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나이 먹는 것도 느긋하게

by 숨은 연못

나는,

혹은 나'도',

어쩌다 좀 한가하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해야 하지 않나, 하고 조바심을 내는 습관이 있다.

늘 종종걸음을 친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일부러 마음먹고 옛날에 일본에서 사 온 온천 입욕제를 풀어넣고 뜨거운 목욕도 하고,

친구가 선물로 보내 준 얼굴 팩도 하면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원래 피부에 좋다는 뭔가를 하면 뾰루지가 나기도 잘해서 피부관리 같은 건 잘하지 않는데, 뭐가 나더라도 다정한 마음은 받아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코로나로 발 묵였다가 드디어 3년 만에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다 보니 타향 만 리에서 시들새들 나만 엄청나게 늙어버려서 나중에 오랜만에 만나면 다들 놀랄까 봐 겁이 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뜨거운 욕탕에 들어앉아 물개처럼 몸을 이리저리 뒤집다가 문득,

"아무튼, 많이, 큰 거, 바라지 않고 돌아보았을 때 그저 열심히 잘 살았다고 생각할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는 마음이 들었더랬다,


카프카는, 일기를 써서 좋은 점은, “점점 나이 들어가는 기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래도 이겨내고 살아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생 가는 길,

그냥 가던 데로 가면 될 것 같은데도,

때로는 비도 오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지만,

심지어 가만히 있는데 공연히 누가 와서 태클을 걸기도 하지만,

많이 바라지 말고,

어디가 되었건, 부디 목적지까지,

이렇게, 절름 절름이라도,

끝까지만 가면 되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부디, 모두들,

그렇게 다들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루틴을 찾으면서 어째 좀 빼꼼하다 했더니 그새 고질병 통증이 돌아와서 잠을 설친 날,

이렇게 몸이 안 좋을 때면,

지겹다는 생각과,

그리고 동시에 놀랍다는 생각이 드는 게 흥미롭다.

어느새,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디 아픈데 없나도 아니라

오늘은 어디가 얼마나 안 좋은가,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이육을 끌고 다닌다는 것이 지루하고,

동시에,

시간이 화살 같으니,

화살은 쏘면 반드시 어딘가에 떨어진다는 것

그렇게 삶은 유한한 것이란 것을 아마도 잊고 살아 놀라는가 한다.


지루해도 떨어지는 날이 오겠지.

그날까지

살아보자.


그런데 (팩을 떼어내며 거울을 흘끗)

지난 2년 코로나로 갇혀있는 동안 표정을 안 지어서 얼굴 근육도 다 죽었나 왜 이리 팍삭 늙었는지 정말 거울 보기 싫구나.

아하!

그냥 안 보면 되겠구나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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