중심으로 야구방망이로 여기저기를 시끄럽게 정신없이 마구 들쑤시기 시작했고, 나는 물어봐야 틀림없이 ‘이상하게’ 생겼을 것은 분명할 뿐 정확히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는 녀석을 찾아 노안으로 두리번거리느니 일단 작은 동물이 냄 직한 소리를 ‘들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어디 탈무드 같은 데서 본, 누군가 잃어버린 동전을 흘린 데서 찾지 않고 밝은 곳에서 찾고 있더라 던 얘기처럼 일단 조용한 곳에 가야 소리가 들리리라는 너무나도 비논리적인 생각으로 문이 열려있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곧이어 과연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한순간, 방 창문 밑 모서리 벽과 마루의 공간 사이를 갉작갉작 열심히 파고 있는 골프공만 한 생쥐의 조그만 엉덩이를 발견했다. 그래서, 여기 있네! 하고 의기양양하게 외치고는 다가가자 녀석은 재빠르게 반대편 귀퉁이로 달아났..
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이번에는 문밖에서 에코가 금방 문밖으로 쥐가 나왔다고 소리를 쳤다. 분명 문을 닫았고, 카펫이 있어서 더 운신의 폭이 컸을 수도 있지만 문 밑의 틈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도. 그리고, 처음 나오는 것을 에코가 본 곳으로 다시 들어갔다는 녀석은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지만 도통 들어올 곳이 없었다.
이미 그 크기와 후디니를 능가하는 신기한 탈출(시도)기술을 직접 관찰한 바 있긴 했지만, 우리 집 하수구며 보일러 관이 들어와 지나가는 곳은 다 파악하고 있었(거나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쥐가 드나들 만한 구멍은 찾을 수 없었다.
갸웃거리며 여기저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에코는 다시 유유히 티브이를 켜고 안락하게 자리 잡으며 명쾌하게 선언했다.
-일단 없어. 책이나 마저 읽어.
-(또) 그럴 수가 있나.
-그럴 수가 있거나 없거나, 가고 없대두. 이상할 것 없어. 온 곳으로 돌아간 것뿐이야.
이것은 또 무슨 이다지도 철학적인 답인가.
그러나, 다음날 당장 쥐덫을 사다 놓기로 하는 것으로 일단락하면서 그 와중에도 나는 문득 므훗므훗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니.
여우는 쥐를 먹으러 온 거야.
먹었던 건 우리 다람이들이 아니고 쥐야. 그래. 쥐를 잡아먹으면 되는 거야! 쥐도 나름 귀여웠긴 하지만 그래도 쥐는 쥐야. 쥐는 먹어도 돼.
그러면서 혹시 나중에 덫으로 잡은 것이 있으면 잡아 가져다 바치리라는(!) 공산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쥐나 다람쥐들은 겨울이면 무조건 겨울잠을 잘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북쪽 지방의 다람쥐나 쥐는 겨울에 영하 10도 정도에도 눈밭을 파고 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인생, 아니 ‘동’생 게임은 그리 간단하게 끝나는 것이 아닌 줄도 모르고.
갈까마귀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영리한지를 알 수 있을 만큼 영리한가’라는 ‘프란스 드 왈’의 책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인간이 동물의 지능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떻든 인간 다음으로 여섯째로 영리하다는 까마귀는 견과류를 찻길에 던져 차가 지나가 부서지면 가져다 먹는다고도 하고 인간의 얼굴도 구분한다고 한다.
특히 갈까마귀는 뭉뚝한 부리에 푸른빛이 돌 정도로 검은 깃털의 수탉만큼 큰 덩치도 멋지지만, 그냥 울어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소리의 언어로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고 음식을 발견하면 불러서 나누어 먹는 등의 모습에서 그 명민함이 마음에 들어 내가 참 좋아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갈까마귀와 여우가 싸우고 있는 것을 목격한 내 마음은 마치 내가 소개해서 성사된 커플이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 그래서, 우리 네 남매가 자라면서 어쩌다 토닥거리고 있으면 그냥 스스로 ‘논리적 논쟁을 통해 합의하에 정당한 결론을 도출하도록’ 두지 않고서 꼭 중재에 들어가시던(이라고 쓰고, 어째 맨날, 감히 언니에게 대든, 혹은 채신머리 없이 동생하고 쌈박질이나 한 내 잘못으로 돌아가던, 이라고 읽는다) 부모님의 마음마저 (아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니.
갈까마귀는 워낙 크기 때문에 창밖에 혹 인기척이라도 느껴져서 내다보면 인기척이 아니라 烏오기척인 경우도 많은데, 이날도 책상에서 곁눈으로 창밖에 뭔가 어른어른하길래, 혹 겨울 초입에나 들렀다 가고 소식이 없던 무스인가 싶어 한 손으로 이미 전화도 되는 사진기를 더듬거리며 내다보았는데, 아 글쎄 여우와 갈까마귀가 날카롭게 대치 중인 것이었다!
여우
는 제 몸의 반은 됨직한 크기의 갈까마귀 한 마리를 주시하며 한 발을 들고 언제라도 튈 듯한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마침 갈까마귀가 지원사격을 요청했는지 한 마리가 더 날아와 앉자 여우는 몸을 돌려 재빨리 달아나버렸고, 갈까마귀는 그 뒤를 짧게 쫓아 날다간 내려앉아서, 날개로 가슴을 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음 직한 풍채로 까악까악 통쾌하게 울부짖었다.
얘들아, 인류는 멸망해도 살아 있을 쥐는 차고도 넘칠텐데 사이좋게 나눠 먹어.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이 약은 녀석들은 인간의 언어를 모른 척하고 나는 여우어나 까마귀 어를 배우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내가 여우를 기다리는 것을 아는 에코가 산책에서 허둥지둥 들어와 오랜만에 여우가 와 있다고 해서 따라 나갔는데, 에코가 분명 여우가 조금 전까지 뭔가 사냥하고 있는 걸 봤다는 곳에는 웬 갈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뭔가를 신나게 쪼아 먹고 있을 뿐이었다.
에잇, 내가 아무리 너희들을 예뻐하긴 하지만 꼭 여우 것을 빼앗아 먹어야 했니.
그리고 그 후로부터는 우리는 여우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역시 우리 터줏대감 까막이들의 텃세에 밀린 건가. 설마 싸우다 다친 건 아니겠지. 애먼 지나가던 갈까마귀 한 마리에게 눈총을 주지만 녀석은 나 따위는 눈길도 주지 않고 끌끌턱턱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걸어가 버렸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