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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 연못 Aug 15. 2023

마우이 화재, 그날 나는 하와이에 있었다.

지상 낙원(?)과 지옥의 갈림길

*자료를 정리해 마무리하는 데로 Hawaii 석 달 살이 경험에 대한 연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연재 구독 미리 부탁드립니다.


2023년 8월 8일 수요일


올여름 에코가 하와이의 한 연구소에 초청을 받아 하와이 오아후 섬에 온 지도 두 달이 넘은 어느 날 아침, 여느 날과 같이 날씨와 교통정보를 보려고 하와이 아침뉴스를 틀었다.

며칠 전부터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으로 강풍 주의보가 발령되었고, 특히 하와이는 근래들어 가뭄이 이어져 바람이 세게 불면 나뭇가지가 비벼져 불이 날지 모르니 brush fire 대비하라는 방송이 이어졌었고, 오늘이 드디어 허리케인이 지나간다고 예고했던 그 수요일이다. 라나이 lanai(하와이어로 발코니를 말한다) 밖을 내다보니 바람이 늘 그렇듯이 불고 있는데, 글쎄 더 부는 것도 같고, 하면서 우리는 커피를 내리고 하와이에서 사랑에 빠져버린 하와이 전통빵 malasada말라사다로 아침을 먹으며 일상을 시작한다.


“가다가 바람 너무 많이 불면 도로 와. ”


나는 연구소로 일하러 가는 에코의 얼굴에 꼼꼼히 선블락을 발라주며 말한다.

농담으로.

온 지 얼마 안 있어 허리케인 영향으로 바람이 불지 모른다고 그 며칠 전부터 주의하라고 하더니 거의 아무 일도 없이 지난 간 일이 있었기에, (하와이는 어떻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 우리는 그렇게 경고를 대충 흘려듣는다.

6.25가 일어난 이유다.

방심.

늑대소년은 그렇게 신용을 잃는다.

그래도 나는 새가슴이라 하루 종일 약간 긴장 상태로 보냈다.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 공연히 바깥에 사이렌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화들짝 빼기도 하고, 문득 실제로 사이렌 소리면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에 산 쪽으로 달린다고 소용이 있을 것인가,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수영도 잘 못하고, 이젠 달리기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바람이 좀 더 부는가 했지 별 다른 것 없이 하루가 지났고, 에코는 늘 그렇듯이 저녁 시간쯤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관광객이 좀 덜한 월요일마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으로 하고 있지만, 바다가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은 매일 바닷가에 잠시라도 나가기로 하고 있었기에 저녁을 먹고 뜨거운 해가 기울기를 기다려 이 날은 와이키키 동쪽 방파제 쪽으로 나갔다. 주로 그저 가까운 비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이나 과일을 먹으며 석양을 보다 들어오지만 이 날은 먼바다 상태를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파고도 높지만 그렇다고 입수금지령도 없어 사람들은 여느 날처럼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물놀이를 즐기고, 파고가 높으니 서핑에 더 좋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높은 파도가 밀어닥치기를 기다려 방파제에서 바다로 힘껏 몸을 던진다.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던 때가 내게도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어쩐지 내 발가락 끝에 자꾸 힘이 간다.


다들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어쩐지 석연찮은 마음을 앉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은 더 거세져서 야쟈수와 라나이 앞의 옥토퍼스 나무들이 창을 거세게 후려치는 소리가 어석어석 철썩철썩했다. 내가 사는 알래스카의 도시는 바람이 많지 않아 오랜만에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5년간 아직 불안한 미래를 안고 살았던, 나무도 잘 자라지 않을 정도의 ‘바람 최강’ 노스다코타의 기억이 되살아나서였을까, 잠을 설치고 말았다.


그리고,


2023년 8월 9일 목요일


‘여느 날과 같이 날씨와 교통정보를 보려고 하와이 아침뉴스를 틀었다.


“잠을 잘 못 잤어.”

“나도 그래. 엄청 시끄럽더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스크린에 펼쳐진 마우이 섬의 소식을 보자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가 쭈뼛 섰다.

마우이는 30년 전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일주일간 하와이에 왔을 때 2박을 했던 곳이고, 이번에 피해가 컸던 아름다운 라하이나 지역의 항구 근처를 걸으며 시푸드를 먹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번 여름 하와이에 와 지내게 된 것을 막 알았을 당시에는, 이번에는 (지난번에 다시 왔을 때는 일정이 짧아서 안 갔다) 한번 다시 가보자 했다가, 7월에 동부에 사는 아이가 열흘 합류 했을 때 오아후에서만도 바쁜 일정을 보내고 보니, 오아후에서만 석 달을 지내도 가 볼 곳을 다 못 가는데 싶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서 한 번씩 그래도 갔다 올까 싶어서 예약 사이트를 기웃거리던 참이다.

문득 예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카나팔리 비치 호텔 상황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불타지는 않은 모양인데 그래도 영향이 있어서 숙박객은 다 탈출시키고 당분간 문을 닫았다고 나온다.


망연자실 앉아서 같은 뉴스를 자꾸 돌려보다가 창 밖을 보니 호놀룰루는 바람도 이미 잦아들었다.

오아후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다들 조심하라고, 잘 지켜보고 작은 불도 빨리 신고하고 끄라고 한다.

그렇게 불이 날지 모른다고 경고했는데 정말 이렇게 나 버리다니.믿기지가 않는다.

사람들은 간절히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은 더욱 믿기 힘들다.


둘이 티비 앞에 나란히 앉아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에코는 그래도 할 일이 있으니까 연구소로 가고, 해외에서 하와이로 들어온 사람들은 기록에 남아도 섬 간 이동은 기록에 안 남는다는 말이 한국 뉴스에 들리기에 한국의 가족들에게 나의 안부를 알린다.

나는 원래 뭐든 사전에 미리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서 ( 작년 이맘 때쯤 집 사서 이사할 때도 이사까지 다 하고 나서 알릴 때까지 아무에게도 집 보러 다닌다는 말도 하지 않았었다) 혹시 마우이에 갔어도 다녀와서 나중에 얘기했을 것이기에 가족들은 내가 오아후에 있는 줄만 알고 걱정을 하지 않았겠지만, 심지어 미국 내에서 하와이에 들어온 사람들의 비행기 승객 명단도 추적하더라도 거의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지도 않아서 미리 알리자 싶었다. 폰을 가지고 탈출하지 않았으면 혹시 마우이에서 살아남았더라도 요즘 전화번호를 외우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연락할 방법도 없었겠다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다. 한인이나 어느 나라 사람이나 생명을 잃는 건 다 같으니 한인의 피해가 없어 다행이라는 건 멍청한 소리다.

아버지는 마침 궁금하던 차에 연락 잘 주었다고 한국도 태풍 카눈이 와서 복지관이 닫았다 하시고, 오후가 되자 여기 오기 전 4년만에 한국 가 만나서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친구들도 하나씩 안부를 물어온다.



2023년 8월 10일 금요일


아침 뉴스의 사망자 수는 80명으로 늘었다.


6월부터 와이이키의 하야트 리조트에서는 금요일 저녁마다 불꽃놀이를 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관광객들은 하나씩 모여들어 비치를 가득 메웠고, 뒤늦게 와서 끼어 서는 사람들과, 그 바람에 앞을 가리는 사람들에게 항의를 하는 사람들의 고성이 오가는 것까지 여느 금요일과 다름이 없었다.

폭죽이 터지면서 하늘로 떠오르는 탄성과 환호하며 즐겁게 치는 박수도 여전했다.


2023년 8월 11일 토요일


8월에 들어서면 와이키키의 Kalākaua ave는 토요일마다 차를 막고 거리 축제를 한다. 즉석 바비큐와 그 자리에서 커다란 낫으로 잘라주는 코코넛과 바로바로 착즙 해주는 사탕수수 주스며, 여러 가지 기념품을 사는 인파가 초저녁부터 들끓는다.


사람들은 하와이를 지상낙원이라고 한다.

왜?

낙원의 정의가 뭐지? 사시사철 대략 여름에, 아무리 열심히 선블락을 발라도 목덜미같이 살짝 놓친 부분은 여지없이 데어버릴 정도로 자외전 지수가 높아서?

한번 나갔다 들어오면 산발이 되도록 늘 거센 바람이 불고, 고립된 지역아다보니 미국에서 단연 1위의 비싼 물가와, 물류는 느리고, 치솟는 부동산가격으로 아파트는 에어비엔비 등 세 수입을 올리려고 사들이는 사람들이 많아 항상 턱없이 수가 부족해 렌트가격이 엄청나고, 쇼핑 몰 근처에는 냄새가 나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홈레스가 즐비한 것도 낙원의 조건에 부합하나?


와이키키 주변에서는 아담과 이브 모냥 많이들 벗고 다닌다는 점에서라면 동의하지만.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의 벗은 모습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껴 낙원에서 쫓겨났다.

하와이 주민은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하는 와이키키 비치는 대략 (공교롭게도) 30년 전 처음 왔을 때 묵은 Park Shaw와 지난번 왔을 때 묵은 Hyatt resort 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와이키키 비치에 가장 가까운 한 블락 더 들어간 Kalākaua ave와 kuhio 까지는 호놀룰루의 화장한 얼굴이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낮에는 태양을 피해 얼핏 기웃거리기도 눈치 보이는 화려한 명품 샵이 즐비한 거리를 잘 차려입은 (혹은 잘 벗은) 사람들이 거닐며 쇼핑을 하고, 해가 조금 기울면 사람들은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거리를 수영복 차림으로 호텔에서 비치로 향하며, 밤에는 타오르는 멋진 가스 휏불이 고급 레스토랑 주변의 가로등을 대신한다.


하지만 맨발로 다녀도 되도록 깨끗한 거리는 사실 아침마다 물청소를 한 것이고, 비치도 이른 아침마다 중장비로 모래를 걸러 깨끗하게 정리한 것이다. 와이키키 비티 바로 앞에는 경찰서가 잇고 항상 경찰차 여러 대가  눈에 띄게 주차되어 있으며 사이렌 소리가 빈번하다. 그리고, 이 길 들이 사진 찍기에 왼벽 한 바로 그 ‘야자나무 풍경’을 선사할 수 있는 비결은 허공에 신호등은 있어도 전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야자나무라는 palm tree는 coconut tree와는 달라서 야자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야자는 하나에 최고 20불까지 주고 사 먹어야 한다)

그러나 한 블록만 더 마우카(산 쪽)로 들어가면 물론 바로 정상적으로(?) 전선이 드러나 있다. (바닷 쪽은 ‘마카이’라고 한다. 하와이섬들은 길이 똑바로 나 있지 않아서 길 찾는데 이런 방향감각이 도움이 된다)

처음 와서 짐을 풀고 비치에 나가보니 웬 사발면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보여서 오 한류가 여기까지 왔구나, (순진하게) 생각했었으나, 아무리 나름 여유 있어 하와이에서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하와이, 그 중에서도 더 비싼 와이키키 지역에서는 매일같이 ’근사한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와이키키에서는 푸드 트럭에서 파는 음식도 20불 가까이한다.

그러나 돈 워리! 와이키키를 대략 점령하고 있는 하와이의 갑(?) ABC store에는 한/일 사발면 (뜨거운 물 제공!!)과 항상 저렴한 도시락을 팔고 있다.

고급  비싼 레스토랑과 값싼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사람, 명품점과 살림살이(?)를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다니며 아무데서나 잠을 자는 홈레스가 공존하는 곳.

와이키키, 호놀룰루, 하와이.

천국과 지옥간의 거리는 뜻밖에 멀지 않다.

 



Banyan tree 바냔 나무는 석가가 해탈을 했다는 바로 그 보리수나무다.

가지에서 뿌리가 뻗어 나와 끝없이 벌어지며 성장할 수 있어서 크기가 엄청나고, 그 밑에 들어서면 마치 새들의 낙원(?)에라도 온 듯 새소리가 항상 소란스러운 관광객들의 소음을 가릴 정도로 요란하다. 호놀룰루에서도 종종 보이는 이 바냔나무가 마우이에도 150년 된 18미터를 넘는 것이 있는데, 이번에 불에 심하게 그을었지만 다행히 살아남은 것 같다고 한다.

마우이는 아직도 복구가 되려면 멀었지만 기적처럼 모두 잘 피했다는 뉴스가 들리면 좋겠고, 부디 이 나무처럼 마우이도 새로 잘 살아나주기를 바란다.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파도를 타고 잘 놀다가도 파도가 옥색 벽으로 우뚝 서버리면 지금 이것이 부서지면서 나를 집어삼킬 것인지 나를 둥실 태우고 넘어가게 해 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아차 하는 순간에 하얀 포말과 함께 꼭대기가 꺾이는 걸 본 순간에는 도망가도 이미 늦었고 짠물을 흠뻑 뒤집어쓰는 수밖에 없다.


살면서 그렇게 뻔히 들이닥치는 위기를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적도 있었고, 포기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릴 때 기가 막히게 훌쩍 넘어지는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많았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당장 또 다음 파도가 어디서 언제쯤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뭐든 혹 잘된 건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많이 드는 요즘, 희망이라는 이름 하에 어쭙잖게 ‘미리 미래에서 오늘을 돌아보며 말하고 싶은 것을 오늘 말하기’는 안 하기로 한다.


바람이 아주 거세지면 파도는 더 이상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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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를 정리해 마무리하는 데로 Hawaii 석 달 살이 경험에 대한 연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연재 구독 미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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