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석 달 살이 - 프롤로그
"음? 이게 되네?"
지난겨울,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디저트로 쿠키 하나씩 우물거리며 각자 이메일을 체크하는 중이었는데, 문득 에코의 저 뭔가 질문을 요하는 말투는? 그렇다면 할 수없이,
"왜? 뭐? 왜?"
"아니, 하와이에 있는 연구소에 가서 몇 달 연구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안 될 줄 알고 어플라이 한 번 해본 건데 초청 레터가 왔네?"
"'몇 달'이라니, 몇 달?
"나는 석 달이라고 신청해 놨는데"
"언제"
"여름 방학에"
"여름에 우리 한국 가잖아"
"한국 갔다 와서 가야지"
"석 달이라면서 그게 돼? 그리고, 겨울에 간다 그러지 여름에 알래스카에서 하와이를 왜 가. 겨울에 간다 그러면 안돼?"
"겨울로 하면 한 달 밖에 못 가는데 그러면 내 제안서에 쓴 연구를 다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러지"
"오래간만에 한국 가는데 왜 하필 올해...(투덜)"
"가기 싫어? 나는 올해 우리 결혼 30주년이라 세컨드 허니문으로 다시 하와이에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신청한 건데 가기 싫으면 안 간다고 해?..(투덜)"
"돈 줘?"
"주지"
"얼마나?(반색)"
"한 달에 오천불"
"콜!"
대략 이렇게, 2023년은 1/3을 한국 포함 집을 떠나 떠돌면서 살게 된 것이다.
지난번 에코의 안식년으로 집을 10개월간 떠나 있었던 것이 2016년-2017년이니 웃고 즐기는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알래스카에 오기 전에는 매년 한 번씩은 차를 몰고 미국 방방곡곡을 달렸고, 그 후로는(알래스카는 본토와 '붙어는' 있지만 캐나다로 국경이 떨어져 있는 일종의 반도라서 어디를 가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 매년 한 두 번은 비행기를 타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는 것 같지만 나는 그저 집이 제일 좋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떠돌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닉 하지만, 어떻든 떠돌이가 잘하는 일은 또 떠도는 일이긴 하다.
한국은 코로나 때문에 겨우 4년 만에 가는 거라 이번에는 조금 오래 있고 싶었는데 허둥지둥 돌아와 다시 짐을 싸가지고 하와이로 가게 되어 좀 골치 아프게 되었지만, 100점짜리 시험지를 펄럭이며 들어왔는데 엄마가 시큰둥해서 실망한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에코에게 더 이상 토를 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초청을 받았다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 잘했어, 잘했어.
이 날부터 에코는 학장에게 연구소에 초청받은 것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수업을 한 주 반 미리 째도(!)된다는 허락을 받고, 수업일정을 조금 앞당겨 끝내도록 짜고 구체적인 연구 기획서를 짜기 시작했고, 나는 이미 진행 중이던 한국숙소에 더해 하와이 숙소를 검색하며, 에코야 다 제공받지만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내 항공편 등 엑스트라 경비 부분의 예산을 상정하고, 현지 정보 감안 준비할 것들의 목록으로 6월에 떠나기 반년 전 알래스카의 한겨울부터 하와이 꿈으로 잠자리를 설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너 말고
내가 가자, 하와이.
하와이어로 사랑과 우정을 의미하는 Aloha '알로하'는, 한국어의 안녕, 처럼 만났을 때와 헤어질 때의 인사에 모두 쓸 수 있다. 안부를 전할 때도, Say aloha to Jane! 하는 식으로도 쓴다.
듀오링고에서 하와이어를 시작해 보긴 했지만 내가 '쓸 줄 아는' 또 다른 하와이어는 고맙다는 '마할로' Mahalo 뿐이다.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하긴 하다.
안녕, 고마워, 이 말만 잘해도 중간은 가는 인간으로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알로하, 하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