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은 연못 Sep 15. 2023

하와이에 놀러 가는 것과 살러 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

1) 숙소 잡기, 그리고 '잠시 머무른다'는 것과 '산다'는 것의 의미

하와이는 크게 하와이, 마우이, 오아후, 카와이, 몰로카, 라나, 니하우, 카오올라웨 등, 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사람이 사는 것은 7개 섬이지만, 보통 하와이를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바로 떠 올리는 것은 호놀룰루 섬이고, 호놀룰루 중에서도 섬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와이키키이다.

우리가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왔을 때는 마우이 섬에서도 2박을 했는데, 다른 섬들은 시끌벅적한 호놀룰루와 달리 조용하다고 하지만 대개 일단 호놀룰루를 들어와서 다른 섬들로 Hopping '뛰는' 것에 일반적이다.


다른 도시들은 보통 공항 근처에도 저렴한 숙소가 많이 있다. 다른 도시를 가기 위해 경유하는 사람들도 많고, 아니면 볼 일만 보고 후딱 돌아가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놀룰루는 대개의 호텔은 와이키키 근처에 있다. 워낙 섬의 크기 자체가 제주도보다 작아서 공항이나 와이키키나 거기가 거기 기도 하지만 하와이에 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오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호놀룰루는 the 관광지다. 


그러면 일단 관광으로 오는 데 있어서의 숙소선택은 간단하다. 와이키키 근처에서 비치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오션뷰인가 아닌가에 따라 수많은 호텔 중에서 예산에 맞춰 고르면 된다. 

하와이에는 하야트, 힐튼 등이 각기 천차만별 급(?)으로 여러 개가 있기 때문에 대문 이름(?)만으로는 비교하기 힘들지만 대충 리조트냐 호텔이냐 로 나뉘는데, 대개의 빌리지/리조트는 그 호텔 뒷마당으로 통하는 비치와 풀이 있기도 하고 비치 가까이 럭셔리 레스토랑이나 바가 있는 등 '그들만의 리그'분위기로 럭셔리한 분위기 안에서 생활할 수가 있지만, 대신 그만큼 모든 것에서 고립된 분위기라서 호텔 밖으로 나와 다른 비치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밥집으로 가는데도 번거롭다. 


한 달 여 정도는 아고ㄷ에서 레지던스 호텔로 숙박이 가능하지만 석 달은 사정이 좀 달라서 나는 이번에 에어비엔ㅂ를 처음 사용해 보았는데, 에어비엔ㅂ도 수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나, 하와이에서의 수입(월 5천 불)만으로 생활비까지 대충 나오도록 예산을 맞추어, 일단 무조건 세탁시설과 부엌에 에어컨이 있고 연구소까지 교통이 편리한, 편의 중심의 숙소를 골랐다. 

여전히 본교에서 에코의 수입이 이어지고 연구비가 그럭저럭 넉넉한 편이라고 해도 혹시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으면 사계절 중 하필 알래스카가 가장 아름다운 여름에 졸지에 하와이를 오게 된 신세(?)는 보상받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꿩 먹고 알 먹고 뼈로 이까지 쑤시는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산이, 혹은 환상이 이때까지는 내게 아직 남아 있었다.

(최종적으로 살면서 배우고 느낀 것은 16화 준비물 체크리스트에 정리해 두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에 한 달 이상 숙박을 해도 호텔만 사용했던 우리는 아마도 조금 버릇이 나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룸서비스도 안 되는 조그만 원룸의 사이즈는 그렇다 치고, 주인과 연락이 잘 된다는 리뷰를 보고 골랐는데 계약을 하기 전까지는 바로바로 답을 주던 사람들이, 출발 며칠 전의 몇 가지 확인 질문부터 원래 48시간 전에 주게 되어 있는 출입문 비번과 와이파이 코드를 출발 직전까지도 주지 않아 달라는 메시지에도 답을 안 주어 당황하게 했다. (본사에서 쪼아서 해결해 줌). 

그 밖에도 살다 보니 전등이 고장 난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겼고, 그때마다 바라는 방식은 아니었어도 대충 해결은 해주었지만, 아무래도 '남의 집'이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그냥 참고 견뎌야 하는 것도 많이 있어서 나중에는 그냥 럭셔리 캠핑이라 생각하고 살기로 했었다. 


오늘의 교훈: 

장기 숙박 에어비엔비는 뭐든 질문이나 확인할 것이 있으면 '돈내기 전'에 다 하자. 에어비엔비는 한 달 전부터 환불 불가기 때문에 한 달 이상 장기 숙박은 예약하는 순간 한 달 치를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니까. 


우리가 30년 전 처음 왔던 호텔(오션뷰)은 와이키키의 동쪽 끝에 있었고, 두 번째 왔던 리조트(프라이빗 비치)는 서쪽 끝에 있었고, 이번에 묵은 에어비엔비는 그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는 것은 같지만 그래봐야 모두 와이키키 비치에서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은 같다. 

마노아에 있는 하와이 주립대 안의 연구소와 가까운 곳을 잡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건데,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와이키키보다는 알라모아나 쇼핑몰과 주변의 슈퍼마켓이 가까운 약간 북쪽으로 숙소를 정했을 것이다. 


보통 '한 달 살이'한다고들 하는데, 사실 한 달 정도는 그냥 여전히 들러가는 관광 쪽에 가깝다는 소견이다. 며칠 머무르는 사람들처럼 맛집만 찾아다니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지역 특산품이나 맛보고, 그야말로 캠핑에 필요한 정도만 들고 다니면 뭐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얼마든지 '간이'로 살 수가 있다. 

하지만 석 달(일 년의 1/4이다)이라고 하면 쌀도 큰 자루로 사야 하고 가까이 마켓이 없으면 배낭을 메고 다소 저렴한 곳으로 나가 각종 장과 기본 조미료며 당장 먹을 것이 아닌 것으로 냉장고를 채워둬야 한다. 

게다가 자리 잡힌 중장년 살림에는 쌀과 휴지 같은 '늘 있는' 생필품은 봐서 떨어져 가면 사는 거지 한 번 사면 얼마나 가는지 생각하면서 살지 않지 않으니까 생필품을 얼마나 사야 하는 지도 잘 모른다. 


하와이에 사는 분들이 우스개로 말하는 하와이의 장점 중의 하나가 하와이에 왔다가 돌아가면 누구나 자기 동네의 물가에 만족하게 되는 걸 정도로 가히 '살인적인' 하와이의 물가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생활비에 비하면 숙박비는 수월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알래스카도 물가가 비싸지만 적어도 알래스카는 세금이 붙지 않고 부동산이 별로 비싸지 않은데 하와이는 부동산까지 천정부지라서 검색해 보니 미국에서 단연 1위를 자랑하는 물가다. 


석 달은 좀 길었다.(먼산)

미국 물가 중에서는 그래도 빠지지 않는 순위 10위 알래스카인이 하는 말이니 귀담아듣는 것이 좋다. 





호놀룰루는 미국의 도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버튼을 눌러야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는' 건널목이 대다수다. 차가 잘 막혀서 사람이 건너지 않는 지역은 한 번이라도 신호를 건너뛰면 좋기 때문에 설치하기도 하고, 사람이 워낙 안 다니는 곳은 거의 쓰이지 않는 건널목을 그래도 만들어는 두어 혹시라도 건너는 사람들을 위해 쓰임이 있어 좋은 시스템이다. (호놀룰루는 전자다. 차가 수시로 막힌다. 길을 더 내면 좋은데 고가도로가 관광지에 미관상 안 좋다고 해서 허가가 잘 안 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길을 건너는 모양을 보면 관광객인지 로컬인지 그 단계를 알 수 있는 게 재미있다. 


1. 먼저 길 건너기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도 모르고 마냥 서서 기다리다가 신호가 여러 번 바뀌어도 파란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리둥절하고 있으면 왕초보.


2.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노라면 어떤 건널목은 어째선지 사방 건널목이 다 파란불이 들어오기도 하고(일단 건널 사람 다 건너고 보자는 심산인가 보다), 직각 차도 신호가 빨강으로 바뀌고 나서도 한동안 차가 좌회전 신호를 받고 지나가고 나서야 이쪽 건널목 신호가 켜지는 것을 못 기다리고 건너가기 시작하면 초보 (우리도 처음에는 기다리다 차가 없으면 그냥 건너기도 했는데, 굳이 관광객 잡아 분위기 깰까 싶어서 와이키키 지역은 실제로 잘 단속을 하지 않아 보이지만 이 지역을 벗어나면 Jay walking 무단횡단을 단속해서 벌금을 물리니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주민에게 듣고 나서는 와이키키에서도 절대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다)


3. 신호는 바뀌고야 만다는 진실을 믿고 무슨 일이 있어도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지역을 제대로 아는 사람.


미 동부의 노스 캐롤라이나에서는 거기서 수십 년을 살다 죽어도 거기서 3대 이상이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는 딱지를 못 뗀다고 한다. 얼핏 좀 불공평하고 배타적인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어디 가나 현지에서 그 역사를 다 겪어 알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거나 침입자로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것도 같다. 그래서 나도 미국에 아무리 합법적인 신분을 가지고 내 반평생 이상을 살고 있지만 현지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에 따른 예를 갖추려고 하고, 어디 가나 선입견을 가지지 않음은 물론 최대한 열린 자세로 녹아들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얼핏 모순적인 것 같지만, 하와이를 가장 제대로 보고 배우는 법은 최대한 다녀간 족적을 남기지 않고 어우러지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하와이에서 길을 건너는 법은, 하와이로 건너가는 법과 비슷하다. 



 

이전 01화 알래스카인이 여름에 하와이에 간 까닭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