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한 번의 지하철과 두 번의 버스를 환승해 경수의 쪽지에 적힌 주소로 향했다. 지하철과 버스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경수는 말이 없었지만,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그의 옆얼굴을 보고 있다 보니 내 손은 신경안정제 봉투에서 멀어졌다.
“여기인 것 같아요.”
버스가 멈춘 곳은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고 차들이 즐비한 사거리였다. 관할구역 재편성으로 두 번이나 바뀐 주소를 찾느라 동사무소 직원과 여러 번 통화를 거친 뒤에야 도착한 곳이었다.
광활한 사거리의 모서리들에서, 수많은 사람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저마다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걷거나 뛰는 사람들, 잠시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 곧 부딪칠 듯한 아슬아슬함에 나는 손톱의 거스러미를 만지작거렸다.
경수가 찾는 엄마의 흔적은, 눈앞의 혼란스러움이 다였다. 그는 어디서 엄마를 잃어버렸을까. 만지작거리던 손을 내리고, 경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꼬리는 아래를 향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니, 안도나 해방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동사무소에 다시 가볼까 봐요. “
“아니. 저기로 가요.”
우리는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편 상가 앞으로 옮겼다. 경수의 웃음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는 말없이 북쪽 길 맞은편에 섰다. 그리고 다시 신호등 앞. 우리는 남쪽으로, 서쪽으로, 마지막엔 동쪽으로 건넜다. 네 번의 길을 건너 처음 섰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경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I was never lost, the place was.”
나란히 선 나와 경수의 발을 보며, 그의 말을 곱씹었다. 잃어버렸던 건, 내가 서려던 자리였다는 걸.
“밥 먹으러 갈래요?”
경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걸었다. 지나온 길목엔 식당이 많았지만, 경수와 함께 걷는 이 길에서 수년 만에 느끼는 허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비어있는 앞자리를 마주하는 일은 음식을 빠르게 식게 만들곤 했다. 아빠가 식탁에서 사라진 뒤, 엄마와 나 사이의 식사는 생존을 위한 기계적인 노동이었다. 어느샌가 엄마는 밥알 한 알의 무게조차 견디지 못했다.
“그래도 먹어야지.”
내 말에 엄마는 대답 대신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 침묵의 이유를 알았으므로 엄마를 책망하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아빠의 투병이 끝날 날만을 기다렸다. 그 끝이 희망일지 절망일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아빠의 얼굴을 확인한 뒤 엄마는 조용히 사라졌다. 임종 한 달 전, 이미 정리한 집의 잔금마저 챙겨서. 엄마는 돌아올 길을 지운 게 아니라 내가 서 있던 바닥까지 통째로 들어내 갔다.
나는 아빠의 암 덩어리와 엄마가 남긴 빈자리를 동시에 짊어졌다. 그 무게는 내 삶의 빈자리를 집어삼킬 만큼 비대해졌고, 가방 속엔 숨 쉴 틈 대신 약 봉투만 쌓여갔다. 뜨거운 온기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닫아걸었던 몸의 사투에도 작은 틈이 생기자, 오래 묵혀둔 갈증이 천천히 차올랐다.
“들어가요.”
순두부라고 크게 쓰인 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경수는 아리송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순두부, 알아요?”
“... 따뜻하고 부드러운 건가요?”
주문한 맑은 순두부찌개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콧속으로 밀려드는 미지근한 공기가 굳어있던 폐를 간질였다. 숟가락을 타고 넘어가는 온기는 허기보다 먼저 목구멍에 닿았다. 맞은편에서 말없이 찌개를 떠먹는 경수의 숟가락질을 따라 내 안의 굳어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풀어졌다. 어느덧 눈앞엔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은 텅 빈 그릇만 놓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퇴근길 인파로 붐볐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누군가의 팔이 내 팔에, 구두 굽이 내 발등에 스쳤다. 참을 수 없는 숨이 다시 달려 나왔다. 헉. 헉. 경수가 손잡이를 놓고 뒤에서 두 팔로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뜨거운 온기가 조여 오는 숨을 막아주었다. 창밖의 뿌연 공기가 투명하게 변하는 것을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경수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한편에 놓인 낡은 캐리어는 그가 곧 떠날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했다.
“미국으로 언제 돌아가나요? “
내 물음에 경수는 배낭에서 비행기 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비행기 표 귀퉁이에 흐릿하게 보이는 날짜는 5일 뒤 수요일이었다. 주말이 지나면 나는 일로 복귀해야만 했다. 평소처럼 재택근무를 해야 하기에 경수가 언제까지 이 집에 있을지 알아야만 했다. 그의 캐리어에 달린 바퀴가 바닥을 구르는 상상을 하다가, 이내 그 바퀴가 멈추기를 바랐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기 전까지, 여기 있어도 돼.”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마트에 가고 싶다는 그의 말에 다시 밖으로 나섰다. 경수는 카트 가득 식재료를 담았고, 양손 무겁게 장바구니를 든 채 빙판길을 조심히 걸어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경수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대낮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겨울바람이 얼굴에 닿았다가 방 안의 온기에 이내 스며들었다.
“지니, 한국은 늘 이렇게 추워요?”
“아니. 곧 봄이 올 거예요. 쌓인 눈이 다 녹고 겨울이 지나면…”
경수가 요리를 시작했다. 프라이팬에서 올라오는 향기가 집 안 가득 퍼졌다. 소파에 앉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너무 자연스러운 손놀림이었다. 경수의 요리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그가 만든 양파 수프는 아마 죽기 전까지 기억할 것이다. 짭조름한 맛과 은은한 단맛, 그 사이의 미묘한 신맛이 혀를 휘감아 마법처럼 나는 입을 열어야만 했다. 음식이 남으면 그는 더 먹으라 손짓하며 웃었다. 그의 웃음은 다시 숟가락을 들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거실로 옮겨 TV를 켰다. TV에서는 고목의 단면을 클로즈업한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왔다. 톱날이 지나간 자리에 드러난 나무의 중심부는, 겉을 둘러싼 생기 있는 연한 갈색과는 확연히 달랐다. 짙고 검붉은, 피가 굳어진 화석과 같은.
“이 부분을 심재라고 합니다. 세포 활동이 멈춘 죽은 부분이죠. 하지만 나무가 수백 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건 이 심재 덕분입니다. 살아있는 세포들은 너무 연약해서 스스로를 지탱할 힘이 없거든요.”
경수는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면, 나도 따라 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