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사랑이었다
무더위가 푹푹 내려앉는 오후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휴대폰 화면에 낯선 번호가 찍혀 있었다.
‘누구지? 걸 사람이 없는데…’ 망설이다가 남은 기록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영아, 아빠야.”
싸늘해진 마음에, 다시 번호를 확인했지만 분명, 국내 번호였다.
“… 아빠? 한국이야?”
“응, 잠깐 나왔어. 큰아빠 집이야.”
“왜 나왔어?”
“그냥 너도 보고… 나온 김에 광주에 가보려고.”
“새엄마는?”
“혼자 나왔어.”
“그럼 내일모레 광주에서 봐.”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반가운 마음도, 그리운 마음도 꺼내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내일모레는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기일이기도 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였다. 아빠는 그때도 홀로 꽃다발을 들고 학교에 찾아오셨다. 그 뒤로 4년 만에 처음으로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를 말리려던 수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래된 뜨거운 공기가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오래도록 갈증처럼 눌러 두었던 그것이, 다시 치솟고 있었다.
엄마의 납골당에 들어서자, 아빠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왔니?”
“어.”
무심하게 대답하며 다가오는 아빠를 훑어보았다. 부쩍 늘어난 희끗희끗한 머리, 까슬까슬하게 자라난 턱수염, 카라 티와 남색 바지에 드러난 마른 몸이 유독 낯설어 보였다.
‘아빠도 늙었구나…’
“왜 혼자 나온 거야?”
“네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서. 졸업식 때 보고 못 봤잖아. 넌 연락도 잘 안 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나를 원망조차 하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한국 생활은 괜찮아? 학교 일도 할 만하고?”
“응. 다 좋아. 적응도 많이 했고.”
“난 네가 미국에 남을 줄 알았어.”
“그러게.”
말이 끊기면,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이런 부녀 관계였다. 우리 사이의 침묵의 거리는 엄마 때문일 거라고, 나는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엄마의 유골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외할머니 곁에 나란히 새겨진 이름. 고개를 돌리자, 아빠도 그 이름을 오래도록 응시하고 있었다.
아빠의 눈가는 붉게 충혈돼 있었고, 속눈썹 끝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금세라도 떨어질 듯 떨리는 그 한 방울은, 내가 알던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평생 무심하고 단단하기만 했던 얼굴에서 균열이 일어난 것을 나는 보았던 걸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공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 눈물이 내게 닿기도 전에, 오래 눌러 두었던 갈증이 솟구쳐 올라왔다.
참아왔던 눈물이 서서히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작은 흐느낌이 목을 타고 빠져나오며 납골당의 고요한 공기를 채워갔다.
나는 결국 무너졌다. 여섯 살에도 참았던 울음을, 그날 처음으로 아빠 앞에서 터뜨렸다. 세상이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눈물이 잦아들 즈음, 아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너한테.”
“뭐가? 뭐가 미안한데? 엄마 없이 자라게 한 거야? 여섯 해 동안 날 키우지 않은 거야? 캐나다로 데려간 거? 재혼한 거? 대체 뭐가 미안한데!”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렇게 쌓아두었던 말들을 순식간에 뱉어냈다.
아빠는 내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긴 침묵이 지나고서야 말을 꺼냈다.
“그때는… 나도 너무 힘들었어. 내가 너무 어렸지. 너한테 설명하는 게, 엄마 이야기를 꺼내는 게… 우리 둘 다 더 상처를 받을 것 같았어. 그래서 말을 못 했어.”
아빠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울음을 억눌렀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차라리 아빠도 엄마 보고 싶다고 엉엉 울지 그랬어! 그랬으면 나도 같이 울었을 거 아냐! 왜… 왜…”
나는 흐느끼며 말했다.
“미안해… 아빠가 몰라서 그랬어. 하나도 몰라서… 내가 널 너무 외롭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수영아.”
아빠는 그날, 처음으로 나에게 사과했다. 가슴속에 쌓여 있던 뜨거운 공기가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빠, 밥 먹었어?”
처음으로 내가 아빠에게 건네는 보통의 대화였다.
“아니. 뭐 먹으러 갈까?”
우리는 근처 순두부집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식탁 위에서, 나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랑 엄마는… 어떻게 만났어?”
처음으로 묻는 엄마 이야기였다.
아빠의 시선이 허공을 헤매다 멈췄다.
“아빠랑 엄마는 대학교 때 캐나다에서 유학하다가 만났어. 둘 다 공대 다녔거든. 나는 엄마가 너무 좋아서 그때 당장 결혼하고 싶었어. 같이 살고 싶었고… 집에서는 당연히 반대했지. 그런데 그러다 엄마가 임신을 한 거야…”
“가족들한테 말도 못 했어. 엄마는 임신 중에도 학교를 다니고 싶어 했어. 아기 낳을 때쯤 한국 들어가서 가족들에게 알리고 결혼 허락도 받으려고 했지.”
그때 마침 음식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전골냄비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젓가락도 들지 못한 채 그 뜨거운 국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는 시선을 떨군 채 말을 이었다.
“근데 그럴 수가 없었어. 엄마가 많이 아팠거든. 먼저 한국으로 들어갔어. 너 할머니 집으로. 아빠는… 같이 못 갔어. 그때 시험 기간이었어… 졸업을 빨리 해야 될 것 같은 압박이 들었나 봐… 그게 뭐라고…”
말을 잇던 아빠의 눈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내려, 물컵 가장자리에 맺혔다.
“엄마는 임신중독증이었어. 아빠 없이 힘들었을 거야… 시험이 끝나고 바로 한국에 들어왔어. 양쪽 집안이 난리가 나 있었지 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내가 겨우 설득했는데, 장모님… 아니 외할머니는 설득이 안 됐어.”
“…”
“그러다 응급 수술로 너를 낳게 됐어… 수술이 끝나고 엄마는 너를 안으면서 그렇게 행복하다고 말했어.”
“흑… 흑…”
눈물이 다시 터지려 했다.
“잠시나마 너를 안았지… 왜… 급하게 합병증이 왔어…”
말끝을 흐리던 아빠는 오열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함께 울어버렸다.
“수영아, 엄마는 임신 내내 널 너무 사랑한다고 했어… 너를 안던 그 순간에도. 엄마 뱃속에서 너의 존재가 시작된 그때부터 우리는 너를 너무 사랑했어.”
힘이 풀렸다. 항상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존재를 원망하며 살아왔다. 그 사랑의 시작이 텅 빈 내 존재에 다시 불을 지폈다.
눈물을 추스른 아빠는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때 유학생인 데다, 결혼한 것도 아니었어서 외할머니는 절대 너를 나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하셨어… 혼자 고생하며 유학 보낸 외동딸을 하루아침에 잃었으니, 너무 힘드셨을 거야. 그래도 나는 너를 데려가고 싶었어. 결국 1년만 봐주신다고 해서 캐나다로 돌아갔지.”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너를 데리러 왔을 땐, 외할머니가 울면서 사정하셨어. 너까지 데려가면 나도 죽겠다고… 그렇게 1년이 2년이 되고, 매해 나는 할머니랑 싸워야 했어.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소송 끝에야 너를 데려올 수 있었어. 지금도 정말 미안해, 수영아.”
아빠는 연신 사과했다. 나는 눈물이 멈췄다 나기를 반복했다.
“아빠,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나는 엄마만큼이나 아빠도 미웠어…”
“알아. 다 내 잘못이다.”
우리는 식은 찌개를 먹었다.
몇십 년이 된 깊은 갈증은 사라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허기가 다시 올라왔다.
식당을 나와 터미널로 걸었다. 아빠는 터미널 앞에서 들고 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엄마 유품이야. 아빠랑 엄마 커플링이랑.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는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어?”
오랫동안 묻고 싶던 그 말을 이제야 꺼냈다.
“사랑했지, 너무… 너무 사랑해서 나도 방황했어. 그러느라 아빠 노릇도 제대로 못했어… 그리고 수영이 네가 엄마랑 너무 똑같이 닮아서 엄마를 보는 것 같았어. 그리워서 매일 울었어, 아빠도.”
멀리서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거장에 한 발 내딛으며, 아빠에게 말했다.
“고마워. 그래도 그때 날 데리고 가줘서.”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아, 아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슬픔과 분노, 외로움과 회피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빠와 나 사이에 엄마의 빈자리가 있었던 것이 아닌, 아빠는 엄마와 나를 연결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