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을 깔보고 으스대는 모양

편안한 사람의 조건

by 창빈
20250801.jpg


"그래, 네가 얼마나 잘하나 한 번 보자"라고 마음먹은 사람의 모습은 눈빛부터 자세까지 모두 비뚤어져있다.


험상궂은 인상이나 절대 너에게 마음을 열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마주 걸어둔 팔짱.


꼬아 앉은 다리도 한쪽 발목을 반대발 무릎에 얹어 몸을 부풀리듯 으스대기 바쁘다.



나도 절대 자유롭지 못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외모로 누군가를 판단하기도 했고, 상대의 일부만을 보았을 뿐인데 전체를 제멋대로 판단하고 거리를 두었던 부끄러운 일들이 떠오른다.


조금 나이가 든 지금은, 미리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가끔 상대의 무례함을 마주하더라도 마음에만 담아두고 입 밖으로 내 생각을 꺼내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오늘은 부부가 휴가를 내고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아침잠을 털어낼 겸 아내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둘이 나란히 거실에 앉았을 때, 내가 담당하는 클라이언트 회사 개발부서 엔지니어 한 분이 전화를 주셨다. 잠깐 멈칫! 망설였다가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난 초록색 통화버튼을 누르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통화가 끝난 후, 문득 내가 생각하는 '편안한 사람의 조건'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을 하다 보면 매사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눈앞의 문제나 상황을 두고 '자기의 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 더 편안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재료를 공급하는 회사의 직원이고 상대방이 우리 회사에서 공급하는 재료를 2차 가공하는 고객님인데 우리가 공급해야 할 재료에 문제가 있거나 납품 기한을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불편 : 무조건 0월 0일까지는 저희 공장에 들어와야 해요. 되는지 안되는지 확인하고 30분 뒤에 전화 주세요!

(사실 이게 뭐라고 불편할까. 적어보니 새삼 내가 오만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편안 : 사실 이만저만해서요(클라이언트의 사내 이슈에 대한 설명), 저희가 0월 0일까지는 재료를 받아야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에게 보내는 일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려우시겠지만, 한 번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적고 보니 누가 누구를 고객으로 모시는지 잘 모르겠다. 글로 다 적지 못하는 다양한 상황이 관여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 순간 그분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편안한 사람'의 조건에 꼭 맞았다.


사실 이 통화뿐만 아니라 매번 배려해 주셔서 부담을 한 두 개씩 덜고 대하게 되더라. 가끔은 부탁받은 일을 빠르게 해결했을 때 뿌듯한 기분이 드는 때도 있다.





내 마음대로 살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오늘처럼 '좋았다'라고 느낀 순간을 감정으로만 남기기가 안타까워서 글을 적는다. 오감으로 바로 느낄 수 있는 즉시성을 띄는 감각은 쉽다. 한 번 생각하고 내 것으로 내어놓거나 꾹 눌러 담아놓으려 신경 쓰기는 어렵고 귀찮다.


이 귀찮음을 부러 행하는 분들께는 다정함의 후광이 은은하게 빛난다.


부족한 만큼 잘 살피는 내가 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실험기록(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