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시간(3)

치유의 방법

by 숨은 연못

그러나, 다행히도, 어느새 다녀간 녀석의 발자국이 여전히 밤새 내린 눈 위에 간간이 남아 있곤 했다.


여우 발자국을 개 발자국과 구별할 수 있는 건, 여우는 오롯이 혼자 다니는 발자욱으로 알 수 있다.

개는 주인의 발자국과 같이 다니다 한 번씩 볼일을 보러 샛길로 빠졌다가도 다시 합류하는 걸 볼 수 있지만, 여우는 눈 내린 날 아침 혼자 곤곤히 홀로 지나간 가벼운 발자국이다. (미국은 주인 없는 반려동물은 여러 가지 안전을 위해 무조건 동물관리소에서 잡아가기 때문에 주인 없는 ‘비 야생’ 동물이 혼자 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 같은 야생동물이라도 늑대하고도 다를 것이다.

늑대는 떼로 ‘사냥’하는 pack animal이기 때문이다. (그냥 우우 몰려’다니는’ 초식 동물은 herd animal이라고 한다)


물론 발자국 모양이 전혀 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과 같이 다니지 않는 것은 같은 무스와 다람쥐와도 여우는 ‘다니는 모양’이 다르다.

무스나 다람쥐는 도무지 사람이 내놓은 길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철조망을 넘고 눈밭을 가로질러 좋아하는 열매가 있는 곳으로 직행하지만, 여우는 말하자면 ‘길’이라는 개념을 아는 눈치로 어떤 형태든 사람들이 마련해놓은 ‘입구’로 들어와 사람의 ‘길’을 따라 걷다가 목표를 향해 갔다 다시 길로 돌아온다.

또한 여우는, 여기저기 일부러 영역표시를 위해 오줌을 지려놓는 개들과 달리 따로 흔적을 남기려 들지도, 무스처럼 여기저기 한 무더기씩 아무 생각 없이 똥을 쏟아놓지도 않는다.


녀석은 늘 은밀하다.


세상에 이런 여우 같은 녀석이 있나.




역사적으로, 전염병이 돌던 시절의 기록은 전쟁이나자연재해 등의 기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상하게도 많이 남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모두가 되도록 빨리 많이 잊어버리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다.

마치 잘난척하다가 대책 없이 당한것에 대한 수치심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혹은, 베트남 전쟁 포함 다른 전쟁에 비해 한국전쟁에 대한 문학이 많이 없는 이유가 한국 전쟁은 '끝'이 나지 않은 전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으니까, 어쩌면 인류와 병균과의 전쟁은 끝이 없는 것이어서 일 수도 있디.


물론 무엇이든 아픈 기억은 빨리 잊는 게 좋지만 배울 것이 있었다면 잘 담아두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이 경고해 온 동물 근원 신종 전염병들도 결국 인간의 자연파괴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이것이 생태계에 많은 사람이 더 책임감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될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치유도 분명 필요하다.

우리 모두 각자 자기 한 몸 불편해서라기보다 많은 부분, 아끼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와 만나지 못하는 것에서, 그러니까 결국 사랑의 마음에서 더 힘들었고, 동시에 그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겨내었던 거라는 소중한 깨달음도 아픈 교훈과 함께 잘 챙기고 담아두어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했는가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우리를 견디게 했던가를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힘든 코로나의 시간을 나중에라도 ‘여우의 시간’으로 기억하기로 한다.


여우는 도대체 미워할 수가 없으니까.


산책로를 걷노라면 가문비나무에서 치카디가 긴꼬리를 쫑긋거리며 치카 지 치카 지지, 종알거리고는 날아가 버린다. 겨우내 아무래도 어딘지 털 결이 조금 까칠해진 것 같은 다람쥐가 나무에서 포르르 내려오다, 깜짝이야, 멈칫 섰다가는 내가 갈 생각을 안 하자 짐짓 성가셔하는 표정으로 도로 조르르 올라가 버린다.

그렇쥐, 그렇게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살아남쥐! 동작 봐라!


나는 빨강모자를 쓴 민방위 훈련 조교라도 되듯 뒷짐을 지고 사방을 매의 눈으로 둘러본다.


아직도 문득문득 나무 밑에서 뭔가를 향해 강종거리다 고개를 돌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눈에 선하고, 눈꼬리 한쪽에 작은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녀석인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아, 이것이 사랑이지 싶다.

아무래도 역시 나는 여우에게 홀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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