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을 감았다. 좌석벨트 사인의 붉은 불빛이 번쩍였다. 기체가 흔들리며 내 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좌석의 패브릭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다가 땀이 나는 두 손을 맞잡았다. 질끈 눈이 감기며 숨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깊은 숨은 점차 큰 소리를 냈다.
온몸에서 차가운 땀이 배어 나왔고, 무색의 납덩어리가 폐를 짓누르듯 무게를 더해왔다. 산소는 점차 희박해졌다. 나는 숨을 쉬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공을 더듬었다. 어쩌면 나는 곧 이 비행기의 차가운 금속 벽 안에 봉인되어 버릴지 모른다. 비행기는 영원히 허공에 떠 있어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며, 나는 이 공간에서 서서히 말라 질식할 운명이라 느꼈다. 경수는, 경수는 끝내 엄마를 만나지 못하겠지. 눈앞이 아득하게 흐려져 갔다.
“지니, 지니!!”
누가 내 어깨를 세게 흔들어대며 깨우고 있었다. 승무원들이 달려와 물었다.
“손님. 손님. 일어나세요.”
“약이… 있어요. 가방에…”
승무원은 내 가방에서 급히 약봉지를 꺼냈다. 약을 먹었지만, 과호흡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앞 좌석을 양손으로 잡고 기댄 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반쯤 떠진 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주변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안개처럼 희미한 회색빛 창문 가림막이 스르르 올라가고, 누군가 부드러운 손으로 등을 다독였다. 경수였다.
“공황이 있어요. Panic attack”
그는 대답도 없이 천천히 내 등을 쓸어내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내 온몸은 차게 젖은 옷으로 덮여 있었고, 호흡은 자리를 되찾았다. 그렇게 비행은 길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눈을 떴을 때,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무뎌진 온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 나는 가까스로 머리를 들고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두 발로 바닥을 딛고 힘겹게 걸어 나갔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수화물 찾는 곳으로 내려갔다. 벽에 기대어 내 캐리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컨베이어 벨트 위로 검은색 캐리어가 나왔다. 손을 뻗으려던 찰나, 경수가 다가와 캐리어를 들어 내렸다. 자기 것이라고 말하던 그 캐리어는 손잡이의 낡은 테이프가 감긴 것까지 내 것과 똑같았다.
멋쩍게 발을 옮기려는데 그가 길을 막았다.
“집에 같이 가요. 데려다 줄게요. “
“멀어요. 서울 외곽이라. “
“위험해요. 지금 혼자 가는 건”
공항 밖으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다. 밤은 차가웠다. 가로등 불빛 아래 어제인지 그제인지 내렸던 눈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내렸다 녹기를 반복한 눈은 다시 얼어붙었다. 얼음장으로 변한 줄 알았던 눈이 깨지며 질퍽한 진창을 만들어냈고 그 위를 걷던 나와 경수의 신발은 반쯤 빠졌다. 우리는 젖은 신발을 들어 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버스는 한 시간여를 달렸다. 우리는 말없이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찬 공기가 뺨을 스쳤고, 그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새벽 한 시가 되어가는 때, 집 앞이었다.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잘 가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여기가 집인가요?”
“네. 조금만 걸어서 가면…”
“그럼, 여기서 인사하죠. “
“어디로 가세요? “
“잘 모르겠어요. 이 근처 호텔을 찾아야 하는데…”
경수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반으로 접힌 파란 쪽지를 내밀었다. 경기도 시흥시 미산리 22-18.
“여기는 너무 멀어서 지금은 갈 수 없어요. 버스도 없을 거예요. “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작은 입김이 공기 속에서 하얗게 흩어졌다. 아직 그의 손과 어깨의 체취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그를 돌려보내기가 아쉬웠다. 문득 편지지 위에 삐뚤빼뚤 글씨를 눌러 담던 손이 떠올랐다. 그런 손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당장 혼자 들어가 빈집에 불을 켜기가 무서웠다. 불이 켜지면서 내는 ‘딱’ 소리는 다시 공황을 불러올지 모른다. 공황의 두근거림은 사랑의 그것과 흡사했다. 경수는 바닥을 본 채 서 있었다. 오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무작정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세요. “
나는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낯선 남자를 집으로 들였다. 도저히 내칠 수 없던 그의 검은 눈동자와, 등을 쓸어내리던 따뜻한 손도 함께.
다행히 일주일을 비웠던 집은 무사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누군가의 손이 닿을 쓰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침묵의 공간에 불을 켜고 보일러 온도를 높였다. 경수는 여전히 현관에 서 있었다. 집안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신발을 벗었다.
“거실에서 자도 괜찮죠? 금세 따뜻해질 거예요. “
“고마워요. “
젖은 바퀴 자국을 남긴 캐리어를 거실 한쪽에 밀어 두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주저앉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땀에 젖었다 마른 옷을 벗어야 했고, 샤워를 해야 했으며, 무엇보다 거실에 있는 그와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다시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고였다. 아까부터 입술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건, 단지 그가 한국말에 서툴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수를 밖에 두고 나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머리칼을 스쳤다. 온몸을 휘감는 열기 속에서 마비되었던 심장과 감각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 꿈틀거렸다. 라벤더 향의 바디워시를 손에 덜었다. 밀려드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얼음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욕실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경수에게 말을 건넸다.
“샤워하세요. 수건은 여기…”
수건을 받아 쥔 경수는 일어나 재빨리 샤워실로 들어갔다. 문 너머로 들리는 물이 떨어지며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가 안도감을 주었다. 어쩌면, 낯선 그가 내 공간에 있다는 사실은 공허가 남긴 공포로부터의 잠시의 해방 같았다. 그가 샤워하는 동안 나는 랩톱을 열어 밀린 이메일을 확인했다. 문득, 경수가 건넸던 주소가 떠올랐다.
경기도 시흥시 미산리. 연두색의 네모난 검색창은 나에게 아무 답도 주지 않았다. 미산리는 주소로 검색되지 않았고, 이름이 바뀐 듯한 미산동만 나타났다. 그 사이, 경수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물기에 젖은 머리칼이 반짝였다. 급히 눈을 돌리고 말을 걸었다.
“주소를 찾아봤는데… 찾기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괜찮아요.”
머리칼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의 티셔츠에 닿았다. 실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의 허연 웃음은 왜였을까.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괜찮다뇨?”
“가보면 되니까요.”
“혹시 찾지 못하면 어떡하죠?”
“아마… 찾을 거예요.”
“엄마를요?”
그는 대답 대신 웃었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집안의 빈 구석구석을 채웠다.
“앉아도 되나요?”
경수는 구석의 간이 의자를 들고 내가 앉은 책상으로 다가왔다. 책상 위에는 재택근무를 위해 세팅해 둔 랩톱과 모니터, 펜을 꽂아둔 작은 약병, 신경안정제 봉투들이 있었다. 내 옆으로 앉은 그에게서 바디워시의 라벤더 향이 났다. 내가 조금 전 사용한, 오래전부터 써온 그 향이었다. 누구의 향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지니는 괜찮아요? 이제?”
우리는 지난 스물네 시간 동안 서로에게 괜찮냐는 질문을 몇 번이나 했던가. 그 질문은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찢어진 약 봉투처럼 나는 여전히 부서져 있었고, 우리는 서로가 괜찮기를 바라고 있었다. 침묵은 내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옅게 웃었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한참을 흐른 정적 속에 마주친 눈 사이로 눈물이 맺혔다. 누가 먼저 우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