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우진을 보내고, 지친 몸과 마음을 그 자리에 눕혔다. 예기치 못했던 아빠와의 만남, 엄마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들, 그리고 우진과의 진짜 끝. 이 모든 것들을 오늘 하루 동안 겪어내야 했다. 마음 깊숙한 곳의 묵었던 감정들을 다 쏟아낸 것 같았다.
모두 불태운 자리에는 평온함이 찾아왔다. 오랜 병을 앓고 난 뒤처럼. 어렴풋한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이제 더는 붙잡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사람과 기억이 있었다. 폭풍우가 왔다가 모든 것을 쓸어냈지만, 공허는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을까.
벌써 밤 열한 시. 혹시 자고 있을까 싶어 망설이며 메시지를 쓰려던 그때였다.
띵동.
화면에 도착한 건 재일의 메시지였다.
“수영아, 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한겨울에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서 따뜻한 공기에 감싸이는 것처럼, 그 온기가 수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 재일아. 나야.”
“응, 수영아. 오늘은 어땠어?”
“응… 긴 하루였어.”
“힘들었겠다. 넌 괜찮아?”
“응, 괜찮아. 집에 와서 연락하려 했는데, 정신 차리니 벌써 이 시간이네. 미안해.”
“아냐, 나 괜찮아.”
“오늘 아빠랑… 많은 이야기를 했어. 처음으로 엄마 얘기도 하고.”
“그랬구나.”
그는 여느 때처럼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응… 조금은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빠도 엄마 얘기 꺼내기 힘들었을 텐데, 나 때문에 용기를 냈던 것 같아. 그 사람도 참 오래 혼자였구나 싶더라. 아마 아빠도 나만큼 외로웠을 거야…”
말하는 동안, 오래 잠가 두었던 마음의 방문이 열려갔다.
“그리고, 재일아. 아까 집 앞으로 우진 오빠가 찾아왔었어.”
“…”
그는 잠시 침묵했다. 혹시나 오해할까 걱정됐지만, 이제는 숨기고 싶지 않았다.
“오빠랑도 다 끝냈어.”
“그래. 힘들었을 텐데… 잘 정리했네. 다행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서운함도, 의심도 없었다. 조용히 내 등을 다독여 주는 온기만이 남아 있었다.
“응. 그래도… 마음이 편해졌어.”
말을 끝내고 나니,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무겁게 눌러 두었던 돌덩이를 덜어 낸 듯,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잠깐만.”
그는 말을 멈췄다. 1분 남짓, 아무 말도 없는 시간이 흘렀다.
“수영아.”
그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응.”
“늦긴 했는데… 잠깐 베란다로 나올 수 있어?”
베란다로 나갔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고요한 하늘은 검고 깊었다. 별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재일이 혼자 서 있었다. 그의 왼손에 든 작은 케이크 위에, 흔들리는 촛불들이 보였다. 번지는 불빛 사이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있었다.
조용한 수화기 너머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수영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아.’
가슴 깊은 곳에서 거센 물줄기가 다시 솟구쳤다. 비어버린 가슴에도 감정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니, 공허했기에 오히려 그것은 더 크게, 더 뜨겁게 번져왔다. 눈가가 달아오르며 시야가 흐려지고, 그의 모습과 케이크, 촛불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소원 빌어, 수영아.”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나도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달빛과 별빛 아래, 눈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을 향해 간절히 빌었다.
“빌었어? 그럼 촛불은 내가 끌게. 후.”
촛불이 꺼졌다. 작은 불꽃이 남긴 연기가 서서히 피어올라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재일은 케이크를 벤치 위에 내려놓고, 천천히 한 손을 들어 내 쪽으로 흔들었다.
“꼭, 오늘이 가기 전에 생일 축하해주고 싶었어.”
“고마워, 재일아.”
“응… 오늘 힘들었을 텐데, 푹 자.”
“응,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
“내일은 네가 일어나면 천천히 연락해. 볼 수 있으면 보자.”
“알겠어. 잘 가, 재일아.”
통화를 끝내려는 순간, 다시 찌릿한 마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재일이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수영아.”
“응?”
“나… 아직 기다리고 있어.”
통화가 끊겼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온몸에 스며들어왔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몰랐다. 나의 다음 계절이.
더 이상 내 생일은 슬픈 날이 아니었다.
수영의 생일 이후, 그녀는 부쩍 밝아졌다. 말도 많아지고, 얼굴에서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그녀가 먼저 연락하는 일이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재일아, 지금 바빠?”
그녀의 다급한 메시지는 내 일상을 단숨에 멈추게 할 만큼 반가웠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밤이 오면, 자연스레 통화로 이어졌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재일아, 우리 주말에 삼청동 가볼래?”
“미안, 이번 주말엔 부모님 댁에 가야 할 것 같아.”
“정말? 무슨 일 있어?”
아쉬움이 묻어나는 수영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전에 말했잖아. 남동생 전역했어. 지난번 휴가 때도 못 가서, 이번엔 꼭 가야지.”
“그랬구나…”
“대신 삼청동은 다음 주에 갈까?”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도… 같이 가도 돼?”
뜻밖의 말에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뭐라고?”
“너희 집. 나도 가면 안 돼?”
수영의 떨리는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통화를 마쳤지만, 머릿속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 걸까. 한국에서 부모님 집에 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걸지도…’
‘아니면 내가 괜히 오버하는 건가.’
‘그래, 그냥 친구로서 갈 수도 있는 거지.’
애써 합리화를 하면서도,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머릿속에는 엄마의 표정, 아빠의 시선, 재현이의 반응까지 하나하나 그려지고 있었다.
“그래…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창밖으로 보이는 여름밤 불빛은 유난히 반짝였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주말에 찾아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친구도 함께 간다고 덧붙였다. 엄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나는 끝내 그 친구가 여자라는 사실은 말하지 못했다.
띵동.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혹시 수영일까’ 하고 가슴이 뛰었지만, 화면을 확인하니 이메일이었다.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을 열었다. 발신인은 지도 교수님이었다.
제목: MIT 포닥 기회 관련
제일아, 좋은 소식이 있어 연락한다.
지난 6월 코엑스에서 만났던 MIT 마커스 교수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네가 발표한 양자역학 응용 연구에 깊은 인상을 받으셨다고 하더구나. 마침 내년 봄학기부터 시작하는 포닥 자리가 하나 있는데, 너에게 제안하고 싶다고 하셨다. 연구 주제도 네 전공에 맞고, MIT라는 환경이 네게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충분히 생각해 보고, 관심이 있다면 마커스 교수님께 직접 연락드릴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 내 오피스로 와서 상의하자.
김재하 교수
메일 창을 닫고 한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MIT라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기회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수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렘과 함께 불안이 밀려왔다. MIT로 향하는 그 한 걸음이 수영과의 거리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벌려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생각하고 싶지 않아…’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한참 동안 잠은 오지 않았다.
주말이 되었다. 늘 혼자 오르던 하남행 버스에, 이번에는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유난히 가볍고 경쾌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던 그 기분처럼. 설레면서도, 어제 받은 이메일이 다시 떠올라 머릿속은 어지러움이 남아있었다.
“재일아, 무슨 생각해?” 그녀가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수영은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야?”
“다정하셔. 무뚝뚝한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권위적이진 않아.”
“음… 동생은?”
“엄청 까불거려. 유쾌한 애야. 혹시 장난이 심해도 그냥 웃어넘겨줘.”
“어… 알았어. 근데 나 갑자기 엄청 떨리네.”
숨을 고르려 애쓰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완벽하게만 보였던 수영이었지만, 지금은 어딘가 서툴고 순수해 보였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사랑스러웠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보니, 마음속을 짓누르던 불안들이 눈 녹듯 사라져 가는 걸 느꼈다.
덜컹이는 버스의 진동, 무릎 위 과일 바구니, 옆자리에 앉은 그녀.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처음이었다. 그 처음의 설렘이, 가슴을 가득 채워갔다.
버스에서 내려 수영과 나란히 걸었다. 멀리 부모님의 가게 간판이 보였다.
“저기가 우리 가게야. 옆에 보이는 아파트가 집이고. 난 어릴 때부터 여기서 쭉 살았어.”
“정말? 추억이 많이 남아 있겠네?”
“그럼. 저 앞에 있는 입간판도 아빠랑 같이 만든 거야. 지금은 페인트가 다 벗겨졌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가게 건물이 점점 가까워졌다. 발걸음은 느려졌지만, 심장은 오히려 더 빨리 뛰었다.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엄마.”
“재일이 왔니?”
주방에서 나오던 엄마는 내 옆에 서 있는 수영을 보더니 잠시 말을 잃으셨다.
“나 왔어. 친구랑.”
뒤이어 아빠와 재현도 주방에서 나왔다. 셋은 놀란 표정으로 나와 수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수영이 먼저 밝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재일이 친구구나.”
엄마는 잠깐 머뭇거리다 아빠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저, 수영이라고 합니다.”
“아, 수영 씨구나. 어서 와요. 재일이가 친구 데려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엄마의 시선은 수영에게 오래 머물렀다.
“어머, 이렇게 예쁜 친구였구나. 재일이가 얘기를 안 해서…”
“엄마…”
나는 괜히 민망해 목소리를 낮췄다.
수영은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고 아빠와 재현에게도 환하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재일이 아빠예요.”
“누나, 안녕하세요. 신재현이에요. 동생입니다.” 재현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여전히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내 미소를 되찾으셨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수많은 질문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처음이었다. 가족 앞에 여자를 데려온 것이. 그것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가게 테이블에 함께 앉았다. 공기에는 약간의 서먹함이 감돌았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 근데 어떻게 알게 된 사이예요?” 엄마가 차를 내오며 조심스레 물으셨다.
“아, 독서 모임 하다가 알게 된 친구예요.” 내가 먼저 대답하자, 수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학교에서 만난 건가 했지.”
“학교에서 만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저도 재일이랑 같은 학교에 있어요.”
“어머, 진짜요?”
“아, 근데 수영이는 교수예요. 생화학과.”
내가 거들자, 아빠가 놀라서 물었다.
“아니, 이렇게 젊은데 벌써 교수라고?”
수영은 겸손하게 미소 지었다.
“네,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운이 좋았어요.”
엄마는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 자리에 가려면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대단하다.”
재현이 웃으며 거들었다.
“와, 진짜 형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네요.”
우리는 식사 전에 차를 마셨다. 부모님과 수영의 대화는 조심스러웠지만, 재현의 밝은 리드로 금세 분위기가 풀렸다. 곧이어 다들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아빠는 숯불을 피워 쪽갈비를 내오셨고, 엄마는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 온 반찬들을 연이어 내놓으셨다.
수영은 도우려고 주방을 서성이다가도, 엄마의 고집에 밀려 결국 자리에 앉아야 했다. 재현은 수영이 어색하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었고, 그 모습이 고마워서인지 입가의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 모든 풍경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낯설고도 따뜻했다.
“많이 먹어요. 혼자 살면 식사도 잘 못 챙기죠? 재일이도 매번 밤새우고 밥도 잘 안 먹던데…”
엄마는 곁눈질로 나를 흘겨보며 말씀하셨다.
“네, 그래도 요즘은 잘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수영은 젓가락으로 구운 고기를 집으며, 살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거 다 새로 한 반찬이니까 싸놨어요. 귀찮아도 꼭 한 끼는 집에서 챙겨 먹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수영이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외국에서 나와 있으니 엄마 밥이 그리울 텐데, 언제든 와서 먹어요.”
순간,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미리 말하지 못한 내 잘못일까. 수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담담히 대답했다.
“사실… 제가 엄마 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 일찍 돌아가셔서요.”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몇 초도 채 되지 않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럼 이제, 이게 엄마 밥이다 생각하고 와요.”
“네. 그렇게 할게요.”
수영이 웃었다.
짧은 대화가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기류가 우리 셋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가게를 나설 때, 엄마는 음식을 쇼핑백 세 개에 한가득 싸 주셨다. 아빠와 재현도 끝까지 수영을 향해 밝은 인사를 건넸다.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붉게 물든 저녁빛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수영이 조용히 말했다.
“정말 좋으신 분들 같아. 음식도 너무 맛있었고… 동생도 참 친절하더라.”
“다행이네.”
수영은 쇼핑백을 안은 채 미소 지었다.
“근데 이렇게 많이 받아오기만 해서 어떡하지?”
수영의 웃는 눈동자가 더는 슬퍼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가가 조금씩 뜨거워졌다.
수영을 집 앞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혼자 빈집의 불을 켰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 건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가족에게 수영을 소개했고, 모두가 그녀를 환영했다. 어쩌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문득 어젯밤 이메일이 떠올랐다. 다시 답답한 마음이 몰려왔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수영의 말을 듣고 싶었던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수영아.”
“재일아, 잘 들어갔어?”
“응. 근데, 할 말이 있어서.”
“뭔데?”
“나… 어제 교수님께 메일을 받았는데, 포닥 제안을 받았어.”
“진짜? 어디서?”
“MIT에서.”
수화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우와… 진짜? 축하해, 재일아.”
“나… 가야 할까?” 내 목소리는 의도치 않게 떨려 나왔다.
“MIT라고 했지?”
“응.”
“재일아,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 근데… 언제부터야?”
“내년 봄학기부터…”
“곧이네. 음…”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가야지.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 나도… 너 보러 미국에 놀러 가면 되잖아.”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내 손끝의 땀이 차게 식었다.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믿었던 거리가, 다시 멀어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