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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Jan 24. 2022

엄마, 제발 일 열심히 하지 마.

근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발 없는 흥미로운 말은 진짜 천 리를 가기도 한다. 작년에 우리 회사에도 코인 대박을 친 사우가 있다는 얘기가 동기들 사이에서 돌았다. 그 친구는 몇 십억을 벌어서 곧 퇴사한다더라, 곧 *의원면직하는 어린 사번의 직원이 올라오면 그 사람이 코인 부자일 거다, 하는 영양가 없는 얘기가 관제탑까지 들렸으니 말 다했다. 그게 진짜였는지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 밖에도 즐비한 그런 코인 부자들의 이야기가 월급쟁이 노동자들의 노동 의욕을 꺾은 것만은 분명하다.

*의원면직 : 스스로의 사의 표시로 퇴직하는 것. 사직.


관제탑에 갇힌 개구리로 살다 보면 타워 안에까지 회사 소문이 들어차기까지 좀 오래 걸린다. 요즘 청사가 흉흉해, 젊은 직원들은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아니더라, 더 이상 근로소득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니까, 그런 얘기가 최근에 들렸으니 적어도 반년 정도는 거뜬히 된 이야깃거리겠거니 한다. 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 또한 엄마에게 비슷한 얘길 했다. "엄마, 제발 일 열심히 하지 마." 하는 그런 얘기. 매일매일의 매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엄마 모습을 보면 그런 잔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열심히 일 해야 한다'를 평생의 진리로 알고 살아왔던 엄마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준 잔소리였다.


행복한 가정을 꾸려 자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결국 인간의 본능이라면, 지금의 사회는 청년들이 본능과 멀어지도록 열심히 밀어내고 있다. 딩크, 삼포족, 본능에 충실한다면 나올 수 없는 새로운 단어들이 생겨났다. 물려받은 것이 하나도 없어도 적당히 좋은 직장에서 적당한 월급 받으면 아이도 한 둘쯤 키우고 수도권 언저리에 새 집도 하나 구할 수 있었던 예전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주식을 하든, 코인을 하든, 부업을 하든 해서 어떻게든 불로소득을 키워야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답게' 사는 삶을 영유할 수 있다. 그러니 작고 귀여운 근로소득만이 보장되는 회사에 목숨을 거는 젊은 세대가 줄어들고 있는 게 당연하다. 회사에 충성해서 팀장 달고 임원 달고- 하는 식의 출세보다는 불로소득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는 게 낫다.


...하는 생각이 요즘에 많이 들었다.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보겠습니다!라고 당당히 적었던 자기소개서의 포부와 정반대에 서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씁쓸하다. 꿈이 좋니, 아니면 돈이 좋니. 그럼 꿈을 좇을 것이냐, 아니면 돈을 좇을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딱 막혀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루에도 수 십 번은 더 갈림길 앞에 서서 양쪽 길을 재고 있다. 뭐가 더 만족스러운 길일까 고민하며 계산하는 모습이 싫다. 엄마에겐 당당히 일 열심히 하지 말라했던 자식은 스스로에게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고 소리 지르지 못한다.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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