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작과 끝
7월 19일, 수영의 생일이 어느덧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는 늘 가장 슬픈 날로 남아 있던 생일을,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밤마다 같은 생각을 되뇌며 고민했다. 좋아해 본 경험도, 연애도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서툴기만 했다. 혹여나 그런 내 미숙함이 수영을 실망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봐, 그녀를 대할 때마다 늘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답답한 마음에 홍콩에 있는 현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
“그럼, 너는?”
“나 뭐 똑같지. 한번 안 들어와?”
“가, 안 그래도 다음 달에 본사 갈 일이 있어서.”
“그래. 나 뭐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여자들은 뭘 좋아해? 선물이나… 이벤트나 뭐 그런 거 있잖아…”
“수영이 뭐 해주게?” 눈치 빠른 현승이 선수를 쳤다.
“아, 곧 수영이 생일이라.”
“둘이 사귀는 거야 이제?”
“아니야, 아직…”
“아직? 뭐 있긴 있나 보네…” 다 안다는 듯 웃는 현승이었다.
“음, 수영이는 고전 좋아하는 거 보니까… 뮤지컬이나 연극도 좋아할 것 같은데? 공연 보고 와인바 어때?”
“그런 거는 나도 알지…”
“그래? 아니면 야경 좋은 레스토랑이라도 가. 여름이니까 한강 쪽 좋겠네.”
“알겠어, 생각해 볼게. 근데 선물은?”
“선물? 수영이 취향이 어때? 향수나 목걸이 같은 건 괜찮지 않아? 네가 자주 만나니까 알 거 아냐. 좋아하는 액세서리 스타일이나, 향수 냄새 같은 거.”
“취향…?”
수영을 떠올렸다. 나는 언제나 그녀의 까만 속눈썹과 동그란 눈동자에만 눈길이 갔다. 어떤 모양의 목걸이나 귀걸이를 했는지는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려 했지만, 떠오른 건 그녀의 온기와 살결의 냄새뿐. 어떤 향수를 쓰는지는 끝내 알 길이 없었다.
“잘 모르겠는데… 그냥 가서 사면 되나? 가서 어떻게 사?”
“어떻게 사냐고? 너 선물 안 사봤어?”
“어, 여자 선물은 안 사봤지…”
“엄마 선물도 안 사봤다고?”
“엄마? 엄마한테 누가 액세서리나 향수를 선물해? 건강식품, 고기 뭐 이런 거 사드리지…”
“하,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전화를 끊고 한참 더 서성였다. 결국 나는 한강이 보이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조금은 진부해도, 여름밤의 바람이 어색함쯤은 덮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선물을 고르러 백화점에 들어갔다. 선물 쇼핑은 순탄하지 않았다. 액세서리, 화장품, 향수, 옷… 막상 어떤 매장에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여자친구분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점원의 질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 왜 이런 것도 몰랐을까…’
서른이 다 되도록,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선물 하나 제대로 골라본 적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결국 민망함을 감추지 못한 채 매장을 빠져나왔다. 백화점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발걸음을 돌려 지하 대형 서점으로 내려갔다. 수영에게 처음 책을 읽어 주던 그 밤이 떠올랐다. 그녀 역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한여름밤의 꿈’
나는 책을 골라 들고 나왔다. 페이지를 슬쩍 넘기다 마음에 닿는 문장을 접어 두었다. 그 밤, 전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하기라도 하듯이.
그녀의 생일 이틀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읽던 책을 덮고, 독서등을 껐다. 잠자리에 들려던 때에 수영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응, 재일아. 나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수영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재일아, 내일모레 우리 만나기로 했잖아… 미안한데, 그날은 못 만날 것 같아.”
“무슨 일 있어?”
“캐나다에서 아빠가 오셨어… 엄마한테 같이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안도와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어, 나는 괜찮은데. 너는 괜찮아?”
“괜찮아… 미안해, 약속 취소해서.”
“아니야, 그러면 우리 그다음 날 만나면 되지. 내 걱정은 하지 마.”
“그래, 고마워.”
통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녀의 생일이 슬픈 날이 되고 말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의 생일날,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생일 축하해, 수영아.”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끝내 보내지 않기로 했다. 수영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 반가울까, 그리움에 잠길까, 아니면 상처가 될까. 혹여 엄마 생각에 어디선가 울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도 하루가 가기 전에 축하는 전하고 싶었다. 아니, 힘들었을 오늘 하루를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선물을 챙겨 집을 나섰다.
수영의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베이커리에 들렀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로 주세요.”
“네, 작은 사이즈 말씀하시는 거죠?”
“네… 제일 작은 거요.”
“초도 챙겨드릴까요?”
“네, 주세요.”
계산을 마치고 나오자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쯤은 집에 도착했겠지. 벌써 저녁 일곱 시인데.
길가에는 어둑어둑한 여름밤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수영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당장이라도 그녀를 만나 안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밀려왔다.
택시에서 내려 그녀의 아파트 단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던 중, 놀이터 벤치에 앉은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우진이었다. 그도 수영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그는 수영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불현듯, “할 말이 남았다”던 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아… 왜, 하필 지금…
이대로 수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뒤돌아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던 찰나에, 멀리서 누군가 놀이터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게 보였다. 축 처진 어깨와 느린 발걸음, 손에는 갈색 쇼핑백을 든 작은 체구의 수영이었다.
나는 다급히 옆 건물 공중화장실로 몸을 숨겼다. 몇 분쯤 지났을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앞을 둘러보니 멀리 놀이터에서 수영과 이야기를 나누는 우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할…
다 들릴까 봐 큰 소리로 화를 내지도 못했다. 독서 모임의 그 밤처럼, 병원에서의 그날처럼, 다시 만나게 된 우리 세 사람. 내 마음속에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마음 한편이 홀가분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울어서일까, 휴대폰을 꺼낼 기운조차 없었다.
문득, 오늘 재일과의 약속을 취소한 일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기다렸을 텐데… 집에 가면 꼭 전화해야겠다.’
아빠가 건넨 엄마의 유품 상자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온몸에 힘이 빠져서인지,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거웠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이르렀을 때, 눈앞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우진이었다. 단정해진 얼굴과 옷차림, 어린 시절 내가 알던 그가 그대로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빠, 여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긴. 오늘 네 생일이잖아… 잠깐 시간 있어?”
그는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놀이터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오늘… 뭐 했어?”
“그냥… 아빠 만났어.”
“아빠?”
“한국에 오셨어. 같이 엄마한테 다녀왔어.”
“별말씀 없으셔?”
“응, 그냥… 미안하다고.”
아빠 이야기를 이어갈 힘은 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 다행이다. 아마… 진심이셨을 거야.”
“…어.”
“너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제는, 괜찮아. 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예전에 기억나? 내가 밴드 공연 준비한다고 네 생일도 잊어버렸던 거. 그때 네가 얼마나 속상해했는지…”
“그랬었지. 생각나는 것 같아.”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 내가 정말 미안했거든. 며칠 동안 자책했는지 몰라.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0719.”
우진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어색한 공기가 우리 사이를 맴돌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정신없이 바빴어. 앨범 준비하느라… 곧 나올 거야. 오늘 사진도 찍었어. 나오면 보여줄게.”
“잘됐네. 진작에 하지.”
“그러게. 네 말 들을걸 그랬어.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대답 대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너는? 몸은 이젠 괜찮아? 더 마른 것 같은데? 밥은 잘 먹어?”
“난 괜찮아…”
다시 말이 끊겼다.
“나 얼마 전에 재일이 만났어. 우연히.”
“그랬구나. 몰랐어…”
“…”
잠시 생각하던 우진이 말을 이어갔다.
“재일이도 너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나도, 알아…”
“수영아, 재일이랑 만나는 거야?”
그의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수영아… 나는? 아직 네 옆에 내 자리가 남아 있어?”
고개가 떨궈졌다.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래 망설이다가 천천히 말했다.
“… 아니야, 오빠. 그건 없는 것 같아.”
“수영아, 나 너한테 할 얘기가 너무 많아…”
무너진 그의 목소리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알아, 나도. 내가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거. 널 너무 오래 힘들게 했다는 것도… 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어.”
나는 우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고백했던 그날처럼.
“나도 사실… 널 좋아했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는 내 전부였어.”
뜨거운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왜 이제 말하는 거야… 왜? 오빠. 우리는 언제나 시간이 있었잖아. 나는 그게 운명인 줄 알았어. 자꾸 오빠에게 돌아가게 되니까. 그때마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의 우리를 찾고 싶었어. 아파도, 가슴이 미어져도 다시 돌아가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확신하고 싶었어.”
“수영아, 미안해. 나도 그때는 사정이 있었어…”
“그게 뭔데.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길래…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거야?”
나는 마지막 남은 미련까지 쏟아냈다.
“미안해, 수영아. 정말 미안해…”
“….”
“이제는 달라. 도망치지 않을 거야. 누구보다 단단하게 널 붙들 수 있어.”
“하아.”
나는 울분을 토해내듯 말했다.
“오빠, 나를 붙들 필요 없어. 내가 붙잡고 있던 건… 오빠가 아니라, 오빠를 사랑하던 나였어.”
“아니야, 수영아. 우리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다시 처음부터… 만나보자.”
그는 애원하듯 내 손을 붙잡았다.
“아니야, 오빠. 그때의 나는 정말 오빠를 사랑했는지 몰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 단호한 말에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니야, 수영아… 아니야…”
나는 또다시 그의 마음에 상처를 내었다. 내 앞에서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나도 함께 울었다. 우리의 지난 기억의 조각들과 서로에게 내었던 상처들이 눈물에 씻겨 흘러가고 있었다.
“수영아, 미안해… 널 그동안 아프게 해서.”
“아니야, 오빠… 아픈 사랑도 좋은 사랑이었어.”
우리는 고개를 마주하지 못한 채 펑펑 울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우진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닦았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앞에 다가와 섰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는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수영아, 이거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장이야.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너에 대한 내 추억도, 내 마음도 어딘가엔 있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었어.”
나는 말없이 그의 일기장을 받아 들었다.
그것은 우리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가 뒤늦게 시작을 말했기에 나는 비로소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 그의 고백은 출발이 아니라, 오래 묶여 있던 마음의 끝맺음이었다.
“잘 가… 오빠.”
“그래. 잘 지내, 수영아.”
그는 눈물을 떨구며 돌아섰고, 나도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처음 만난 지 열네 해 만에, 우리는 드디어 각자의 길을 택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타버린 것 같았다.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감정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꺼내 보아야 했다. 허탈한 감정에 가슴이 시렸다.
방 문 옆에 갈색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아, 아빠가 준 엄마의 유품 상자를 열었다. 엄마가 쓰던 펜과 노트, 사진, 그리고 아빠와의 커플링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우진에게서 받은 일기장을 조심스레 그 안에 넣었다.
흐린 시야 너머로 물건들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잘 가.
엄마를 사랑했던 아빠의 시간도,
엄마를 그리워했던 나의 시간도,
우진을 기다려온 내 오랜 시간도.
잘 가, 그때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